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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Feb 12. 2020

속 좁은 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픔이 되고

질투가 되고

내가 못난 사람이 되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를 가득 채운다. 산부인과 없이 난임과만 있는 병원에서는 유독 크게 들린다. 대기 시간도 두 시간이 넘어가는 시점에 예민함이 올라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달래 보아도 역부족. 결국은 복도에서 진료를 위해 대기 중이던 엄마가 아이를 겨우 달랜다. 차가워진 주변 공기. 초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예비엄마들이 가득한 공간에 아기 울음소리는 지독하게 잔인할 때가 있다.  


병원에는 첫째를 기다리며 오는 예비 엄마들도 많지만 둘째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도 많이 찾아온다. 첫째든 둘째든 아이를 가지고 싶은 간절함은 같지만 예민함이 가득한 병원 안에서는 민감한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일들 중에 하나가 난임 병원에서 아기들을 만날 때인 것 같다. 얼마 전 난임 카페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도 될까요’라는 둘째 시험관을 준비하는 엄마 글에 댓글 전쟁이 일어났다. 가능하면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람들과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냐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죽은 친정엄마까지 소환되고 우리끼리 이러지 말자라는 분위기에 댓글의 뜨거움은 사그라졌다. 첫째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직 첫째 아이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배려를 해달라는 입장이고 둘째 혹은 그 이상을 원하는 엄마들은 욕심쟁이 소리를 들을까 봐 눈치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진정으로 원하는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아직 첫째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논쟁이 너무 속상하다. 나도 아이를 병원에 굳이 안 데려왔으면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울음 혹은 웃음소리가 아플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속 좁은 애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난임 병원을 오래 다니다 보니 속 좁아질 일들이 많이 생긴다. 보통 때에는 주변 지인들의 아기들을 예뻐하며 잘 지내다가 나랑 비슷한 때에 결혼한 지인의 임신소식에는 우울해진다거나, 친척 아기랑 놀고 있으면 이를 바라보는 주변 가족의 쓱 지나가는 한마디에 속이 좁아진다거나, 밤이면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육아 SNS를 보며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삶으로 인해 속이 좁아진다. 정말 쿨하지 못하고 찌질하다. 난임을 겪고 있는 지금 이 상황보다 아이 때문에 좁아진 내 속 때문에 더 속상하다.


그런데 이런 예민함이 나만의 일은 아닌가 보다. 출산 관련 온라인 카페에 가보면 임신에 관련된 게시판이 있고 난임 관련 게시판이 있는데 거기에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한다. 높은 피검사 수치나 두 줄 임신 테스터기 질문 그리고 임신 성공 후기 문의는 타 게시판에 문의하는 매너를 지켜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어제까지는 난임 게시판에서 같이 가슴 아파했던 동지였지만 이식 결과 하나로 오늘은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글을 써야 할 카테고리가 달라지고 같이 마음을 나눌 동지 카테고리도 달라진다. 이게 우리 사이의 매너이다. 오랜 시간 난임을 겪어보니 마음에 여유가 사라진다. 상황은 받쳐주지 못하는데 마음만 급해지니 모든 인생의 박자가 어긋난다. 여러 번 진행한 시험관 절차가 이젠 새롭지도 않고 그냥 일상이 되어버린 삶에 심지어 내 마음이 좁아진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냥 속좁아진 나를 위한 변명을 한번 주저리 써본다.  


오늘 초음파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귀여운 아이 하나가 아장아장 걸어왔다. 윙크를 한번 날려주니 두 눈을 찡긋 거린다. 아이에게 손을 내밀려는 순간 아이의 엄마가 허겁지겁 뛰어와 아이를 안고 되돌아간다. 순간 머쓱해졌지만 그녀는 나에게 매너를 지켜주고 있었나 보다. 난임이란 긴 싸움에 다시 한번 숨을 쉬고 호흡을 정리해본다. 그리고 남이 아닌 나를 바라본다. 좁아진 내 속을 다시 넓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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