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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ar 23. 2020

오늘은 뭘 먹지?


내가 아보카도를 먹지 않아서

혹은 콩을 싫어해서

아기가 생기지 않았던 거야라고

나를 원망할까 봐



오늘은 뭘 먹지? 안 그래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콕이 길어지며 오늘은 뭘 먹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과배란 주사를 시작하니 조금 더 신경 쓰인다. 멋모르고 시작했던 시험관도 시간이 길어지며 여러 가지 추가적으로 노력하는 부분들이 생기게 되는데 먹는 부분을 가장 많이 챙기는 것 같다. 난임 온라인 카페에도 시험관을 할 때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올라오고 인터넷에도 임신을 하기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이란 주제로 많은 글이 올라온다. 


이미 노쇠한 난소를 돕는 영양제는 없다고 한다. 난임 온라인 카페를 돌아다니다 보면 해외에서 직구해서 먹는 약이 있는 것 같은데 담당 의사 선생님은 잘 모르는 약을 권하고 싶지 않으시다고 했다. 영양제가 없는 대신 난소의 건강을 도울 수 있는 건 식이요법과 운동이라고 하는데, 글쎄 내가 열심히 안 먹는 건지 아님 해도 안 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우와 대박!’ 할만한 음식이나 운동법은 모르겠다. 그냥 좋다니 따라먹을 뿐.  


채취 전부터 착상 시기까지 시험관을 진행할 때 먹으면 좋은 음식들을 볼 때마다 적어놨는데 참 많다. 현미, 통밀, 콩나물, 두유, 두부, 검은콩, 콩, 견과류, 생고구마, 고구마, 감자, 유자, 대추, 단호박, 호박, 브로콜리, 양배추, 피망, 당근, 미나리, 쑥갓, 상추, 시금치, 부추, 당귀, 노른자, 간, 우유, 모과차, 치즈, 장어, 추어탕, 전복, 굴, 명태, 북어, 대구, 해삼, 꽁치, 고등어, 연어, 멸치, 올리브유, 더덕, 산수유, 복분자, 잣, 연근, 귤, 토마토, 키위, 딸기, 오렌지주스, 자두, 들깻가루, 된장, 마늘, 사골, 소고기, 닭가슴살, 그리고 아보카도. 듣기만 해도 정말 건강한 음식들이다. 안 좋은 음식으로는 냉면, 참외, 수박, 돼지고기, 찬 우유, 오징어, 밀가루, 회, 인삼, 커피, 녹차, 초콜릿, 단 음식, 튀긴 음식, 인스턴트, 팥 등이 있다고 한다. 안 좋다고 하는 음식은 좋다는 음식 목록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되는데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핵심 음식들이 있다. 방금 글쓰기 전까지만 해도 달달한 잼을 바른 빵을 하나 입에 물고 있었다. 


나쁜 음식들을 다 끊어내지도 못했거니와 몸에 좋다는 걸 잘 챙겨 먹지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의식적으로 챙겨 먹는 것들이 있다. 물론 이런 정보 공유는 내가 뭘 성공을 했어야 하는 게 신뢰감이 올라가며 읽을 만하겠지만 뭐 혹시 아는가 꾸준히 먹으니 좋았구나 하고 이 기록이 증거가 될지도? 흐.  


첫 번째는 해독주스이다. 해독주스는 토마토,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 그리고 사과를 갈아 만든 주스이다. 인터넷 누군가의 글에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우선 이것부터 시작해보라는 글을 보고 무작정 시작을 했다. 여러 가지를 현명하게 챙겨 먹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챙겨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 같았다. 만드는 방법은 토마토,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 100g씩을 물 800g과 함께 15분을 끓인다. 다 끓이고 나서 식힌 후에 사과 한 개를 같이 간다. 이 정도 하면 두 명이서 이틀간 먹을 양이 나온다. 아침에 한잔씩 남편과 함께 (남편은 덩달아) 마시는 중이다. 난자의 질과 시험관 성공 여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으나 활발한 배변활동엔 강추.


두 번째로 매일 먹는 건 야채수프이다 (야채 물에 가깝다). 이는 암환자들 사이에서는 면역력 증진을 위해 마시는 유명한 ‘물’인데, 면역력 증진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마시는 중이다. 주변에 이 야채수프를 꾸준히 마시고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을 여럿 봐왔기에 바로 시작했다. 무 150g, 당근 80g, 우엉 50g, 표고버섯 1개, 무청 말린 것 3-4가닥을 물 1.5리터에 넣고 팔팔 끓이다가 약한 불로 한 시간쯤 끓이면 야채수가 완성된다. 정보를 찾아보면 야채수에는 하루에 마실 복용량도 정해져 있던데 나는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반 컵 정도를 마신다. 이렇게 남편과 마시다 보면 3일 정도 마실 수 있다. 이것 또한 시험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으나 감기가 덜 걸리는 모습을 보며 시험관을 준비할 수 있는 체력이 튼튼해지겠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마시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선 항상 야채들을 끓일 때 나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이틀에 한번 꼴로 자기 전에 해독주스부터 끓여 냉장 보관하고, 야채수프를 끓여 놓고 잔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전날 만들어둔 야채수프와 해독주스 한잔을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마시는 탓에 야채 사러 가기도 귀찮고, 밤에 끓이려고 하면 너무 피곤하긴 하지만 꾸준히 마시다 보면 몸 어딘가에는 도움되겠지 하면서 많은 시간을 식탁 앞에 앉아 글을 쓰며 야채가 다 끓여지길 기다린다. 


시험관을 준비하며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내 몸을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의식적으로 몸에 나쁜 음식들은 피하고 신선하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먹으면서 몸의 균형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점심은 들기름으로 두부 반모를 굽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기로 결정했다. 이 정도면 나름 건강하다고 나를 토닥이며 오늘 하루도 잘 먹어 보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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