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1차는 로또
착상은 신의 영역
내 인생 로또는 내 자궁에서?
난임에 명의가 있을까? 난임으로 고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온라인 카페 같은 곳에서 어느 병원에 갔고 어떤 의사에게서 진료받았는지 공유하며 성공이나 실패 경험을 나눈다. 많은 사람들의 공유 끝에 어느 특정 병원으로, 그리고 그 병원 안에서도 어느 특정 선생님에게 사람들이 몰린다. 나도 난임으로는 유명한 병원과 인기 있는 선생님을 찾아갔기에 병원에 갈 때마다 평균 2시간 대기는 기본이라는 부당한 당연함을 경험하고 있다.
얼마 전 EBS 명의라는 프로그램 (https://home.ebs.co.kr/bestdoctors/main)에서 난임에 대해 방송을 했다. 난임 카페에 많은 사람들은 예고가 나간 이후부터 남편과 혹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 보겠다며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고 힘겹게 난임과 싸우는 사람들을 보며 공감과 위로를 얻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명의를 찾아 자신이 오랫동안 겪고 있던 아픔을 끝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방송 후 사람들의 한껏 부풀어진 기대는 빵 하고 터져버렸다. 난임의 다양한 측면을 간과한 채 출산 장면으로 끝을 맺은 프로그램에 수많은 난임 동지들은 폭발해버렸다. 난임 카페 게시판 및 명의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고 수많은 항의 끝에 지금은 다시 보기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이다.
명의 제작진들은 2020년 새해 특집으로 8개월에 걸쳐 4쌍의 난임부부를 추적했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이 프로그램이 삐끗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이슈를 너무 쉽게 접근했을까? 제작진들의 사려 깊지 못한 접근방식에 한표 그리고 난임에는 명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지난 1년 난임을 겪으면서 느낀 것들 중에 하나가 ‘세상에나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변수가 존재하다니’이다. 인생에는 당연히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넓은 범위에서 보았을 때 그 변수들은 가끔씩 등장하는데, 매우 좁은 난임이란 범위에서는 변수가 매주, 매달 나타난다. 우선 생리 시작부터 날짜를 예측하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해서 난자를 채취 당일 문제가 생겨서 채취가 안된다든가, 채취는 다했는데 남편 정자 채취에서 문제가 생긴다든가, 난자 채취 후 바로 이식을 하려고 하는데 피검사 수치가 안 맞아아 취소된다든지, 수정이 한 개도 안 나와서 이식 전날 취소 통보 혹은 냉동 배아를 준비하다가 문제가 생겨 취소 통보를 받기도 한다. 나는 이식하러 침대에 누워 수술실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적도 있다. 이런 상황적 변수 외에도 난임을 겪는 사람들의 상태 즉 고연령, 고차수, 채취 후 복수, 주사약 부작용, 난저, 다낭성 등의 변수까지 합쳐져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매번 일어난다. 시험관 시도 년수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이렇게 여러 변수들을 뚫고 어렵게 시도를 해도 착상이 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관 1차는 로또라고 하고 착상은 신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이식 후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매번 2시간씩 기다리며 진료를 받고 있지만 그 의사 선생님의 특별한 능력을 믿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환자 케이스들을 치료하며 실패하며 귀하게 배우셨을 그 경험을 믿고 가는 거다. 선생님 경험치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식을 하고 난 이후에는 같이 삼신 할매를 기다리는 일밖에 없음을 선생님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암튼 나는 명의가 아닌 삼신 할매를 기다리며 오늘도 배에 주사를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