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이 찐다는 건 호르몬 주사 탓이지 어쩔 수 없는 거야
잠기지 않는 바지는 잠시 넣어둬
다시 입을 날이 오겠지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배 주사에 대한 고찰이라. 이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연구할 것이 있을까 싶지만 샤워하다가 뽈록 나온 배와 튼실해진 허벅지를 내려 보고 있자니 연구까진 아니더라도 생각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 할고.
과배란을 위한 배 주사는 배꼽으로부터 3cm 정도 아랫배 부근에 맞는다.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은 일어나서 주사 한 번, 6-8시간 간격을 두고 한번 더 맞는다. 7-10일간 난자를 키우기 위해 이렇게 주사를 맞고, 채취 전 미리 배란되지 말라고 조기 배란 억제제나 채취 전날엔 난포를 터트리는 주사를 맞는다. 암튼 시험관을 시작한다면 최소한 이 정도의 배 주사를 스스로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처음 과배란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처방받은 주사약들과 주사기들, 설명서들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보다 저 주사기 바늘을 내 배에 어떻게 찌르지 하는 걱정이 더 앞섰다. 주사는 원래 간호사 언니들이 놔주시는 거 아니던가. 한쪽 팔 혹은 한쪽 엉덩이만 내밀어주고 두 눈만 꼭 감고 있으면 따끔하게 그냥 지나가는 일이었는데 내가 직접 내 살을 찔러야 한다니 정말 싫었다. 올해 초 난리 난 <EBS 명의> 난임 편에서 어떤 참가자의 영상이 기억난다. 남편 앞에서 배 주사를 맞으며 “어머 하나도 안 아파. 내 적성을 찾았나 봐”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 그분의 말에는 우선 동의. 솔직히 나도 배 주사는 안 아프다. 물론 아픈 사람들도 있겠지만 바늘도 많이 가늘고 해서 막상 찌르고 나면 크게 아프진 않다. 문제는 내 배로 바늘을 가지고 와서 찌르기까지이다. 처음에 맞을 때 배 가죽과 바늘 끝이 서로 대치상태를 이루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리고 다른 문제는 화장실이든 차 속이든 상관없이 시간이 되면 주사를 놔야 하는 상황이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주사를 맞으면 그다음 주사는 회사에서 맞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나는 주사용 파우치를 만들어 오후 4시면 화장실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변기에 뚜껑을 덮고 앉아 주사 파우치를 선반에 올려둔다. 소독약으로 손을 소독하고 주사기에 주사약을 넣는다. 눈금에 맞춰 주사약을 정확하게 넣고 나면 입으로 옷을 물고 한쪽 손엔 주사 다른 한 손은 주사 맞을 부위의 살을 집어 올려 주사를 맞는다. 일이삼사오. 다 쓴 주사기는 어디에다 버리지도 못하고 다시 주사 파우치에 넣어서 나온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손을 말리면서 물고 있던 옷 쪽에 침 자국도 함께 말려보지만 자국은 남아있기에 어쩔 수 없이 툭툭 털고 나온다. 화장실에 사람이 적은 날은 그나마 편한데 사람이 몰릴 때에는 정말 정신이 없다. 마치 화장실에서 나쁜 짓을 하다 나온 사람처럼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이렇게 외부에서 주사를 맞을 때면 내가 꼭 마치 영화 속 주인공 같기도 하다. 그런 영화 있지 않는가. 마약에 찌든 주인공이 혼자 팔에 줄을 묶어가며 주사를 맞는 그런. 암튼, 배 주사는 아프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이런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내' 마음의 문제이다.
이젠 주사를 너무 잘 놓는다. 요즘엔 두 개의 주사를 같이 맞아야 할 때면 두 개의 주삿바늘을 동시에 배 양쪽에 꼽고 맞기도 한다. 오랜 훈련으로 어디에서 주사를 맞든 빠르고 즐겁게 맞을 수 있는 ‘스스로 주사맞기’ 달인이 되었더니 튼실한 뱃살과 허벅지 살도 손님처럼 따라왔다. 앉아서도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던 뱃살이 이젠 서 있어도 너무 잘 잡히고 허벅지는 이젠 셀룰라이트 선까지 당당히 내보이며 존재감을 뿜뿜한다. 샤워를 끝내고 옷을 입기 전 뱃살과 허벅지살에게 조용히 경고한다. 너희들이 여기에 붙어 있을 시간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곧 방을 빼야 할 것이라고.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