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아메리카노
검은색을 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최면을 걸어본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중이다.
이건 아메리카노다
맛있다
정.. 말.. 맛있다..
카페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한참 쳐다본다. 예전에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골랐는데 요즘엔 마실 것을 고르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카페에서 나의 최애 템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무리 더워도, 목이 말라 헐떡거려도 언제 어디서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보통 하루에 두 잔정도 마셨는데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혹은 출근하면서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을 마셨다. 그중 제일 좋아했던 커피는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허겁지겁 집에서 나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쯤 걸려 출근해서 내 자리에 앉아서 마시는 그 따뜻한 한 모금을 사랑했다. 커피가 들어가는 순간 온몸이 카페인으로 다시 깨어나고 풀린 눈이 반짝거려졌다. 쉬는 날에는 햇살이 잘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커피의 맛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줄은 알았다.
이렇게 애처롭게 지나간 일처럼 커피에 대해서 쓰고 있음에 눈치챘겠지만 술 다음으로 내 인생에서 사라진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나의 사랑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와 술 중에 무엇이 더 끊기 어려웠냐고 물어본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커피다. 작년 7주 차에 아기 잃은 소식을 듣고 소파술을 예약하고 집에 오는 길에 제일 먼저 한 것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 것이었다. 울면서 커피를 먹는 내가 너무 웃펐는데 선생님에게 유산 소식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는 온통 커피 생각만 났다. 그 당시에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였다.
커피는 술처럼 완벽하게 끊지는 못하고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다. 두 잔에서 한 잔으로, 한 잔에서 디카페인 커피로. 아후. 그런데 디카페인 커피는 정말 맛없다. 커피 맛도 모르는 내가 맛없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 맛없는 거다. 그래도 아무리 맛이 없다고 해도 커피 향과 약간의 카페인이 나를 달래준다. 요즘엔 디카페인에 있는 카페인도 싫어서 다른 대용품을 찾아냈는데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색을 가지고 약간은 커피 향이 있는 보리차가 있었다. 내가 커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하자 친구가 추천해 주었다. 이미 많은 임산부들이 마시고 있었는데 물에 타 먹으면 아주 연한 아메리카노 맛이 난다. 그래서 요즘 아침에 일어나서 연한 아메리카노 맛이 나는 보리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실제로 나를 깨우는 카페인은 없지만 나의 후각과 미각을 속여 예전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행복했던 때처럼 나를 위로한다.
암튼 한참 동안 메뉴판을 보고 고민한 끝에 아메리카노는 차마 고르지 못하고 그냥 비타민C가 가득한 딸기 주스를 골라본다. 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