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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Feb 17. 2020

난임 병원 속 오리


오리는 태어날 때 

처음 눈이 마주친 존재를 

엄마로 생각해서 따른다고 해

우린 지금 이곳에서 

꽥꽥 거리며 따라가고 있지




오랜 대기 시간을 버티고 있는 중에 한 여자분이 급하게 뛰어 들어온다. 진료실에서 잠시 나온 간호사를 붙들고 오늘이 생리 이틀째 되는 날이라서 왔는데 예약이 안 된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니 간호사는 오늘 진료예약이 끝났으니 오늘만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보라고 했다. 이 여자분은 계속 어떻게 안되냐고 물어보며 접수대와 진료실을 몇 번 왔다 갔다 거리더니 결국 다른 선생님이 아닌 담당 선생님의 마지막 대기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상황은 종종 일어나는데 그 여자분은 운이 좋았다. 분명 병원에서는 생리 시작하고 오라고 하지만 생리가 언제 할지 모르는 상황에 미리 예약하는 것은  어려울 때가 많다. 게다가 가려는 날에 예약이 많으면 담당 선생님을 못 만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럴 때에는 그날만 다른 선생님에게 진료를 보고 다음부터는 담당 선생님을 만나도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 선생님을 꼭 만나야 할 것 같은 절대적인 마음이 존재한다. 채취나 이식 시에 담당 의사가 바뀔 수 있는 조항이 있고 이에 동의한다고 사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꼭 나의 선생님이어야만 하는 애절함이 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 꼭 진료를 받아야 하는 마음이 그 선생님에 대한 신뢰도 때문일까? 그런데 신뢰도가 생기려면 뭔가 성공한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난임 병원에서 성공을 했다면 지금 여기 대기실에서 기다릴 일은 없을 테니 자신의 성공경험에서 오는 신뢰도는 아닐 것 같고, 주변 지인 혹은 인터넷 카페에 생생하게 쓰여있는 다른 사람들의 성공경험으로 인한 간접 신뢰감이려나. 혹은 같이 기다리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대기자들을 통해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더 뿜어져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간접 신뢰감만을 가지고는 이 절대적인 애절한 마음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반복되는 실패가 난무하는 난임 병원에서는 이보다 더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  


누구의 추천도 아닌 그냥 반차를 낼 수 있던 날 진료가 가능한 선생님이었기에 선택을 했다. 미혼 때부터 다녔지만 워낙 환자가 많으신 선생님이라 나를 기억하실 거란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굳이 붙여야 할 정은 없었다. 몇 달마다 찾아갈 때면 “두 달 전에 채취를 해서 한 개를 얼리고, 지금은 두 개의 배아를 가지고 있는” 혹은 “지난번에 처방해 주신 마시는 비타민 D를 4개월간 먹고 이제는 알약으로 약을 먹고 있는” 등 내 소개에 수식어를 붙일 뿐 굳이 ‘정’을 붙이지는 않았다. 나 외에 많은 환자를 책임져야 하시는 분에겐 인간적인 ‘정(情)’ 보다는 이분이 나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정(正)’ 확성이 더 중요했다.


작년 봄이었다. 시험관 1차 시도로 임신을 하고 7주 차에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고 유산되었을 때였다. 항상 모니터만 보고 이야기하시던 선생님은 나를 마주 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조차 이해를 못하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대뜸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하신다. 어제 덜 움직였으면, 그제 그 음식을 먹지 않았더라면, 대추차를 더 마셨더라면 하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복기하며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던 머릿속이 그 말 한마디에 멈췄다.


오리는 태어날 때 처음 눈이 마주친 존재를 엄마로 생각해서 따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 본 그 무엇과 애착관계 (*인생 초기에 가까운 사람에게 강한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오리도 아니고 담당 선생님이 엄마도 아니지만 이때부터 나에겐 특별한 애착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 아직 성공사례(?)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매번 2시간 기다려서 고작 3분 만나는 의사 선생님이지만 내 인생에 어떤 때보다 가장 강렬한 감정을 소비하는 이 시간을 함께 하고 있음에 오리 이상의 특별한 끈끈함이 생겼다. 이런 관계 형성은 길어지는 난임 기간 동안 묵묵하게 선생님을 따라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변수가 생길 때마다 오만가지 생각에 괴로워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갈 수 있는 용기도 준다. 물론 실패가 반복되면 처음 본 사람을 죽을 때까지 엄마로 따르는 오리와는 달리 다른 엄마를 찾아갈 수도 있지만 큭- 당분간은 나의 처절한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이 선생님을 더 믿어보려 한다.


자연주기 채취가 취소되었다. 지난달에 무리를 해서 잘 자라나지 못하는 난자를 확인하시더니 이번 달은 패스하고 다음 달에 다시 시도하자고 하신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 달을 기약하며 오늘도 힘차게 꽥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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