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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Feb 06. 2020

묻고 더블로 가

자연주기 시술 



나도 난자가 많이 나와서 

복수가 찰까 봐 걱정하며 

이온 음료를 먹어보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 하나



인기척에 눈을 뜬다. 팔에는 링거 주사가 놓여 있고 다른 쪽 팔에는 혈압을 재는 장치가 둘러져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까 수술실에서 담당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몇 번의 기침을 한 이후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잠에서 깨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옆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간호사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옆 환자를 깨우고서는 30개의 난자를 채취했다고 알려준다. 우와 30개. 정말 부럽다. 난 이번에 몇 개가 채취되었을까.


난소 기능 저하로 시작한 시험관이다 보니 개수에 민감해진다. 난자 개수가 마치 내 인생 수치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 수정된 난자 즉 배아를 하나하나씩 모으는 중이다. 아무리 호르몬제를 몸속에 넣고 자극을 주어도 죽어도 5개 이상은 안 나오니 그 안에서 수정되는 배아는 없거나, 한 개 혹은 운이 좋아 두 개 정도. 한두 개 가지고는 착상 확률이 너무 낮아 세 개 혹은 네 개가 될 때까지 모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네 개까지 모으는 이유는 냉동된 배아를 해동시켰을 때 못쓰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유분 하나를 더 계산해서 해동한다. 그런데 방식은 병원마다 선생님마다 다른 듯하다. 암튼 나는 배아 하나를 얻기 위해 약 2-3개월 정도 걸리니 이식이라는 시도를 하는 데까지 정말 오래 걸리고 있긴 하다.


"자연주기로 한번 해볼까요?"


이번에 3개의 난자밖에 얻지 못해서 그러기도 하고 여러 몸상태의 이유로 시험관 진행이 더뎌져서 그런지 선생님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난자 채취는 보통 과배란 주사나 약으로 호르몬에 영향을 주어 여러 개의 난자를 키워 많은 수를 채취하는데 자연주기란 약을 쓰지 않고 알아서 배란되어 나오는 난자를 채취하는 방법이다.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집에 오는데 맘이 복잡해진다. 더 어려운 게임을 제안하신 거다. 지난번 세 개의 난자를 얻고 3일 배양에 살아남은 배아는 단 한 개. 자연주기로 얻을 수 있는 난자는 한 개. 그러면 그 난자는 채취와 수정에서 100% 확률로 살아남아야 한다. 지는 게임을 유독 싫어하는 편이라 승산이 없는 게임에 망설여진다. 


난 도박을 싫어한다. 도박하는 것에 소질도 없거니와 공짜 돈을 그냥 얻는 것도 싫고 내 돈을 잃는 것도 싫어한다. 무엇보다도 (결국) 나에게 불리한 확률이 싫다. 이겼을 때 보다 안되었을 때를 먼저 생각하고 위험한 일보다 안전주의를 지향하는 성격도 도박을 싫어하는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all or nothing이라는 도박을 같이 하자신다. 승부를 걸었으면 하나라도 얻어야 하는 나에게 아무것도 안 될 수도 있는 게임을 한번 해보자 신다. "왜 안 될 것부터 생각해?"라고 묻는 질문에 머쓱한 웃음을 지어본다. 지난달에 채취를 한 이후라 몸이 지치기도 했고, 괜히 돈만 날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도 된다. 돈을 날린다 쳐도 실패했을 때 겨우 끌어올려놓은 기운을 더 떨어뜨릴 까 봐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긍정의 요소를 항상 찾는 사람인데 이번 시도는 두려움과 걱정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그분의 말씀 “묻고 더블로 가.”


나는 어쩌면 지난해 내내 싫든 좋든 도박을 해오고 있었는지 모른다. 수많은 확률게임을 하며 베팅을 하고 있었을 지도.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베팅을 해야 이 게임이 끝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왕 시작한 게임이니 지는 걸 싫어하는 기질을 이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걱정은 뒤로 빼고 내 안에 있던 승부사를 꺼내어 테이블 앞에 앉는다. 이번에 안되면 묻고 더블로 가면 되지. 그래 어떻게든 앞으로 고고.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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