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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Feb 03. 2020

임준생의 꿈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티비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 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 화이트 <네모의 꿈> 중에서 



병원 벽에 걸린 모니터에 가운데 글자가 가려진 내 이름과 숫자 하나가 지워진 생년월일이 뜬다. 일종의 개인정보 보호인가 싶었는데 이내 쩌렁쩌렁하게 불려지는 내 이름을 듣고 시각과 청각이 주는 혼돈을 느끼며 손을 들어 대답을 한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핸드폰으로 재빨리 초음파실 도착 확인을 했고 보통 때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1시간이 지나서야 내 차례가 왔다. 난자 채취를 하기 위해 보통은 7-10일 정도 과배란 주사를 맞고 난자를 한 개 이상 키운다. 병원에 올 때마다 얼마나 자랐는지, 몇 개가 크고 있는지를 초음파로 체크하기에 난임 병원에서는 선생님을 만나 뵙는 일  다음으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초음파 검사이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진료와 초음파 검사가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담당 의사 선생님은 달라도 환자들은 모두 같은 초음파실에서 검사를 받는다. 초음파실은 이 병원의 모든 난임 동지들을 만나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하지만 사랑방 치고는 참 조용하다.


이름이 불리면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는 또 다른 대기실과 탈의실, 다섯 개의 검사실이 있다. 탈의실로 가서 검사용 치마로 갈아입고 안쪽 대기실로 가면 똑같은 치마를 입은 10명 정도의 대기자들이 앉아있다. 각자 생김도 나이도 그리고 여기에 앉아 있는 원인도 각기 다 다르지만 똑같은 간절함으로 똑같은 치마를 입고 위쪽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 또한 매우 조용하다. 서로의 숨소리와 호출벨 소리만 들릴 뿐이다. 오랜 대기에 지친 마음과 앞으로 남은 진료일정에 마음의 여유 없이 무표정하게 있다. 밖에서 대기할 땐 몰랐는데 여기서 다 같이 똑같은 치마를 입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마치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지금 상황을 컨베이어 벨트 위와 비교하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지만 어떤 제품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순서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과 무표정으로 반복적인 일을 순서에 맞게 움직이고 있는 내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이름이 불려 안으로 들어가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실에 와서 앉아 머리 위쪽에 달린 모니터를 바라보다 검사실로 들어가 다음 단계를 기다리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이 말이다.


우린 아마도 서로의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병원에서 나와 집에 가서도 각자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비슷한 일들을 반복할 것이다. 같은 시간에 약을 먹고, 아침저녁으로 배에 주사를 맞으며, 난자에 좋다는 단백질과 비타민 디가 가득한 음식을 먹고 건강한 난자를 키우기 위해 어딘가를 힘차게 걷고 있을 것이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더디게 흐르는 시간을 견디며 오늘 하루를 의식도 못한 채 보내고 있지만 모든 일엔 끝이 있지 않겠는가. 아무리 긴 컨베이어 벨트라도 그 끝에는 작은 선물 하나 완성되어 나오지 않겠는가. 그 끝을 기다리며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만보 걷기를 시작해본다. 두둠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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