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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왜 힘들 수밖에 없을까?

끊임없이 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곳

by Onda

밥벌이는 힘들 수밖에 없어서 나를 지키려면 '내가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곳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왜 회사는 힘들 수밖에 없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여러 개의 회사를 경험하면서 회사라는 곳이 참 재미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대한민국에 있어도,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수직 문화를 가지고 있던 중견기업에서는 튀는 색 운동화를 신었다고 지적을 받았고, 외국계 회사를 갔더니 미팅에서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You’ll be eaten (그러다 너 잡아먹히고 말 거야)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랐다. 회사마다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평가 자체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이직을 하면 새로운 나라로 이민 간 것처럼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의 공통점, '돈을 버는 곳'

회사가 제각각 달랐지만 단 하나 공통점은 '돈을 버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회사의 존재 이유 자체가 '이윤 발생'이다. 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없다. 시장상황이 힘들든 경쟁사가 치고 올라오든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이윤을 발생시킬 것. 지난달에 초과달성을 했어도 이번 달 목표를 미달하면 안 된다. 이번 달 목표를 미달하면 다음 달 목표는 더 높아지고, 이익 보전을 위해 미달한 목표만큼 예산은 깎인다. 그래서 시속 몇십 킬로의 속도로 계속 달려야 했고 쉬어감이 허용되지 않았다. 왜 회사가 힘들까 생각해 보면 '매달 돈을 벌어야 한다'는 그 전제가 원인이었다.


회사가 힘든 4가지 이유

1. 내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할 것

회사라는 곳이 제한된 리소스를 활용하여 늘 최대 이익을 창출해야 하다 보니 회사의 모든 것은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로 판단됐다. 나도 리소스였고, 그래서 '나의 쓸모 있음'을 현재형으로 계속 증명해야 했다. 회사는 지속해서 '회사의 목표 달성을 위해, 지금 당장 당신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매번 '그렇다'라는 답변을 주어야만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상대적이었고, 내가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영역도 많았다. 비즈니스 상황이라는 것이 거시적인 영향을 받다 보니 내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사람들과 비교도 되다 보니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회사가 '아니다'라고 판단하면 아닌 것이었다. 자꾸 당신은 아니라는 회사의 평가에, 수학의 정석을 펴놓고 공부했다던 어른의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절대적인 답이 있는 문제를 풀면서 도대체 무엇이 아니라는 건지 찾고 싶은 마음, 회사 생활을 몇 년째 했지만 수능이라도 다시 쳐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는 마음. 아내와 자녀 몰래 수학의 정석을 펼쳤을 그분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전에 다녔던 회사가 'Up or Out (승진하거나 나가거나)'라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이른 시기부터 회사의 민낯을 마주했다. 그때 회사는 3년 차도 되지 않은 나에게도 '우리 회사에 당신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계속했다. 다만 내게 어른들보다 조금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 것은 어른들보다는 연봉이 낮아, ‘수지타산이 맞나’라는 질문에서 조금은 자유로웠던 것뿐이다.

초년생 때 팀장이 더 성장해야 한다고 나를 밀어붙였던 것처럼, 내가 팀장이 된 후에는 나 역시 목표 달성을 위해 팀원을 더 잘해야 한다고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내가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하던 반대편의 사람이 되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그때 팀장도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반대편에 있다고 해서 마음 편히 회사를 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알게 됐다. 회사는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회사의 피라미드 구조상 연차가 찰수록 필요로 하는 사람수는 줄어드니, 갈수록 쓸모를 묻는 질문의 난이도도 강도도 빈도도 더 세졌다.


2. 멈출 수 없는 러닝 머신

그리고 매달 목표를 달성해야 하다 보니 회사를 다니는 것은 러닝머신 위에 오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의 목표를 달성해도 내일이 되면 새로운 목표가 주어진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분초를 다투면서 의사결정을 하고, 빠르게 다음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일이 쉴 새 없이 생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되어 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시속 몇십 킬로의 속도로 계속 달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퇴사하기 전까지는 러닝머신에서 내려올 수 없고, 퇴사를 해서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밥벌이를 멈출 수는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러닝머신 위에 올라야 하는 게 삶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잠시 멈추고 싶을 때도 넘어질 때도 있지만, 러닝머신은 멈추지 않으니까 쉴 여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쳤을 때도 멈추지 못했고, 오늘 힘들더라도 걷지 않으면 내일이나 모레는 나가떨어질지 모르니, 꾸역꾸역 걸을 뿐이었다. 회사의 속도에 어떻게든 맞추든 러닝머신을 영영 내려가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3. 혼자 할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이해관계

이윤 창출의 극대화를 위해 무조건 남들과 함께 시너지를 내서 결과를 만드는 일들이 많았다. 회사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팀마다 사람마다 주어진 목표도 복잡하고, 그 목표들이 부딪히며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했다. 그런데 모두들 그 목표를 달성해야만 자신의 쓸모가 증명되다 보니 모두 절박했다. 회사 일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서로의 마음이 다치면서까지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두 종류의 이해관계 충돌을 경험했다. 먼저 내 안에서도 이해 충돌이 있었다. 팀장이 되면 회사의 방향성을 함께 만들고 이를 팀원들에게 공유하면서 방향에 맞춰 일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나조차도 동의되지 않는 회사의 방향성을 가지고 팀원들을 독려하고 일을 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일들도 생겼다. 내면의 나는 '나도 이 의사결정에 동의가 안돼'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은 회사를 대변해야 하는 것일 때. 팀원들이 이런 회사의 의사결정과 이걸 지지하는 팀장에게 불만을 표시한다면? 그때 팀원들이 하는 욕까지 내가 감당해야 하는 순간, 월급은 '욕값'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이해관계 충돌이 많았다. 교통사고가 난 자리에 또 사고가 나는 것처럼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 있었다. 꽃 스타트업에 다닐 때 나는 마케터다 보니 꽃다발을 하나라도 더 팔아서 매출액을 높여야 하는 역할을 맡았고, 생산 팀은 건당 제작 비용을 낮춰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꽃다발을 제작하는 작업실은 공간과 사람에 제약이 있다 보니 하루에 팔 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었다. 우리 마케팅 활동의 효과가 좋아서 사람들이 꽃다발을 더 사겠다고 하는데도 하루 제작 수량이 정해져 있어 일시품절로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생산 팀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으로는 회사가 제작 공정을 개선하는 투자를 하거나 혹은 제작 한계를 고려하여 낮은 매출 목표가 설정되면 되는데 이런 구조적인 개선은 없는 채로, 마케팅팀은 더 팔겠다, 생산팀은 예상 수량보다는 더 제작 못한다 라는 충돌이 계속되었다. 어떨 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대표님의 지지를 얻어 찍어 누르기도 하고, 모두가 자신의 일을 하는데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4. 이게 밥벌이라는 것 그리고 쉬어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밥벌이와 관련 있다 보니, '이렇게 힘들면 그만둬버리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힘든 이유 중 하나였다. 그만두면 당장 밥벌이가 끊어진다는 감각은 내 퇴로를 차단한 기분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퇴사를 한다고 해도 밥벌이는 어떻게든 계속되어야 하니까. 밥벌이를 지속하려면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회사를 가야 하는데, 여기나 저기나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빨리 늙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사회는 러닝머신의 속도를 낮추는 것, 잠시라도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힘들 때 바란 것은 크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저축해 놓은 돈으로 잠시만 쉬고 오고 싶다'는 것. 에너지를 비축해 놓고 다시 달릴 수 있을 때 달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었는데, 이 사회는 쉰 것 자체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회였다.


"왜 그만뒀어요?"

"우리 회사도 힘들다고 느끼면 또 그만 두실 건가요?"

"몇 년 쉬셨는데 잘할 수 있겠어요?"


다음 면접에서 만날 것이 훤히 보이는 질문들 때문에 퇴사에 대해 검색하다 검색창을 끄길 여러 번이었다. 한 번의 선택을 되돌릴 수 없는 선택으로 만드는 사회. 지금 이곳에서 열심히 달리거나, 그냥 나가떨어지거나 양극단의 선택지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북유럽에는 '일주일에 3일만 일하기'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일하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왜 우리 사회는 도 아니면 모밖에 없는지. 그들이 부러웠다.


힘들 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지할 것

이렇게 회사가 힘든 이유들을 적어보았는데, 회사에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적어도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아는 것은 그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힘들다는 깨달음,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얻고자 버티고 있는지 생각할 때 그 상황에서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이유로 힘들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걸 얻으려고 버티고 있구나.'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힘들길

꿈의 회사를 다닌다 한들 회사는 힘들 수밖에 없다. 회사는 이익 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매 순간 쓸모를 증명해 내도록 만드는 곳이니까. 회사가 힘들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회사에서 계속 일할 힘을 얻었던 것은 그 일이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괴롭게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내게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까지 그 괴로움을 인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교훈 하나는 이것이었다.

뭘 선택하든 세상살이가 힘든 것이라면,
어차피 매번 내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힘들자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힘들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괴로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라는 구조 말고도, 내 안에서 비롯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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