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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의 구조

직접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

by Onda

남들은 괜찮다는 회사인데 왜 나는 힘들까?

앞의 글에서 회사가 구조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했지만, 이런 외부적인 요소뿐 아니라 내 안의 요소 때문에도 일이 힘들 때가 많았다. 초년생 때 편의점 MD로 일을 시작했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당시 내 노트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내 성격은 참 까다로워서, 회사가 네임밸류도 있어야 하고, 내가 성장도 해야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하고.. 아니 어쩌면 네임밸류가 제일 중요할지도.

하지만 그곳에서 이미 몇십 년을 근속한 사람도 많고, 다들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다니는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까? 계속 고민했다. 겉으로는 ‘어떤 회사를 다닌다’는 것만 보이다 보니 회사가 힘들다고 느껴지지만, 실은 회사에서 힘든 것과 별개로 '업 가치관 - 내게 맞는 일 - 회사'라는 일의 다층구조가 어긋나서 힘들 때도 많았다.


일의 3가지 층위

일이라는 것이 참 고차원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이라고 뭉뚱그려 설명되는 것을 구조화해 보면 이런 모습인 것 같다. 빙산의 일각처럼 겉으로는 내가 소속된 회사만 보이지만, 그 밑단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업 가치관과 내게 맞는 일이 있고 이 3개가 균형을 이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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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개 층위를 알고 보면, 내가 겪었던 초년생 때의 불균형도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초년생 때 경험한 불균형을 정리해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다 보니 아무런 기준이 없었다. 내가 어떤 업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내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대신 남들의 시선이라는 업 가치관만 있었다. 경험이 없을 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있어 보이는 회사처럼 네임밸류만 쫓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학교에서 마케팅 수업을 재밌게 들었고, 시간이 나면 마케팅 관련 서적을 읽고 케이스를 찾다 보니 ‘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년 간의 취업 준비 끝에 유일하게 얻은 자리는 편의점 MD 자리뿐이었다. 그곳도 좋은 회사였지만 그 당시 내 업 가치관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과도 맞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취업 준비를 할 용기는 나지 않아 결국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내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은 단순히 내게 맞는 회사를 찾는 게 아니라 1) 나의 업 가치관, 2) 내게 맞는 일 그리고 3) 그 일을 구현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는' 것과 이 3개 층위가 딱 '맞는' 상황을 만나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만, 적어도 내게 맞는 3개 층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했다.


나를 아는 것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찾는 것

그리고 이 3개 층위는 성격이 달랐다. 위의 그림에서 수면 밑에 있는 업 가치관과 내게 맞는 일은 상대적으로 성격이 비슷하고, 수면 바깥에 보이는 회사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가치관과 일은 경험하면서 내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것이었고, 회사는 내 안의 답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외부에서 찾는 것으로 성격이 달랐다.


업 가치관은 일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가 같은 가치 판단과 관련된 이야기다. 초년생 때의 나처럼 '있어 보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일 수도 있고,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다' 처럼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다. 그리고 가치관은 내가 그동안 내린 결정들의 공통점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내게 맞는 일은 상대적으로 눈에 보인다. 함께 협업을 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일에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보이는 것처럼, 경험을 하다 보면 어떤 성격의 일이 내게 맞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우리 브랜드의 메시지를 만들고 이를 전달하는 일이 맞는구나’

‘나는 숫자에는 약한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즐겁구나’


어떤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경험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경험을 통해 몰랐던 능력을 발굴하기도 하고, 선천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수련을 통해 성장시키기도 하면서 결국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와 반대로 회사는 내가 내면에서 찾아낸 업 가치관과 내게 맞는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찾는 것에 가까웠다. 내게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처럼 내게 맞지 않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으려, 곱절의 노력은 들이지만 결과는 시원찮았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깨닫는 것과 별개로 회사라는 환경을 찾는 데는 운도 필요했다. 회사가 나를 뽑아주지 않으면 애초에 기회가 없고, 막상 들어가 보니 예상과 다를 수도 있었다. 게다가 회사는 개인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그래서 운좋게 회사에서 맞는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다른 일을 맡게 되는 상황이 그려질 때도 있었다.


경험해야만 알게 되는 것

이렇게 구조화했지만 초년생 때는 업 가치관, 내게 맞는 일, 그리고 환경이 되는 회사라는 구조를 명확히 구분하기도, 내게 맞는 요소를 찾기도 어려웠다. 모든 것이 처음인지라 내가 힘든 것이 회사 때문인 것인지, 이 일이 나와 맞지 않아서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내게 아무런 데이터가 없다 보니 대기업, 연봉처럼 남들의 기준만 있고 괴리는 더 컸다. 남들의 시선이라는 기준만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실력이 있어서 회사를 골라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일단 내게 허락되는 회사를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그 회사가 마음에 들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디든 가서 뭐라도 경험해 보는 게 필요했다. 한 번 점을 꽝 찍고 나면 그다음 어떤 점을 찍어야 할지 보이는 것처럼, 작은 한 번의 경험으로도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초년생 때 불협화음을 겪으면서, 내가 남들의 시선이라는 업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했다. 그리고 실은 내 기준이 없어서 그냥 남들의 시선만 쫓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맞지 않는 일을 경험하면서 진짜 내 업 가치관은 성장이었구나, 나라는 사람은 곧 죽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라는 사람도 바뀌면서, 나의 업 가치관, 내게 맞는 일도 끊임없이 바뀌어서 계속해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면 내게 맞는 일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부터는 여러 경험을 통해 찾았던, 내게 맞는 일을 찾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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