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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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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Nov 12. 2023

일에만 집중할 수 없는 삶에 대해

워킹맘으로서의 소회

아이를 키우며 커리어에 대해 생각한다.

내 인생이 새로운 챕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 새 회사에 다닌 지 이제 7개월이 되어가는데 최근 몇 달간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 정리해두려 한다.


어머님과 평일에 함께 지낸 지도 어느새 7개월이 되어간다. 어머님이 육아를 도맡아 해 주시면서 일과 육아가 둘 중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이분법적인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균형감 있게 삶이 굴러가지는 않는데, 회사는 당연히 높은 목표가 주어지고, 그래서 내 모든 에너지를 회사 일에 쏟아야만 겨우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진이 빠지게 일을 하는데, 일주일에 2번 정도는 10시 11시쯤 퇴근을 하고, 남은 3일은 일찍 퇴근했다고는 하지만 8시가 넘어 집에 도착한다. 예전 같았으면 밥을 챙겨 먹기도 힘들다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에 침대에 누워 잠들었을 일상을 보냈겠지만, 지금의 나는 육아의 일상으로 복귀한다. 8시에 아이의 저녁밥을 먹인다. 아이는 떼를 쓰며 밥을 뱉기도 하면서 칭얼거리는데, 나는 12시간 넘게 공복인 상태라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 3kg 정도 살도 빠졌다. 아이의 밥을 겨우 먹이고 9시가 넘어 늦은 저녁을 먹고, 그때부터 아이를 돌본다. 아이와 놀아주지만 아직 끝마치지 못한 회사 일이 나를 짓누르고, 이 답답한 마음을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정리해두고 싶은데 아이는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1시를 넘겨 아이를 겨우 재우고, 불 꺼진 거실에서 술 한잔을 마신다. 이 시간에 마시는 술 한 잔 마저 없으면 삶의 낙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아직 통잠을 자지 못하는 아이가 새벽에 깰 때마다 일어나 달래다 보면, 술 한 잔 마셨던 시간에 잠 한숨 자지 않은 나를 탓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출근 시간은 다가온다. 이것이 요 몇 달 내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균형을 맞춰 지내고 있었는데, 회사 일도 더 빡세지고, 육아도 더 힘들어지면서 그냥 넘어져버리고 말았다. 아이를 재우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어느 곳 하나 마음 편한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내가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일, 휴식 그리고 더 욕심내자면 글 쓰던 시간, 그렇게 나를 돌보던 3박자가 잘 맞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일 그리고 육아만 남았다.


What for?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동안 내가 업을 선택할 때는 ‘성장’이라는 기준만 있었다. ‘예전보다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이직의 시점에 대해 고민했고, 이직할 회사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성장’이라는 기준에 있어서는 그 어디보다 훌륭한 곳이다. 성장이라는 것이 높은 목표와 스트레스가 함께 주어져야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몇 달 전과 비교해서 스스로 성장한 것도 맞지만, 아이를 재우며 눈물이 뚝뚝 흐르는 상황까지 가자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이 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내 모든 것을 갈아서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집에서는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워야 한다. 내가 이 긴장감을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까?


포기할 용기

아이를 재우면서 눈물이 펑펑 나고, 회사에서의 내 모습도, 집에서의 내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고, 크게 넘어진 기분에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거기서 지금은 ‘비상벨을 울려야 하는 시기’라고 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시기는 힘들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더해 회사까지 빡세다 보니 지금 상황은 객관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은 아이가 큰 문제가 없어서 그래도 굴러가고 있는데, 아이가 엄마를 더 찾거나, 혹은 아프거나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이 패턴 또한 망가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대해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돈이냐, 커리어냐, 건강이냐 등등. 갑자기 내 가치관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찬찬히 가치관의 우선순위를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커리어 엑셀러레이터 나이님과 연이 있어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지금 커리어를 잘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몇 년의 시간은 ‘아이와 공존할 수 있느냐’라는 기준을 가지고 회사를 선택했다고 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도태되나 싶은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와 공존할 수 있느냐’라는 기준만 가지고 회사를 선택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그런데 마케터직무로 6시에 칼퇴근할 수 있는 회사가 몇이나 있겠나 싶기는 하다.) 적당한 성장과 적당한 안정감, 그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회사가 존재하기나 하는지 등 생각이 많아진다. 당장 퇴사하는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무언가 포기할 용기를 가져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일에만 집중할 수 없는 시기라는 것을 깨닫고, 나를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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