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추모를 생각하다.
내 죽음 이후, 애도와 추모는 장례식이 아니라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것, 그리고 나와의 기억에 잠시 머무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장례 문화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의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삶의 종결로서의 죽음 앞에서 혼란과 상실을 극복하면서도, 질서를 회복하고 남은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류는 장례를 발명했다.
또한 장례는 단지 한 개인의 죽음을 처리하는 기술로서의 가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둘러싼 우리의 해석과 신념, 그리고 세계관이 집약된 문화적인 표현인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의 장례는 죽은 자의 혼 또는 정신이 이 세계 어딘가에 머무른다는 믿음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어떤 전통에서는 조상들의 혼이 살아남은 후손들의 삶에 여전히 관여한다고 보았으며, 또 다른 전통에서는 죽은 이를 천상계나 지하계로 안내하는 통과의례로서의 이해를 장례로 구현했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록 장례 의식의 형식은 간소화되거나 현대화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죽은 이를 위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모여서 상복을 입고 절차에 따라 그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러한 것들을 예의라고 규정하고 공적인 자리를 마련하게 한다.
나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우리의 사회적 관습을 거스르겠다는 선언만은 아니다. 그 이유는 내가 죽음을 다르게 사유하고, 죽은 이를 애도하는 방식에 대해서 보다 실존적으로 응답하겠다는 하나의 윤리적 결단으로서의 선택이다.
장례 의식은 각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졌다. 어떤 문화에서는 매장을 택하고, 또 다른 문화에서는 화장을 선택한다. 고인에 대해서 예를 갖추는 방식과 복장의 규범들 제사의 유무와 유골의 처리 절차까지도 각 나라, 계층 및 시대마다 달랐다. 이것은 장례가 죽음을 의미화하기 위한 역사적 장치일 뿐 그 의례 자체가 절대적인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현대에는 더 이상 죽은 이의 영혼이 어딘가를 떠돈다거나 이승에 머문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례라는 형식은 현재까지도 관습처럼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장례라는 그 형식을 통해서 죽은 이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려 하지만, 그 형식이 죽음을 진정으로 마주하는 방식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연 진정한 애도와 추모란 무엇인가?
나는 죽은 이가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이나 어떤 특정한곳에 머무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은 죽음이 찾아온 이후 나의 소멸을 애도하거나 그리워 할 사람이라면 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안부를 전하는것이 가치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언제나 예고 없이 닫히고 종결되므로 죽음 이후에 느끼게 될 후회와 그의 부재를 미리 껴안으려는 삶의 태도 바로 그것이 내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다.
진정한 애도는 침묵에 머무는 일
죽음 이후에는 어떠한 말이나 형식도 더는 그에게 가 닿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살아 있을 때 말할 수 있는 말을 말하고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마주하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죽음 이후의 어떠한 형식보다 훨씬 깊은 애도와 추모라 믿기 때문이다.
또한 죽은 이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어떠한 형식을 따른다고 해서 완성된다고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죽음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상실의 슬픔을 고요한 상태로 마주하는 내면의 깊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죽음이 남긴 틈의 여백 앞에서 나를 멈추고 잠시 머무는 것, 그와 함께 나눈 기억들과 건네지 못한 말들, 전하지 못한 감정들을 떠올리는 것과 함께 그의 부재 앞에서 깊은 침묵으로 응답하는 것이라 믿는다.
나는 내 죽음에 대해서도 어떠한 형식이 불필요함을 미리 가족들에게 알렸다. 항상 유예하고 있는 ‘그 언젠가’가 찾아오면 상실의 아픔이 추슬러지는 대로 조용히 화장해 줄 것을 진지하게 요청했다. 나의 죽음 이후 내가 그 장례식장에 존재하지 않음과 나의 소멸을 가슴 아파하면서 애도, 추모할 사람들은 죽음이 나를 찾아오기 전 애써서 평소에 안부를 전할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장례와 제사라는 의례가 아니라 일상에서 잠시 멈춰서 나와 함께 나눈 기억들에 머무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