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석사는 동대학, 박사는 타대학으로 진학했다.
동대학의 장점은 확실하다.
익숙한 환경
이미 학부 연구생 때부터 생활을 이어온 사람이라면,
선후배 관계도 형성되어 있고 연구실 시스템에도 익숙하다.
지도교수님도 자대생을 더 편하게 대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동안 봐온 세월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타대생 입장에서는 편애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늘 장점만은 아니다.
편한 만큼 오히려 더 많이 부려먹힐 수도 있다.
내가 무엇을 할 줄 아는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몰라서 못 하겠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편안함 속에서 오는 부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박사 과정까지 같은 곳에서 하게 된다면,
최소 5~6년 이상을 하나의 연구실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다른 환경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 스승의 그 제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좋은 점만 닮는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안 좋은 점이 더 쉽게 배어든다.
그 시간이 몇 년간 누적된다면,
언젠가 나도 내가 싫어하던 모습을 닮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타대학에 가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석사가 아니라 박사 과정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상황은 더 달랐다.
이곳 사람들은 내 실력을 알 수 없었고,
동시에 나는 이제 막 배우는 단계로만 치부될 수 없는 위치였다.
시작부터 어느 정도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뒤따랐다.
적응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동시에 성과도 내야 하는 이중 부담.
사회에서 경력직으로 이직하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대학의 분명한 장점도 있었다.
학교 이름에서 오는 경쟁력,
그리고 더 좋은 연구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
객관적으로 더 나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은 나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타대학으로 오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여러 상황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비교군이 생겼고,
어떤 점은 받아들여야 할지, 또 어떤 점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지 기준이 생겼다.
사실 나는 원래 가고 싶던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
수능을 망쳤고, 집안의 반대로 재수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전공이 마음에 들어 학부 연구생으로 즐겁게 지냈고, 자연스럽게 석사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박사를 고민하던 시점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출신 학교 때문에 평가절하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객관적으로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지도교수를 바꾸는 일이 ‘배신’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똑같은 전공의 다른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가 컨택할 때마다,
이전 지도교수님과 얽히지 않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영향력 있는 석사 지도교수님과 계속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전공을 살짝 틀어서, 하고 싶은 분야를 이어가면서도 이전 지도교수님과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는 길을 찾았다.
이것이 내가 타대학 박사를 선택한 배경이었다.
돌아보면, 동대학은 익숙함과 안정감이 장점이지만 그만큼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반대로 타대학은 적응 과정이 힘들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두 길 모두 장단점이 분명하다.
그러니 남들이 뭐라 하든 내 상황에 맞는 길을 선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