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음악연습에 전쟁 중

2026년 3월 24일

by Zootopia

아빠는 매년 하는 합창단 공연을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이다. 아침마다 집 안에는 음악이 아니라 거의 전쟁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빠의 목소리는 아직까지 확 터지지 않은 신생아의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도 많다.


누가 최고의 연습생 아니라 할까 봐, 아빠는 지하실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빽빽 질러댄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끔은 거슬리기도 하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가끔은 그 소리가 딱따구리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참새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오리처럼 빽빽거리는 소리로도 들린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연습에 몰두해 있을 때면 우리 집은 어느새 작은 오페라 하우스가 되어버린다.


아빠의 합창단 연습 량은 1년 365일 중에서 인생의 절반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프라노 조수미가 하는 연습량만큼 많다. 그 엄청난 연습량에 못지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만큼 아빠가 공격적으로 연습을 할 때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겐 참 옛날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나는 하루 중 오직 하나를 기다린다. 바로 아빠의 연습이 끝나는 시간이다.

속으로는 “아주 그냥 김 모차르트 나셨네, 기쁘다 김 베토벤 나셨네”라고 농담을 하면서도, 아빠가 하루도 빠짐없이 포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그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집념만큼은 나 만큼이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참 그 아빠에 그 딸이다.


옛날에는 아픈 목 때문에 노래를 부르기도 힘들어했었던 아빠가 이제는 합창단에 의젓한 단원이 되었다.

집에 오면 불사조처럼 합창 공연 날 부를 노래를 연습한다고 악보를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도 이제는 익숙하다. 그만큼 연습을 열심히 열정적으로 아주 공격적으로 많이 한다는 것이다.


물론 타고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전문가가 아니라면 아빠 나이에 전문 합창단처럼 노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나는 아빠를 합창단에서 중간 정도의 에이스라고는 평가해주고 싶다.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공연은 아마추어 연습생이 에이스가 되고 이어서 최고가 되는 공연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볼 수도 없는 그런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연은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케스트라만 울려 퍼져서 그런지 나한테는 썩 재미있지는 않았던 공연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좋은 공연이었다. 나한테도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연은 저녁 7시 30분이었다.


나는 그전에 소피를 챙겨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했다. 저녁밥도 일찍 주고 산책도 평소보다 서둘러 마쳤다. 결국 이날 나는 소피를 네 번이나 데리고 나갔다 왔다.


공연장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공연을 보는 동안은 조금 지루했다. 중간에 잠깐 졸기도 했다. 조금만 더 냉정하게 평가를 하자면 이번 공연은 나에겐 별로였다. 나에게는 레미제라블 보다도 덜 인상적이었다. 아마 내가 눈이 높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아주 냉정하게 아빠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사실 레미제라블을 너무나도 인상 깊게 보았다는 생각에 나는 아빠의 합창 공연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건 너무나도 당연했었다. 하지만 아빠가 합창단 공연하는 날짜가 가까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나는 브런치에 무엇의 글들을 저장해 넣을지 궁금해져서 기대감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내 시선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한편 아빠의 공연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던 나의 시선에는 바로 테너 솔로이스트가 있었다.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에게 순간적으로 짝사랑에 빠졌다. 정말 잘생겼고, 무대 위에서 아주 그냥 빛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의 모습이 그 테너 솔로이스트랑 겹쳐서 보였다는 건 단순히 내 상상일 탓일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빠의 음악 공연이 아니라 그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보러 온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인정해야 한다고 느꼈다. 아빠가 공연 내내 삑사리 한 번 없이 끝까지 무사히 무대를 마쳤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그것 하나만큼은 내가 인정했다.


나는 원래 아빠 공연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매년 응원하러 가기 때문에 설렘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만약 아빠가 아주 가끔씩만 공연을 했다면 오히려 나의 기대감은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걸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끝까지 해내었을 때가 내가 바라던 것이 내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가 가장 빛이 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아 보이는 하루였다.

나는 그런 하루를 앞으로도 살고 싶다.


오늘 나는 아빠가 참 대견스러웠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그래도 끝까지 해내는 멋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생각에 나는 공연을 보는 동안 아주 잠시나마 껌뻑 죽었었다. ㅋㅋㅋㅋㅋㅋ

그 집요함 만큼은 나 못지않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면이 상당히 많은 편이니까. ㅋㅋㅋㅋㅋㅋ

아빠가 오늘 합창단 단원들이랑 같이 설 공연장 무대에서. UBC Chan Centre에 있는 공연장에서.

아빠 화이팅!

목, 금, 토 연재
이전 08화봄비가 내리는 날, 나의 생일과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