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수 되는 날

by Zootopia

오늘은 아침부터 부지런했다.

소피를 일찍 산책시키고, 어제 일 끝나고 써 둔 글도 내 브런치에 고이고이 저장해 두었다. 소피 아침밥까지 챙겨 주고 나니, 마침 새 스토브를 설치하러 온 아저씨들이 우리 집에 잠깐 들렀다.


낡은 스토브를 드디어 보내고 새 스토브를 들이는 날.

우리가 그 스토브를 10년 넘게 썼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증명된, 나름 역사적인 하루였다.


설치가 끝나고 나니 오늘은 엄마도 쉬는 날이라 처음엔 “미용실 가서 머리 좀 손 봐야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원래 일하는 날이었는데 일정이 취소돼서, 속으로는 옳거니 잘됐다 싶었다.


사실 내 머리는 이미 한참 전부터 지저분했고, 자꾸 뻗치고 있었고, 혼자서 미용실에 가서 할 엄두도 못 내어서 언젠가는 꼭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겠다고 마음속으로만 다짐해 오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구경도 할 겸, 엄마 아빠를 따라 셋이서 미용실에 쳐들어갔다.

그런데 미용실 문을 열자마자, 엄마는 본인 머리가 아니라 나를 지목했다.


솔직히 나도 알고 있었다.

정리가 안 되는 머리, 뻗치는 머리, 내가 스스로 봐도 지저분해 보이는 그 상태를.

언젠가는 스트레이트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단디’ 먹고는 있었지만, 동물을 키우는 사람답게 늘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돈이었다.

“이 돈이면 소피 병원비가 얼마나 많이 들어.”

나는 엄마 아빠 보다 내 외모보다 소피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차일피일 미뤄왔던 이유가 나한테는 가장 컸다.


하지만 밖에 나갈 때마다 항상 단정하게 다녀야 된다고 엄마가 말해서 나도 내 얼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언젠가는 스트레이트 파마를 다시 하고 싶었다.


스트레이트 파마를 어렸을 때 동생 따라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머리는 다시 그냥 자동으로 뻗칠 대로 뻗쳐 있었고 붕 떠서 혼자서는 손보기 쉽지 않은 머리처럼 되어버렸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외모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동생 따라 미용실을 간 것 빼고는 나의 꿈인 동물에 집중을 더 하고 싶어서 나 자신을 가꾸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그런 마음은 그대로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온 김에, 엄마가 하라고 할 때,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그냥 해버리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도 내 머리가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샤워하고 나오면 뻗칠 대로 뻗치는 것이 나의 눈에도 자꾸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엄마는 나를 미용실에 버려두고 아빠랑 자기들 볼일을 보러 나갔다.

나는 순식간에 미용실 고아가 되어 버렸다.

물론 농담이다. ㅋㅋㅋㅋㅋㅋ


모든 미용이 끝나고 난 뒤 거울을 보는데,

속으로 혼자 이런 기발하고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을 쓰고 거울을 보는 순간


어머나! 이게 누구야!?

오늘은 여자 추신수가 김신수 되는 날인가...?

ㅋㅋㅋㅋㅋㅋ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백설공주?

기분이 좋았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되고 하니까 엄마가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내가 원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따로 있었다.

나는 도마뱀이나 살아있는 생명인 동물을 원했었다.


그런데 비록 내가 원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니었지만 지저분 한 나를 예쁘고 귀엽게 가꾸려고 하는 엄마의 노력에 그래도 감사와 만족을 보낸다.

그렇게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엄마한테 양보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원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얻지 못해 아쉬움이 컸지만 미용을 마치고 나왔을 때 엄마 아빠의 표정을 보아하니 기분이 좋았다는 걸로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소동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콕 집어서 말하자면 나는 이런 마음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의 크리스마스에도 강아지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옛날에 그랬던 거처럼 동물 한 마리만 더 키우자고 계속해서 밀어붙일 것이다.


그 집요한 나의 집념이 언젠가는 엄마 아빠를 설득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에 꼭 성공할 거라고 믿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 약속을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지킬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약속은 동물을 무서워하는 가족들 때문에 결국에는 지켜지지 않을걸 내가 더 잘 알고 있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어떤 동물을 키울 수 있는지 연구하고 도전할 것이다. 동물을 키울 수 있는 돈이 넉넉하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계속 밀어붙인다면.... 부모님도 언젠가는 나의 진심 어린 동물에 대한 넘치는 관심에 넘어올 거라고 믿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소피도 내 외모를 보고 개 깜 놀 했다.

대한민국에 추신수가 있다면,

오늘 캐나다에서는 내가 김신수가 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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