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남자들이 처음 친해질 때나 술자리에 모이면 꼭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군부심.
"군대는 갔다 왔어? 어디서 근무했어? 몇 월 군번이야?"
이어서 '나 때는'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이고 전형적인 콤보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들의 대화 주제로 꼽히는 '군대'이야기는 왜 남자들에게는 늘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될까. 아마도 20대 가장 꽃다운 나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내한 시간을 잊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역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끔 군대 꿈을 꾸는 이유다. 그 기억은 너무 강렬해서 서서히 옅어지긴 하지만,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나는 해병대 兵1112기로 만기 전역했다. 모르는 사람과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를 공익근무요원 혹은 의경으로 근무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마 고통이나 도전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라서 그런 것 같다. 그 이미지가 썩 좋지는 않지만, 해병대를 전역했다고 얘기할 때 상대방이 놀라며 반전이라고 얘기할 때 남모를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해병대에 입대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버지는 내가 편하게 군생활하기를 원하셨고, 의경으로 지원하길 바라셨다. '온실 속 화초'라는 이미지가 싫었고, 뭔가 인생의 전환점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해병대에 지원을 했고, 나의 그 거창한 포부를 입대 첫날부터 전역하는 날까지 후회했다.
그 시절 군대는 야만적인 곳이었다. 훈련단에 들어가자마자 DI(훈련교관)들은 폭력적으로 변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고는 느끼기 힘든 곳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끊임없는 훈련과 얼차려, 소리를 지르다 목은 다 쉬어버렸고 추위에 몸을 떨고 감기에 걸려도 자비란 없었다.
식사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잠은 재우지 않았다. 좁디좁은 평상에 수십 명이 끼어 누워 단잠을 잤다. 긴장과 예민함의 절정에서 동기들과 옷깃만 스쳐도 싸움이 일어났다. 그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며 '해병'으로 태어난다는 사명감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참 비인간적이었다. 다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겠냐고 하면 아마 아니라고 할 것 같다.
훈련병의 시간이 끝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대배치를 받은 날, 생활실 복도에 서있던 장면을 기억한다. 복도 끝에서 어떤 선임이 달려와서 복부에 날아차기를 했다. 쓰러진 나를 향해 웃으며 선임은 "네 자대 배치 첫날 추억 만들어주려고"라고 했다.
이병 때 가장 힘든 것은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시절 최고의 악습이었다. 이병은 일병 오장(일병 최고선임)에게 질문을 제외하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바쁘고 힘든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해병대는 부조리를 고발하지 못하게 이병의 대화 자체를 막는 악습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북한에 가까운 가스라이팅이었다. 그때는 그 분위기와 긴장감에 압도당했다. 세뇌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폭력, 악습, 부조리가 만연했지만 좋았던 점도 물론 있었다. 철저한 기수제라 동기애가 특별했다. 위아래가 확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질서가 확실하다는 것. 시간이 지나 계급이 올라가면 그만큼 대접받을 수 있다는 확실한 결론은 그 시간을 버티게 했다. '해병대'라는 자부심으로 힘든 훈련에 자부심을 느낄 때도 있었다. 포항에서 6.25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할 때, 김포에서 한미연합 훈련을 할 때는 군인으로서의 자긍심도 느꼈다.
전역을 하던 날, 동고동락하던 전우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기보다는 하루빨리 이 지옥 같은 곳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웃고 떠들던 즐거운 추억도 많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곳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며, 강압적으로 묶여있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리운 선임들, 동기들, 후임들이 많지만 전역하고 굳이 만남을 갖지 않은 이유도 그 기억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기 때문이다.
폭행을 당했지만 나 또한 그들과 같아졌다. 악습을 따랐고, 악습을 이어갔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군기를 잡았고 내 안의 폭력성을 드러냈다. 권력의 위험성을 몸소 체험했던 시간이다. 나 스스로도 그때를 떠올리면 참 부끄러운 시절이다. 밖에서는 '해병대'라며 우쭐댔지만, 생각해 보면 강한 자한테 약하고 약한 자한테 강한 비겁한 놈이었다. 가스라이팅과 세뇌라고 포장하여 합리화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기로 했다.
남자들이 이토록 군대 시절을 잊지 못하고 얘기하는 것은 청춘의 고통, 고뇌, 후회를 그 시절이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분야는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빛나는 나이에 그늘진 시절인 것은 분명하다.
훈련소 앞에서 울던 어머니, 여자친구의 편지를 기다리던 이병, 화장실에서 훔쳐먹던 초코파이, 선임한테 혼나고 맞고 화장실에서 혼자 울던 시간, 새벽 초소에서 근무를 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곱씹던 시간, 상의를 탈의하고 구보를 뛰며 심장이 웅장해지던 시간,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 휴가 가기 전 설렘과 돌아올 때의 좌절감.
그 시절 2년은 남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찌질한 청춘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