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왜 이렇게 힘들고 고단할까 싶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나 자신을 탓하는 것이다. 그러면 남을 미워하는 데 쓰일 에너지를 줄일 수 있고, 어쩌면 시간과 돈도 아낄 수 있다. 무엇보다 내 힘듦과 고난을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된다. 비교당할 일도 없고, 누군가의 기준으로 평가받을 필요도 없다. 내 고통이 남보다 덜하다고 깎아내려지거나, 가볍게 여겨질 일도 없다. 그리고 나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습관 자체를 잘라낼 수 있다.
나는 이런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합리화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 성향은 나를 점점 사회로부터 고립시켰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고립되기를 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번은 실제로 나를 고립시켜 보기도 했다.
한 번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모든 대화를 끊은 채 12시간 이상 잠을 잤다. 먹는 것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놀랍게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4킬로가 빠져 있었다.
나는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내가 방 안에 있는 동안에도 가족은 화장실에서, 부엌에서, 거실에서 각자의 일상을 이어갔다.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그 약 170시간을 한 초 한 초 버텨냈다. 그 시간은 고통 그 자체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시간을 견디라는 벌을 내린 셈이었다.
바닥난 정신력으로 거실에 나갔을 때, 엄마는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붙잡고 자신의 힘듦과 고난을 털어놓았다. 울면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고통이 엄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엄마가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의 고통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내가 일주일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는 사실도, 눈에 띄게 야위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점점 엄마를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어쩌면 엄마에게 가장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금의 나는 내가 받은 상처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국과 독일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는 나에게 조금의 용기를 주었지만, 동시에 나는 내 상처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을 잔다. 일어나서 또 잠을 잔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수면제를 찾는다. 잠들지 못하는 순간, 가슴속에 붉게 번지는 고통은 가시처럼 자라나 나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나는, 겨울잠을 준비하는 동물처럼 안식처를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깊은 잠에 몸을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