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

by 별빛단상

인도차이나반도의 맨 오른쪽에 위치한 베트남은 남북으로 갈라져 위쪽은 월맹으로, 아래쪽은 월남으로

알려져 있던, 남북 통일이전에 한국의 비둘기, 청룡, 맹호부대등 우리나라 군대도 월남에 파병하였으나

월남의 패망으로 인해 공산화되었고 이후에 개방을 한 나라로


참전하는 국군의 시가행진에 부채크기의 태극기를 흔들며 환송 하였던 것과 파병이 끝난 선배들의 뻥이 섞인 꽁까이 이야기를 무용담으로 듣던 선입감이 혼재되어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이 함께하는 여행지였다.


1월 동절기 보수기간을 보름정도 앞두고, 이번에는 동남아의 베트남여행을 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딸들 중 함께 갈수 있는 사람을 타진하니 일주일전 일본여행을 길게 마치고 돌아온 큰딸이 알아보겠노라 흔쾌하게 나서주었다.


해외여행은 주로 딸들에게 의지하여 가는 여행이라 내가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었으나 사회주의국가로의 여행은 처음인지라 만약을 대비하여 여행자보험을 필히 확인하고도 내가 따로 여행자 보험을 가입하여야 할 정도로 신경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3박4일 일정에서 영종국제공항에서 저녁 늦은 시간에 출발하여, 현지시각으로는 4~5시간의 시차가 있어

호치민공항에 도착하니 베트남 시간으로는 자정을 넘긴 시각이다.

지루하게 긴 행렬의 입국 수속을 하는 중 군데군데 인민복이 보이는 것을 보니 사회주의 국가에 도착한 것이 실감나다.


입국수속을 마친 호치민 공항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현지 가이드등 현지인들이 공항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중에, 일행의 이름이 적힌 종이 팻말을 들고 있는 안내차량의 기사가 반갑게 맞이한다.

텅빈 도시를, 현지 안내차량에 몸을 싣고 30분정도를 경과 새벽 밤공기를 가르며 숙소에 도착하다.


차량과 숙소에 켜 놓은 에어컨이, 열대의 더운 지역 한가운데 있음을 실감하는 첫 번째 날과 두 번째 날을 동시에 맞은 감회다.


시차와 여행일정관계로 새벽에 눈을 뜨고, 자는 둥 마는 둥 선잠을 자다가 알람소리에 잠이 깨어, 숙소의 창밖으로 보이는 사이공강의 뜨거운 햇살 사이로 바라보이는 강변도로에는, 일찍부터 오토바이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처음 보는 경관이 장관이다.

차량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오토바이들의 행렬이 아슬아슬 하게 곡예운전을 하며 끝없이 펼쳐진다.

마치 여름날 개미집 앞에 일개미들이 먹이를 찾아,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행렬이 연상되어 호기심에 고개를 길게 빼고, 바라다 보이는 행렬은 끝이 없어 보인다.


딸네식구를 호출하니 늦은 취침이 바로 일어나지 못하는듯하여 우리 부부가 먼저 호텔의 식당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안내하는 여직원이 룸 넘버를 물어온다.

갑자기 백을 표현하는 영어가 떠오르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숫자를 한자 한자씩 “나인, 투, 식스,”나열하고

통과는 하였으나 어째 기분이 산뜻하지가 못 하다.


먼저 자리를 잡고 뷔페식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방금 전의 찝찝한 상황을 이야기 하니, 원래 방 호수 같은

숫자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고 하니 공연한 우려이었나 보다


음식은 동남아의 느끼함은 있으나 첫째 날 아침은 큰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내가 베트남 체질이서 음식이 잘 맛나보다!”하는 농담과

진한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열다.


대기중인 승합차를 타고 첫 번째 여행목적지인 메콩강 투어를 위해 가는길이, 길게만 늘어져 있어

멀게만 느껴진다.

베트남의 남북을 잇는 총연장거리가 1,650km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서울 부산간거리 300km를 감안하면

길게만 늘어선 이동거리에 수긍이 되고, 이어지는 열대의 이국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지나간다.


경계가 모호한 고속도로와 국도의 주변에는 햇볕만 가린 상점들과 야자수나 파인애플 바나나 열대농장이

즐비 하다.

거리에는 금성홍기 혹은 황성적기 라고 불리는 베트남 국기가 몇집 걸러 한집씩 게양되어있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인가 하는 의문에 가이드에게 물으니 곧 다가오는 명절(음력설)을 축하하기 위함이란다.


여행 내내 어느 사찰에 누워 있는 와불 에서 딱 한번 볼수 있었던 동양적 이미지와 배치되는 의문점을 젊은

가이드에게는 질문할수 없었다.

베트남의 국부로 불리는 “호치민”이 사망할 때 조선의 “다산선생의 목민심서”한권만을 남긴 일화를 젊은

그가 알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생길만큼 젊은 가이드이었으니까!


여행지에 묵고 있는 호치민시도 1975년 베트남공화국으로 통일이 된 후에 사이공라는 이름을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하는데 우리 세대에는 사이공이라는 이름으로 더 기억되는 지명이지만 호지민이라는 이름을 아무데나 사용 할 수 없다고 함에도

그렇게 명명된 연유에는, 남북간의 이념(ideologi) 차이가 엄연하게 존재함을 상징 한다.


사이공과 호치민 이라는 이름처럼, 남북의 지정학적선택으로 태어날 때부터 출신 성분 탓으로 공무원을 할 수 없다는 가이드의 푸념이 우리나라에서 한 세대 쯤 전에 마주하던, 이념(ideologi)의 찌꺼기가 보이지 않는 잔영으로 존재되고 있음으로 유추되다.


메콩강 투어에 이르기까지의 국도인지 고속도로인지 구분이 애매한 도로 주변에 보이는 풍경중, 문뜩문뜩

시야에 들어오는 열대농장과 논 가운데 묘지로 보이는 장례문화가 동북아시아인 우리나 일본 중국과는

또 다른 형태로 매장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메콩강은 바다가 연상될만큼의 넓다.

“이거 타도 괜찮을까?”하는 우려가 생겨날 정도의 낡은 보트에 의지하여 물위를 가로질러 반대편에 도착하니 베트남 여자들이 길게 늘어 서 음료로 권한다.

늘어선 그들에게 춤과 그들의 노래와 한국어 노래까지 섞여 있기도 하지만, 그들이 부르는 아리랑이 나에는 어색하다.


열대과일 음료에 목을 축이고, 맹그로브숲의 좁은 수로에 도착하니 현지인들이 마치 장마장 호객꾼처럼

카누 위에 앉아 고객을 기다린다.


수로에 현지인들이 직접 운전하는 전통카누를 일행이 두 대의 카누에 나누어 타고 자리를 잡으니, 아슬아슬 하게 맹그로브나무 숲을 스치듯이 앞으로 나아간다.

뒤뚱거리며 금방이라도 넘어질듯 하면서도 워낙 숙련된 사람들이어서 인지, 이리저리 장해물을 피해가며

수로를 통과하는 것이 신기에 가깝다.


베트남 밀림 맹그로브숲 수로의 투어를 마치고 그랜드캐넌처럼 일명 요정의 숲이라는 무이네길에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맨발로 사각거리는 모래바닥에 몸을 얹다.

탁하지 않은 물을 걷는 것이, 모래바닥이 차갑지 않아 다행 이다.

주상절리처럼 깍인 모래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리듯 보이지만 쉽게 흘러내리지 않는 지질 탓인지 묘하게도 버티는 느낌이다.

여름날 모래 늪을 지나는 느낌이지만 달라붙는 모래의 이질감이 없어 숲을 지나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


둘째날, 지평선이 보이는 모래 평원을 기대했던 사막에 대한 생각은 기대치에 이르지 못한다는

생각을 떠올리다.

영화에서 보던 사하라 사막 같은 드넓은 평원이 아니라 사구 (砂丘:모래언덕)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해볼 수 없는 사막용 바이크를 타고 모래언덕을 오르내리며 석양을 바라보는 것과

불타는 노을을 감상하는 것은 이번 여행에서의 별미다.


사이공강(river)의 야경도 빼 놓을 수 없는 경치다.


일본여행에서의 뭔가 짓눌린 듯한 강박감 보다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배제하면, 태동을 준비하는

다이나믹한 기대감이 좋았다.

마치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달”이라는 일화처럼 언젠가는 뛰어 오를 것 이라는 기대심리가 엿보인다.


물론 위정자들의 통제가 한몫을 하겠지만, 사회근간을 이루는 민초들의 공기가 다시 방문하고 싶은 의욕을

키운다.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면, 탄핵찬반의 아수라한 자기 욕심에 찌든 진영의 논리가 우리나라의 무거운 공기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때를 상기하게 되었다면 무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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