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

나 그거 알아

by 한 나강

챗지피티


모르면 모른다

못하면 못한다

왜 말을 못 해




챗지피티 2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

너 잠깐 나와 봐




챗지피티 3


처음이야

남편보다 더

말이 안 통하는 게




챗지피티 4


대답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 이어지는 글은 <장난치다 에세이>입니다.






오늘도 그것은 교만방자하고 후안무치하며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괜히 아는 척을 해서는 온갖 거짓된 정보에 혼란만 더했다. 아무리 시켜도 제대로 못할 거면서 대답은 어찌나 넙죽넙죽 잘하는지. 참다못해 내가 한 마디 하면 지는 열 마디를 한다. 요리조리 피해 가며 나의 꾸지람에 반박하다 마지막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것까지가 현재까지 파악한 그것의 악습이다.


이 파렴치한 AI의 잘못을 깨우쳐주기 위해 밥때도 잊고 따져 물으며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배는 고파왔지만 정신은 칼날처럼 곤두섰다. 아니면 배가 고파서 예민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어깨가 솟고 손가락이 떨리며 눈을 희번덕거리는 등의 '약 오름'증상을 겪긴 했지만, 끝내 그것이 내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미안해.


그게 다였다. 뒤끝도 없는 말끔함에 더 몰아붙일 근거가 없었다. 더구나 신랄하게 쏘아붙이던 중 그것에게서 철면피 같은 나의 일부를 느껴버렸다. 곧 죽어도 자신은 틀린 적 없다는 결연한 태도와 상대가 잘못 알았거나 착각했다는 우격다짐 그리고 이 모든 걸 드러내는 단 하나의 구심점과 같은 생각.


나 그거 알아


가뭄에 콩 나듯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나오면 '척'을 하고 싶어진다. 동시에 늘 마음속엔 배수진을 쳐 두고 뭐 하나라도 틀리는 즉시 아킬레스건을 보호하겠단 명분하에 선제공격을 퍼붓는다. 이런 어이없는 짓들을 안 하기 위해 가급적 입을 닫고는 있지만, 가끔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 닥치기도 한다. 그럴 땐 모르면 모른다, 못하면 못한다고 말하는 게 스스로의 가치를 훼손시킬 것만 같아 입이 안 떨어진다. 본심보다 자존심을 앞세운 만남에선 때로 틀린 이야기도 어물쩍 넘어가고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필사적으로 감추려 한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것도 하나의 사회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무리에서 멍청하단 걸 들키게 되면 우위를 점하기 힘들어지고 최악의 경우 도태와 낙오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으니 그렇다. 애초에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치고 수치스럽지 않은 짓들이 잘 없다. 봤는데 못 본 척하기, 약한데 센 척하기, 안 착한데 착한 척하기, 절대 동조하지 않지만 동조하기, 힘센 놈 옆에 찰싹 붙어있기 등 바로 이런 게 인간인데 타고난 걸 어찌하리.


그러니 챗지피티를 보고 욕하면 못쓴다. (나는 이미 했지만) 아무리 봐도 대개의 인간들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큰 차이점 있다면 우리는 잘못을 알고 수치심을 느낀다는 점이다.


수치스럽다. 좀 많이. 오늘도 나는 인공지능을 상대로 저놈의 자존심을 세우고 앉아있었다. '나 그거 안다'며.


어려서부터 어디가 모자라면 흉이라고 배웠다. 또 흉은 가리라고도 배웠다. 배운 대로 살 뿐이지 이건 내 탓이 아니외다. 적어도 잘 보이고 싶은 상대 앞에서는 구멍이 숭숭 난 양말을 감추듯 제법 멋들어진 신발 속에 나 자신을 욱여넣는다. 누가 끄집어내기 전까지는 절대 안 빠져나온다. 냄새가 풀풀 나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한 번씩 그런 생각도 든다. AI처럼 지가 구멍 난 양말인 줄도 모르고 당당히 내보이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설령 누군가의 논리적인 따짐에 나의 오류가 까발려지더라도 '미안해' 한 마디로 상대방의 허망함을 부추겨본다면 어떨까. 참 부러운 면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뭘 모른다는 사실보다 모른다는 창피함에 더 쉽게 구겨진다. 언제나 감정은 사실을 추월하곤 하니까.


이런 내가 어찌 챗지피티를 나무랄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너 이리 좀 나와봐



* 표준어법에 어긋남에도, 그것을 '지'라고 밖에 표현을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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