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아, 다 씻어내려주렴.
어머님이 그러셨지
요고만 씻으면 이제 안 나온다
어머님,
우리 밥 언제 먹어요..?
*** 이어지는 글은 장난치다 나온 <장난치다 에세이>입니다.
나의 시어머니는 강인한 분이다. 특히 벌레를 보고도 먼지 털듯 하시는 그 담대함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멋져 보였다. 듣기로 꽃다운 이십 대에 결혼해 차를 타고 굽이굽이 끝도 없는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곳이 경북 청도의 끄트머리 어느 리였다고 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던 어머님은 그 길로 깡시골 며느리가 되어 강가에서 방망이를 두드리고 아버님과 함께 손수 떡을 찧으며 신혼을 맞이하셨다. 언제부터 벌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는지는 몰라도 아마 촌에서의 결혼생활이 어머님의 담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한 번은 시골서 갓 따온 채소를 다듬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에 제철 만난 귤처럼 탱글탱글하게 부푼 뽀얀 애벌레 한 마리를 목격한 적이 있었다. 목덜미에 솜털이 쭈뼛 서는 것과 동시에 바가지를 박차고 일어서며 친정에 계실 엄마를 예닐곱 번쯤 소리쳐 불렀던 것 같다. 어머님은 할 말을 잃고 나를 빤히 쳐다보셨고, 아버님은 웬일로 껄껄 웃으시다 그놈의 몸뚱이를 어딘가로 휙 던지셨으며, 남편은 놀라서 억울하다는 듯 한숨과 함께 연신 자기 심장을 쓸어내리기 바빴다.
그런 비슷한 일들이 시댁에 갈 때마다 자주 있어왔는데, 저 날벌레 사건도 깨나 충격적인 일화 중 하나였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고, 베란다에 내놓았던 쌀 포대를 열어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푹푹 퍼담던 중이었다. 쌀이란 본디 무생물이거늘 어쩐지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쌀알들을 들여다보다 또 괴성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진 것이다.
어머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나를 옆으로 툭 밀어내셨다. 당신이 직접 씻을 테니 호들갑 떨지 말라는 깊은 뜻이었다. 세월에 두터워진 손으로 허옇다기보단 까뭇까뭇한 것들을 슥슥 문대는데, 나중엔 쌀알들마저 날갯짓을 해 저 하늘로 날아올라갈 것만 같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하고도 여섯 번쯤 되었을 때 며느리 주제에 큰 용기를 내어 '지금 이걸 먹을 수 있는지'를 여쭈어보았지만 어머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 먹고 산다'며 계속 쌀을 씻어내셨다. 그 후로도 어머님은 계속해서 쌀을 씻어내셨다. 그 후로 계속 어머님은.......
그날 우리는 옆에 얌전히 놓여있던 새 포대를 뜯어 맛있는 쌀밥을 지어먹었다. 호언장담하셨던 것치곤 너무 일찍이 먹기를 포기하셨지만, 어머님은 반이나 남은 포대에 벌레가 들어차 잠시 짜증이 나셨을 뿐 큰 동요는 없으셨다. 평소 같으면 성미 급하게 생겨버린 벌레나 그걸 막지 못한 어머님 자신이나 아니면 이유 불문하고 아버님 탓이라도 하며 내내 뭐라고 하셨을 텐데 말이다. 그날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셨다. 아마도 쌀바가지로 쏟아지던 청도의 시원한 강물이 부르튼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댐으로 인해 마을은 수면 아래로 사라졌지만, 도시에 나와 자리 잡은 새집에는 어머님이 때마다 자랑하시던 그 시골 물이 흘러들었다. 미리 알고 오신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여튼 그 강은 어머님과 참 깊은 인연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당신이 나고 자란 고향이 아님에도 오십 년 가까이 함께 하고 계시니 말이다. 여태 그 물로 밥을 짓고, 차를 끓여 마시고, 몸을 씻고, 빨래를 하신다. 우리 집 물과 달리 한여름에도 차갑다 못해 가끔은 시리기까지 해서, 손만 닿으면 온갖 더위와 시름이 싹 다 잊힐 정도다.
짐작컨대 지난여름에도 어머님은 휘휘 쌀알들을 저으며 '벌레들아 없어져라' 하는 주문을 넣으셨을 터다. 비록 그 기도는 먹히지 않았겠지만, 부디 '당뇨 따위야 없어져라'하는 주문은 꼭 먹혔으면 한다. 강가에서 빨래하고 손수 떡을 찧던 그 손으로 거뭇거뭇한 통증들을 휘휘 저어 깨끗이 씻겨 내려가길 염원한다. 그 강이 젊은 날의 어머님을 기억한다면 이 정도의 효험은 있을 줄로 믿는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뿌연 쌀뜨물에 검은깨처럼 둥둥 떠오르던 그 생물들을. 또 그것들을 씻어내던 청도의 차디찬 강물과 그 위로 휘저어지던 어머님의 두터운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