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거짓말하지 말아요. 당신은 멋진 사람이니까.

by 한 나강

당근


나눈다고 했지

나한테 맡겨놨냐




당근 2


더 깎지 마

난 이미 많은 걸 깎았어




당근 3


토요일에 온다며

분명 그렇게 말했잖아



*** 이어지는 글은 장난치다 나온 <장난치다 에세이>입니다.




아직은 쓸 만하다는 이유도 있었고, 폐기물 스티커 비용을 아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아름다운 거래를 하려면 당근 앱이 필요했다. 이는 본래의 뜻처럼 '당(신) 근(처)에서 하는 직거래'이기 때문에 판매자의 입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사하기 보름 전부터 팔 물건과 나눔 할 물건을 분류해 이익을 창출하려는 사업자의 마음으로 하나씩 글을 올렸다.


상태가 좋은 데다 가격이 이만 원도 안 되었기 때문에 반응이 꽤 있었다. 손님으로서 여느 가게에 들어설 때 종종 보았던 '주인이 허리를 곧추세우는 느낌'이 성격상 좀 긴장되기도 했기에 최대한 안하게, 그러나 발빠르게 대응하며 예약자들을 맞으려 노력했다.


이대로 순항했다면 좋았겠지만, 속하게도 사겠다고 해놓고 깜깜무소식이거나 약속 전날에 취소해서는 가녀린(?)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 것이 두어쯤 되었다. 막무가내로 기다리는 동안 이사 날짜는 점점 다가왔고, 낯선 예약자와 처음부터 다시 거래를 시작해야 했다. 이미 깎을 대로 깎아 먹을 것도 없는 것을 홀라당 나눔으로 달라고 하거나 지어 나눔으로 내놓은 물건을 제 물건 찾아가듯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이도 있었다. 역시 는 인간들을 상대하기에 열악한 인내력을 가진 인간이다.


그래도 참았다. 이게 어디 남 좋으라고 하는 일인가. 히 이 '나눔'이란 은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경계가 흐릿하다. 보기에는 명확히 분리되어 있지만, 거래가 끝난 뒤를 생각해 보면 양쪽 모두가 수혜자라 할 수 있다. 인간이란 동물은 웬만해선 스스로 손해 보는 짓은 안 한다. 나눔의 끝이라 할 수 있는 봉사 역시도 그 속에는 자신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 인의 행복을 염원하며 나의 행복을 키우는 것.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을 오직 타인만을 위해 억지로 해내는 이는 흔치 않다. 이런 건전한 자기애가 없다면 세상은 더욱 각박해진다.


하물며 봉사도 그럴진대 당근 나눔 하나에 오롯한 이타정신이 있을 리 만무하다. 디까지나 나의 경우엔 그랬다. 말했듯 기왕지사 먼 곳에 보낼 거면 쓰레기장이 아닌 사람에게 보내고, 더불어 스티커 값을 아끼고 싶었을 름이다. 로지 원하는 결말로 향하기 위해 몇몇 이들의 례에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국엔 역시 무언가를 얻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의외였던 점은 나눔으로 만난 이들 대부분이 전문 업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분명 "아내에게 물어보고 사겠다." 내지는 "아이한테 꼭 필요해서."라는 말들로 나를 유혹했던 이들이 중고 가구 업체 트럭을 몰고 와 작업복을 입은 채로 물건을 실어가곤 했다. 거짓말은 하지 말 것이지 하는 생각이 반, 그래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말은 맞지 않느냐는 생각이 반이었다.


모든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 누군가가 뻗은 손길을 따라 이전에 그에 속했던 것들이 빛처럼 내달린다. 확장하여 생존하고 붙어서 소속되려는 인간의 본능과 욕구는 비단 그들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사람과 물건 사이에도 똑같은 용이 일어난다. 아이가 365일 끼고 다니는 올빼미 인형이 진열대 위에 놓여있던 그때의 그 올빼미 인형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녀석의 눈동자는 이미 아이의 영혼을 담뿍 싣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함께 했던 물건들을 보내야 할 때마다 곱게 접거나 닦아 온 가족에게 인사를 시킨 뒤 이별한다. 한 친구는 이런 나를 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긴 했지만.


물건에 대한 생각이 이렇다 보니 당근을 통한 거래가 한편으론 중매와도 같은 기분이 든다. 얼마치의 돈이나 이득을 얻고 새 짝을 찾아주는 일이니 말이다. 작별인사 후 그냥 버려질 뻔했던 물건들이 새 삶을 얻고 지금보다 더 나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래서 기쁜 일이다.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들임이 분명하므로, 부디 다음번에 거래할 때는 "값을 얼마쯤 매길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물어보고 사겠다." 내지는 "내가 꼭 필요해서."라는 말들로 나를 유혹해 주길 바란다.


그래도 된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한다. 버리는 사람보다야 버려지는 물건을 새로이 쓰려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 그것으로 돈을 만들어낸다면 더더욱 훌륭한 일이다. 덧붙여 훌륭한 사람들은 예의도 있는 법이니, 잠수하다 갑자기 머리를 들이밀며 물건을 요구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만 오겠다고 못을 박거나, 얼굴을 마주치기 싫은 건지 자꾸 밖에다 내놓으라고 하는 태도는 가급적 삼가 주면 고맙겠다. 아이 옷장을 혼자서 옮기다 숨겨진 괴력을 견해 기쁘긴 했지만, 자꾸 하면 허리가 또 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