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의 다디단 낮잠
거기 애들 다 독감이라
옮을 일 없어요
저는요, 선생님?
.......
그만 들어가
앙코르는 됐어
할 말 있음 해 봐
들어나 보자
*** 이어지는 글은 장난치다 나온 <장난치다 에세이>입니다.
b형 독감 더하기 폐렴은 열흘간 열을 내는 병이었다. 입원 대기 후 첫날에 다인실로 가게 되자 의사는 그 방의 환아가 모두 독감이니 옮을 걱정은 없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소아과 의사로서 자기 환자의 떨어진 면역력을 감안해 한 말이겠지만, 어쩐지 그 옆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멋쩍게 느껴졌다. 순간 손을 들고 "저는요...?"라고 물을 뻔했는데 안 하길 잘했다.
지난 몇 주간 이사와 공부에 이은 간호로 몸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입원하기 전 일주일은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인지 의사와 간호사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알고는 있었지만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았고, 필요한 기억을 어떻게 불러와야 하는지 그 방법조차 찾지 못했다. 소파에 걸터앉아 통화를 하던 중 작동을 멈춰버린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쏟아버렸다.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눈물 바람을 일으킨 게 한 번 뿐이면 이런 글도 쓰지 않는다. 시간을 앞으로 돌려 집에서 아이를 간호한 지 엿새쯤 되었을 때였다. 다저녁에 나도 모르게 바닥에서 잠든 적이 있었는데, 남편이 저녁을 먹자고 내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정신이 다 들기도 전 목을 쥐어짜는 울음부터 터져 나왔다. 접사 렌즈의 초점을 맞추듯 그런 내 모습이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멈추기엔 이미 늦었고 남편은 방에서 나간 뒤였다.
본능이 이성을 앞지른 순간은 살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이 겪어왔지만, 잠시나마 이성이 본능에 압사당한 느낌을 받아본 적은 그리 흔치 않았다. 이유불문하고 한동안 그렇게 울분을 토해내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졌다. 아무 길바닥에 웅크리고 자는 들개처럼 가만히 내 숨소리에 빠져들었다.
단지 잠이 극히 모자랐다는 것만으로 포효한 건 아니었을 거다. 작년까지 무너졌던 체력이 아직 다 올라오지 못했고, 오랜만에 야심차게 시작한 일을 또 없던 일로 되돌려야 했던 게 한 방이 되었던 것 같다. 별것 아닌 하나에 전부를 거는 마음으로 덤볐다. 그런데도 뭘 하려고만 하면 어그러지니 이제는 삼재를 거부할 명목도 없다. 이럴 땐 차라리 방문을 활짝 열고 정성스레 맞이하는 편이 낫다.
삼재야, 어서 와.
늦게 열어줘서 미안해.
이게 가능한 일인가. 고작 몇 센티미터도 안 되는 문지방 저것이 수년째 나를 막아서고 있다는 게. 뭐 이런 낙담을 보다 못한 무의식이 나를 사람이기보다 사흘쯤 굶은 짐승으로 만들어놓고 싶었나 보다. 가끔은 본능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잠깐의 잠이 얼마나 달았는지 모른다.
인간을 더 넓은 범주에서 바라보면 딱히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의사의 말에 불끈 심지가 돋았던 것도 다름 아닌 한 생명의 자기 보존 본능에서 비롯된 걸 테니까. 엄마라고 해서 독감에 당연히 걸려도 되는 것은 아니고, 엄마이기 때문에 고열과 구토 따위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엄마라는 사람 역시 제 한 몸 사릴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로서 해내는 것뿐이다. 누구 하나 챙겨주는 이 없는 이 땅에서 나 아니면 누가 이런 반문을 할 수 있을까.
선생님, 저는요?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나 혼자 되뇌어본다. 밖에서 했다가는 혀 차는 소리만 돌아온다. 남의 혀로 실컷 얻어 맞아본 적 있는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려 솔직해지는 법이다. 여긴 아무도 모를 테니까.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찾을 테면 찾아봐라. 기왕 하는 김에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도 토닥여준다. 하려던 일은 잠시 중단했다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위로한다. 모가지가 꺾여버린 의지도 먹이고 입히고 재워 다시 일으켜보자고 북돋아 준다.
다시 또 한 주에 걸쳐 입원 치료를 받았다. 아이가 퇴원하고 나서야 슬슬 오르는 열을 느낀다.
* 대문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