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답을 좀 알려주오
부부싸움은 혀로 목 베기
무뎌지면 죽는다
넌 항상 그런 식이야
이십삼 년 전에 말이야
*** 이어지는 글은 <장난치다 에세이>입니다.
난 그가 자그마치 이십삼 년 전에 한 일을 기억한다. 이제 그만 잊었으면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아마도 잊기 싫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새파랗던 시절 각인된 것들이 이토록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리 없다. 보통은 긴 시간 풍화와 마모로 인해 표면이 거칠어지거나 갈라지거나 변색이라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대로면 죽을 때 박물관에 기증해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따로 꺼내 보관할 수만 있다면.
스마트폰에는 <그날들>이라는 앨범이 있다. 그 속엔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판단한 남편의 오점들을 캡처한 사진들이 즐비하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진 증거라든가 특정 사건과 관련해 정황상 그의 잘못임이 드러나는 문구라든가 하는 걸 저장해 두었다. 구태여 다시 열어보는 일도 없거니와 다른 특별한 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걸 찰칵하고 새겨둘 뿐이다.
옹졸하다고 보아야 할까. 적당히 잊어주면 될 것이지 기록까지 남겨두다니. 그럼에도 한 번 체득된 습관은 쉬이 고쳐지질 않는다. 무언가가 어긋났고 그걸 스스로 되돌릴 수 없다고 느껴질 때, 한 마디로 무력해지는 순간 나는 지난 과거로부터 최대한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 그러모은다.
굳이 앨범을 뒤지지 않아도 불행을 증명할 거리들은 흙에 뒹군 사탕을 향하는 개미떼처럼 몰려나온다. 여기서부턴 내 힘이 미치지 않는 듯 그것들이 제멋대로 달려들어 흡입하기 시작한다. 미쳐서 날뛰는 생각들. 생존을 위해 설계된 인간의 뇌는 이제 스스로를 개미떼로 뒤덮어 역공한다. 어느새 나는 두 손을 놓고 검은 무리가 단물을 쪽쪽 다 빨아먹을 때까지 마냥 내버려 둔다. 마음에 빗장을 걸고 은둔하며 그 시커먼 것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마음속에선 내내 같은 말이 맴돈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
넌 항상 그래.
누구에게나 고칠 수 없는 결점은 존재한다. 그 결점이 항시 상대적이라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즉 다른 이들에겐 대체로 평탄할 수도 있는 그의 어느 지점들이 나라는 사람을 만나 몹시도 거슬리는 마의 구간이 되는 것이다. 넘을 때마다 껄떡거리며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몸이라도 아픈 날엔 불쑥 튀어나온 그 점을 대패로 미끈하게 갈아버리고 싶다. 결과적으로 그의 결점은 나의 결점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두 점들은 서로 양보할 기색이 없다. 그야말로 무뎌지면 목이 베인다는 심정으로다가 매일 밤 각자의 혀를 갈아 결전의 날에 이르러 상대의 숨통을 노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겠다는 심보는 무려 이십삼 년 전에 일어났던 미제사건까지도 끌고 와 서로의 주리를 틀고 인두로 지지며 죄를 추궁한다. 아직까지 명확한 가해자도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혀있는 일이거늘 여태 피해자라 믿고 있는 둘은 마치 처음처럼 시시비비를 가린다. 지치지도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누구 하나 먼저 입을 닫지 않는다. 마지막에 지껄이는 사람이 승자라도 된다는 듯이.
가끔은 상상한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되어 무려 육십 이년 전에 일어난 일로 서로를 채근하는 모습을. 그때도 나는 이 짓을 계속하고 있을까. 팔만대장경처럼 길게 새겨진 지난날을 티끌이 되도록 곱씹으며 다 빠진 이 대신 잇몸을 갈고 있으려나. 아니면 미래의 그날엔 진정한 가해자가 누구인지 그 범인을 찾아냈으려나. 그도 아니라면 둘 중 하나가 먼저 무뎌진 혀를 내려놓고 항복을 선언했으려나. 다름 아니라 숨이 끊어져서. 혹은 인연이 끊어져서.
오늘도 나의 앨범엔 하나의 기록이 더 늘었다. 상대가 변치 않으리라는 허탈감은 나 역시 그러하리라는 좌절감과 맞닿아 있다. 아마도 그의 숨겨진 앨범에는 나라는 사람의 오점에 대해 백과사전만큼이나 자잘하게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토록 처절하게 싸워가며 서로의 흠을 수집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건가. 입으로는 승전을 외치면서도 어째서 두 어깨는 우그러들기만 하는 건가.
언제나 질문만 남는 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