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지 않아요
아줌마, 집 열쇠가 없어요
내가 이러면
사과가 깎아지고
저녁밥도 차려졌지
거 아줌마! 복지센터가 어디요?
어느 택시 기사가 물어왔지
나는 저 쪽을 가리켰어
복지센터 반대 방향을
저 아줌마! 좀 비켜주실래요?
양손에 짐을 이고 지고
십팔 킬로짜리 인간까지 들어
날 흘겨보는 여왕님 길을 비켜드렸다
*** 이어지는 <장난치다 에세이>입니다.
마냥 어려 보이고 싶어 내려친 앞머리 사이로 가느다란 실선들이 비친다. 걸을 때마다 커튼처럼 벌어지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다닐 수도 없고, 바람까지 부는 날엔 어느 정도 들킬 각오를 하고 집을 나선다. 흰머리는 모근보호를 위해 가급적 뽑지 않는다. 다만 옆통수에 안테나처럼 삐죽 솟은 것들은 씨를 말리겠단 심정으로 멱살잡이한다. 눈밑지방은 안경테로 교묘히 가리고 간간이 웃음으로 밀어 올린다. 모공은....... 그냥 둬야지 어쩌겠는가. 가끔 탈이라도 쓰고 싶지만, 그러면 날 만나줄 이들이 없어질 것이다.
나에게 옷이란 더 이상 체온유지와 개성 표현, 신체보호 및 주요 부위 은폐를 위해서만 사용되는 장비가 아니다. 해마다 점점 더 제멋대로 그어지는 육체의 경계선을 덮어버릴 유용한 도구로 펑퍼짐한 티셔츠와 청바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힘들게 운동해서 몸을 만드는 것보다 힘들게 쇼핑해서 옷을 찾는 편이 더 빠르고 간편하다.
거 아줌마!
저 아줌마!
지금의 내 모습을 저것 말고는 다른 대명사로 불러낼 방법이 없다. 어릴 적 동네에서 흔히 보아왔던 아줌마들이 바로 이 아줌마다. 아이들이 나를 볼 때마다 '어? 아줌마다!'라고 할 것이다. 애들은 그렇다 치고 스무 살 짜리라든가, 심지어 많아 봐야 갓 오십에 들어섰음직한 이에게도 나는 이제 엄연한 아줌마다. 가리고 덮어도 더는 감출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아줌마로소이다.
다행히 싫지만은 않다. 이제는 기억에서 아스라이 멀어져 간 그때 그 아줌마들을 떠올리면 그렇다. 집열쇠가 없다며 쫄래쫄래 따라 들어가선 간식에다 저녁밥까지 얻어먹고 배를 두드리며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굳이 이모라 부르지 않아도 더없이 나를 이모처럼 대해줬던 품이 넓은 여자 어른을 상징하는 단어가 내게는 바로 아줌마였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아이가 콕 집어 이모라 부르지 않는 한 나는 스스로를 아줌마라 소개하곤 한다.
아줌마가 도와줄게.
아줌마가 들어줄게.
아줌마가 찾아줄게.
그럼에도 나 자신이 그 시절의 아줌마들과는 생판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이 너무나도 달라졌고, 내가 알던 아줌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멸종위기에 달했다. 아직도 전국 각지에 숨어는 있겠지만, 조만간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 인물들이며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는 한 증발해 버리고 말 소중한 역사이다.
한편 다른 의미로서의 아줌마도 존재한다. 하나는 예로부터 남자도 아니요 완벽한 여자도 아닌 별도의 집단에 속한 이들을 일컫는다. 보통 그들은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은 사람으로 비치며 때로는 지식이 부족하고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이후 아줌마란 운전대만 잡으면 온통 김 씨로 돌변하는 전국의 여사들을 대표하는 자들이 되었고, 한때는 벌레와 동등하게 취급받던 젊은 엄마들까지도 이 아줌마 집단에 소속되었다.
민폐와 무례의 상징이 된 아줌마. 그런 탓에 현시대에서 아줌마로서 살아가기는 만만치가 않다.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 실수를 넘어 아줌마임이 더 죄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한 잘못이 '부주의로 인한 잘못'이 아니라, 단지 '아줌마이기 때문에 일으킨 잘못'으로 오인받더라도 할 말이 없다. 그들이 가진 확신은 내가 가진 신념보다 강하다. 여러모로 아줌마는 존중보다 무시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쪽으로 내지르는 목소리엔 상대를 아무렇게나 대하고 싶은 본심이 숨겨져 있다. 소리의 근원을 따라가면 눈썹 앞머리에 '너무 거슬려서 당장 치워버리고 싶은' 짜증을 그어 보인다. 이에 응대하는 마음 역시 답이 없다. 늙기 싫어하는 욕심이 옹골지게 들어차 있거나 처녀 때와 같이 대우받고 싶은 자존심이 권력을 탕진한 황제와 같이 자리하고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했다고 세상을 등질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멸시받는 아줌마로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위해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내게는 없는 옛날옛적의 아름다운 아줌마상을 불러와 거짓 자아라도 만들어내야 하는가. 아니면 뾰족하게 쏘아붙이는 말침들에 면역력이라도 길러야 하는가. 나날이 아줌마다워지는 행색에 주눅이 들 때는 또 어찌해야 하는지. 식단과 운동으로도 안 되는 불가항력의 노화를 막기 위해 이마거상과 눈밑지방 재배치와 써마지 또는 울쎄라 육백 샷을 고려해야 하는가.
TV속에나 등장하는 아줌마들 말고 그 외 세상의 수많은 아줌마들은 먹은 나이만큼 늙어있고 해온 잡일만큼 지쳐있다. 나름 노력을 다해도 그 모습이 어질러져 있을 때가 많으며, 그러길 작정했다기보다 그러지 않기를 포기했다고 봄이 더 정확하다. 가끔 실수도 하지만 그것이 아줌마이기 때문은 아니며, 내가 한 잘못엔 고개 숙여 사죄할 줄도 안다. 보기에 영 마뜩잖더라도, 그럼에도 따뜻한 가슴을 지닌, 언제든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그럭저럭 괜찮은 인간이다. 해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