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수를 구하라
반찬집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또 시켜줄게.
수제반찬
내가 해준 요리 중
제일 맛있었던 게 뭐야
카레, 짜장, 샐러드
*** 이어지는 <장난치다 에세이>입니다.
카레, 짜장, 샐러드.
두 눈동자로 카페 천장을 더듬어가며 기껏 생각해 낸 요리가 저 세 가지였다. 결혼생활 십칠 년. 그동안 해댄 요리들이 얼마인데, 저것들이 마누라가 해준 음식들 중에 가장 맛있었던 메뉴였다고 한다. 카레와 짜장은 공장에서 다 만든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궁색하게도 채소를 잘라 넣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샐러드는 생채소에 소스만 뿌리는 거랬더니 그제야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토끼장에 갇히고 싶은 건가.
아이는 대답이 달랐다. 된장찌개와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김칫국 그리고 삼겹살. 그러면서 엄마는 고기를 잘 굽는다고 덧붙여주었다. 고기는 고기맛으로, 김치 요리는 김치 맛으로 먹는 것 아니냐고 되물으려다 말았다. 그나마 된장찌개를 맨 먼저 외쳐주었던 것이 위안이 되기도 했으니.
나 자신이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어릴 적 종이접기 아저씨를 따라 개구리와 튤립을 접었던 것처럼 유명한 유튜버들을 찾아 이것저것 흉내 내 보았지만 끝내 내 것으로 만들진 못했다. 처음엔 얼추 괜찮은 맛을 냈다가도 다음번에 호기롭게 내놓으면 몇 날 며칠 밥상에 파리만 날리곤 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던가. 만들 때마다 달라지는 맛에 나조차도 스스로를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그깟 요리 좀 못하면 어떠랴. 이런 속 편한 소리는 적어도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주부를 전업으로 삼은 지 올해로 십삼 년 차에 들어선 자로서 식사제공의 의무는 그 맡은 바의 무려 5할에 해당한다. 그런데 하필 손맛이 떨어진다면, 가끔은 손이 아닌 발로 휘저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면, 애써 일해놓고도 왠지 근무태만에 해당하는 것 같은 불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병원행이 잦아지던 재작년부터는 그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어 가며, 실제 장바구니보다 (배달을 즐기는 민족의) 온라인 장바구니를 불려 가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주부로서 느끼는 일말의 죄책감을 '남의 손 반찬'과 함께 그릇에 담는다. 엄지손가락으로 시킨 줄도 모르고, 마치 자랑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 듯 흥분하며 아이가 물어온다. 어떻게 만들었냐는 천진난만한 질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또 시켜주겠다고 답한다. 미안하다.
남편은 회사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잦고, 가끔 사다 놓은 반찬을 내놓더라도 군말 없이 잘 먹는다. 그 모습에 고맙다가도 한편으론 그가 내 게으름에 대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사연이 따로 있을 거라 짐작이 된다. 사연인즉 예전에 그는 나에게 "집에서 뭐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했었다. 그것은 하나뿐인 마누라의 하루일과를 궁금해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보통은 '도대체'라는 부사를 앞에 달고, 집에서 뭘 하고 자빠졌는지를 의아해하는 물음이었다.
친정 엄마께 받아온 레시피로 새신랑이 좋아하는 굴국밥과 건강에 좋다는 황태 해장국을 부지런히 끓여대던 때도 그랬고, 어린이집에도 안 다니는 아이를 둘러업고서 김치찌개와 콩나물밥과 참지전 따위를 차려내던 시절에도 한결같았다. 아마도 어머님이 틀어두신 아침드라마를 무심결에 보고 자라, 본인이 생각한 바를 김치싸대기 하듯 전하는 일에 별 거부감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진짜로 하는 일이 없어진다 한들 그는 지금의 나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자음 하나마저도 없다.
겪어본 바 주부의 일이란 것이 그랬다. 뭘 해도 더하기보단 빼기가 많다. 먼지를 없애고,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해치우고, 공들여 해놓은 음식들은 가족들의 뱃속에 감춰진다. 집도 차도 옷도 하다못해 고무줄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긴 시간 들였던 노력의 증거들은 눈앞에서 사라져만 간다. 땀 묻은 발자국은 언제나 미지수다. 따라서 그날그날 수행한 임무들을 브리핑하지 않는 이상, 먼 훗날 아이는 저 혼자 큰 줄 알 테고, 남편이란 작자는 저 혼자 일한 줄로 알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맛없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뭘 해도 그 답이 '0'일뿐이라는 믿음이 나를 더욱더 요리와 멀어지게끔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 빼버린 그 자리에 뭐가 남았는지, 정말 그 답이 영이 맞는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러다 문득 플라스틱 통에 담긴 남의 손 반찬들을 옮겨 담고, 그걸 또 맛있다고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과연 이게 최선인지를 의심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꼭 잘하는 것만 해야 하는가를, 누군가 인정해 주는 일에만 뜻을 두어야 하는가를 내게 묻는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고 나마저 몰라주는 지금의 사태가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한다. 생각을 하다 하다 내일 만들 반찬도 떠올려 본다.
새송이버섯볶음과 시금치 무침
새송이 버섯은 혈관이 좁아질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버터를 넣어야 맛이 난다. 기름이나 버터나 뭐든 쫙쫙 빨아들이는 재료이니 되도록 한 번 먹고 죽을 각오로 넉넉히 두른다. 시금치는 적당히 데쳐야 하는데 그 '적당히'가 매번 들쑥날쑥이다. 어느 날엔 밭에서 갓 뽑아온 것 같고, 어느 날엔 누가 발로 짓이겨놓은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의 미지수 중 두 개를 구했다.
(나무껍질맛이 나는 버섯조림 + 흙맛 나는 시금치 + c + d + e + ......) - 나무껍질맛이 나는 버섯조림 - 흙맛 나는 시금치 소량 - 그 외 여러 증거들 = ?
시금치는 며칠째 다 먹지 않고 남겼으니 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