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원에서 고성까지, 동해안 자전거 종주 강원구간 여행 -
뜨거운 태양 아래 페달을 밟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역사의 무게를 마주합니다.
짙어지는 녹음만큼이나 선명해지는 과거의 기억들.
여름의 길 위에서는 땀 흘리고 지쳐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길. 그 전야의 어둠 속
자전거 국토종주 동해안길은 경북 구간과 강원 구간으로 나뉜다. 길은 이어져 있으나, 인증 의무는 중간을 건너뛴다. 아마도 너무 험한 길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대부분의 종주객은 이어서 달리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럴 시간도, 체력도, 용기도 없기 때문에 각각 나눠 달린다. 이번에는 강원 구간을 다녀왔다. 경북 구간은 제주도 종주를 다녀온 후, 가장 마지막으로 갈 생각이다. 아직 기약은 없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언젠간 가게 될 것이다.
저녁 식사와 함께한 반주 덕분일까. 임원항 밤거리를 걷는 느낌이 남다르다. 지금 이 시간은 아무런 목적이 없는 시간이다. 달리는 건 내일부터고, 오늘은 모텔에서 잠만 자면 된다. 관광을 온 것도 아니기에 횟집도, 노래방도 갈 필요가 없다. 집도 멀고 회사도 멀다. 오로지 혼자이기만 하면 되었다.
항구답지 않게 말끔한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태어난 지 서너 달쯤 돼 보이는 동네 강아지와도 잠시 놀았다. 다행히 간식으로 줄 육포도 있었다. '수로부인 헌화공원' 입구의 텅 빈 주차장에 들렀다. 방파제 너머 넘실대는 파도는 밤에 물들어 검게 빛난다. 난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댄다. 시야에 비치는 건 파도와 테트라포드, 난간뿐이다. 그 외 아무것도 없었지만, 따로 필요한 것도 없었다. 달리는 건 역시 내일부터면 되었다.
수로부인이 꽃을 꺾어 달라 한 까닭
향가 '헌화가'에는 수로부인이 등장한다. 강릉 태수 부임길인 남편을 따라가던 중이었던 그녀는, 어쩐 생각인지 해안가 절벽 위 철쭉꽃을 따다 줄 것을 요구했다. 주변 시종들이 곤란해하자, 마침 지나가던 소 치는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치며 불렀다는 노래가 헌화가다.
난 궁금했다. 수로부인은 왜 절벽 위 꽃을 요구했을까. 높은 고갯길이 아니면, 깎아지른 절벽길로 이어진 이 길을 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당시라면 길 상태는 지금보다 몇 배 더 험했을 것이고, 수로부인은 지치고 지쳐, 피로가 극에 달한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겨우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숨 돌리고 있는데, 갈 길 먼 수행원들이 길을 재촉한다. 더 있다 가자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부인이 나름 시간 끌기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는 절벽 위 꽃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노인이 나타나 꽃을 꺾어 바친다. 수로부인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비쳤을 것이고, 눈치챈 노인이 노래로 용서를 빈 것은 아닐까.
그런 만큼 길이 힘들긴 하다. 다른 종주길이라면 하루에 한두 번 만날 고갯길이 수시로 나타난다. 그것도 아주 긴 고갯길이다. 오늘은 비까지 내린다. 우의를 입고 있지만 가리지 못한 곳곳으로 빗물이 스며든다. 바퀴에 차인 길바닥 물까지 위로 솟으니 몸도 자전거도 모래흙 투성이다. 그래도 이렇게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꾸준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주는 모든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다행히 달리기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나니 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친다. 긴 고갯길도 끝나면 다시 긴 내리막으로 이어지니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오늘의 종주는 임원 인증센터에서 시작해 정동진과 경포해변 인증센터 중간쯤에서 멈췄다. 거리는 약 80여 km, 시간은 중간 휴식 시간 포함 7시간 정도. 전체 구간을 짧게 나누고 하루거리를 길지 않게 잡은 덕분에 여유롭게 달릴 수 있었다. 임원에서 망상해변까지는 반복되는 고갯길과 해안 절벽길을 달렸고, 동해·삼척 구간은 굉음을 내는 덤프트럭과 함께 시멘트 공장 지대를 통과한다. 공포감이 들 수 있는 구간이나, 가끔 만나는 한적한 해안길에선 또 나름 위로를 받는다. 종주길 강원 구간 유일의 공장 지대인 듯하다.
역시 바다는 동해안, 이젠 낯설법도 한 추억들과 조우하다.
길 옆 담장 너머로 언뜻 생경한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군함의 마스트 부분이다. 말로만 듣던 동해 1함대인 듯했다. 호기심에 가던 길을 멈추고 정문 쪽으로 좀 더 다가갔다. 순간, 부스에서 초병이 튀어나온다. 날 어떤 존재로 인식했는지는 모르나 긴장감이 느껴진다. 괜히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다시 자전거를 돌렸다. 30년도 더 전의 내가 그 부스 안에 있는 것 같았다. 턱끈 채운 철모 아래 표정, 긴장된 움직임, 경계심을 가득 담은 눈초리, 그 모든 순간의 감각과 느낌이 마치 어제 일처럼 되살아났다. 그래서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부디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전역하길.
세월이 흐르니 자꾸 같은 기억이 겹친다. 2014년에도 이 길을 자전거로 달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직 동해안 종주라는 타이틀도 없었고, 자전거길도 막 조성을 시작하던 단계라 대부분 7번 국도를 이용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작은 항구와 방파제, 등대, 긴 모래사장,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 조금 달라진 것이라면 바다 위 점점이 떠 있는 서핑객들이랄까. 그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이곳에서 일상화된 모습인 듯하다. 세상은 어수선해도, 풍경만은 여전히 넉넉하고, 삶도 조금은 더 풍요로워진 모양이다.
"백사장이 이리 길고 넓게 뻗어 있는 줄은 자동차로 다녀갔던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어느 구간은 수십 리에 이르는 모래밭이다. 해수욕장 이름을 달고 있지 않을 뿐, 어디서든 사람이 들어가면 그대로 해수욕장이 되고도 남겠다. 심지어 항구에 인접한 곳조차도 물의 맑기가 다른 곳에 지지 않는다. 아직 성수기가 아닌 듯 인적 없는 해변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 2014년 자전거 여행기 중에서
역시 이번에도 그렇다. 서해안도, 남해안도 나름 위로와 감동을 주지만, 역시 바다는 동해 바다가 으뜸이다. 오늘같이 흐린 날에도 오른쪽의 바다는 푸르고, 모래사장은 빛났다. 왼쪽으로 열 지어 늘어선 백두대간 준봉에는 마침 구름까지 걸려 있으니, 가히 선계라 할 만했다. 더욱이 어제와 달리 높은 고개는 드물게 만났고, 길게 평탄히 뻗은 해변길로 달리니 마음은 넉넉해지고 몸에는 피로가 쌓이지 않았다.
주문진을 지나 지경공원 인증센터로 향하는 길은 무려 자전거 전용 도로다. 도보나 자전거로만 닿을 수 있는 곳에 인증센터가 있었다. 향호라 이름 붙은 작은 호수를 끼고도는 그 길 위에서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이가 느낄만한 만족감을 느꼈다. 잠수 교육이라도 받고 있는 듯한 해변가 일군의 무리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어간다.
한강부터 시작한 자전거 국토종주길이 되새김된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4대강 종주와 섬진강 종주(처음 시작 기준으로 국토종주 완성)까지 마치고, 다시 시작한 종주길이다. 이제는 제주도와 동해안 경북 구간만 남았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힘들게 달리는 순간, 불쑥 솟아오르는 험한 생각이 없도록 말이다.
아직 해가 한참 남은 시간에 속초에 도착했다. 청초호를 둥글게 끼고 형성된 도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은 아니라지만, 지금은 동해안 도시 중 강릉과 함께 수위를 다툰다. 게다가 한국전쟁 이전에는 38선 이북, 북한 점령지이기도 했던 특이한 이력이 있다. 이젠 일 년 내내 관광객이 몰리고, 나 역시 오토바이 여행길에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그간 밤에 머문 적은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시내 한가운데서 묵는다.
호텔에 들어 짐을 풀고 인근 시장에 가 닭강정 한 박스를 사 왔다. 작은 맥주 한 캔과 함께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런데, 솔직히 이 시간에 TV를 틀어놓고 멍하니 있는 것 외엔 할 일이 없다. 그래도 가끔 내 입가에는 스스로 까닭을 알지 못하는 미소가 번지니, 꼭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늘 길은 경포해변 인증센터를 거쳐 영금정까지. 거리는 약 75km, 쉬는 시간 포함해 6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일상은 날 기다리고, 난 아직 그 일상과 오래 떨어질 수 없다.
오늘도 길을 서두르고 싶지 않아서 새벽을 일찍 시작했다. 6시 이전에 호텔을 나서 다시 바닷길로 돌아갔다. 휴일을 넘긴 월요일 아침의 바다는, 전날의 흔적을 지우느라 조용히 분주했다. 쓰레기 운반차가 지나가고, 안전조끼를 입은 노인 서너 분이 조를 이뤄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옅은 안개가 낀 해안길은 작은 항구를 지나며 북쪽으로 이어졌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빈 속을 달랠 방법은 없었지만, 풍경을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먹으니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보다도 더 편안해진 길을 쭉쭉 내달렸다.
속초를 벗어나면 곧 송지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고성군에 속한다. 근처에는 ‘왕곡마을’이라는 전통 마을이 있다. 제법 규모 있는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삼면이 산으로 감싸인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나는 매년 한 번 이상 그곳에 머물며 하루쯤 묵곤 한다. 호텔에서는 방이 아무리 좋아도 ‘갇혀 있는 느낌’인데, 이곳에서는 방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듯한 해방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흩어진 옛 건물들에는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나는 말 그대로 객이 되어 편안히 신세를 질 수 있는 곳이다. 호수를 옆에 끼고 잠시 자전거를 멈췄다. 저 멀리, 호수 건너편에 마을이 있을 것이다. 빠르면 올가을, 늦어도 내년 봄에는 다시 묵으러 올 생각이다.
북천철교 인증센터를 지나니 화진포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넉넉한 자연호수다. 주변은 숲으로 울창하고, 해변에는 해송숲이 펼쳐져 있다. 고운 모래사장까지 품고 있는 청정함이 인상적인 곳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김일성이 별장으로 썼고, 이후에는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의 별장이 지어졌다. 오래전 처음 그곳들을 방문했을 때, 옛사람들의 삶이 참 소박하면서도 고급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에게 공간이란 소유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잠시 멈추어 ‘함께하는 대상’ 같았다. 이후 우리 전통 건축물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감정을 느껴왔다. 으리으리한 별장이 아니라, 숲 속 작은 오두막이 ‘최고 권력자의 별장 꾸밈’이었던 것이다. 아, 물론 김일성 별장은 일명 ‘성’이라 불리는 2층 석조건물이다. 다만, 김일성이 처음 지은 건물은 아니고 일제강점기 외국인이 지은 것을 별장으로 쓴 것이다.
통일전망대 인증센터 직전, 항아리처럼 둥근 해변이 나타났다. 한눈에 쏙 담기는 아담한 크기인데 ‘무송정’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민통선 바로 아래의 해안이라 그 분위기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아무 생각 없이 여름 한 철을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남들과 달라’ 어찌어찌 잘 살기도 하지만, 또 ‘남들과 달라’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다르게 느껴야만 한다. 1945년의 분단은 이제 80년이 되었고, 곧 100년을 맞게 된다. 우리는 언제까지 같은 동포라는 의식을 지니고 살 수 있을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학교에서도, TV에서도, 극장에서도 불렀지만, 이젠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요즘엔 그 노래를 부르는 장면조차 본 기억이 가물하다.
언덕 위 인증센터(민통선 밖 인증센터)에서 마지막 도장을 눌러 찍었다. 자전거를 돌려 대진터미널로 향했고, 서울로 출발했다. 이제 4시간 남짓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것이 참 싫기도 하지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길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일상을 벗어날 ‘작은 꿈들’을 꾸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