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에서 담양까지 영산강을 달리는 자전거 여행 -
평탄한 물길 위에서 과거의 나를 묻다.
영산강 종주길은 다른 곳과는 좀 달랐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곳 근처까지 갔음에도, 물길은 줄곧 평탄하게 흘렀다. 내 자전거 역시 그리 높은 언덕을 오른 기억이 없다. 목포, 나주, 광주, 담양까지 제법 이름난 도시를 거느리고, 드넓은 농경지와 키 작은 구릉을 돌아 나오면서도 어디 한 군데 까탈스럽지 않았다. 다만, 깃대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을 품고 씻기느라 탁해진 물빛만이 애처로이, 그러나 넉넉하게 흐르고 있었다.
여권처럼 생긴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여행' 수첩 첫 번째 인증도장에는 2015년 4.6. 月 13:30 이라 적혀 있다. 정확히 10년 걸렸다. 나이는 쉰을 넘겼고, 디스크와 지병에 시달리는 몸은 한층 말을 듣지 않는다. 가족 둘을 저 멀리 떠나보낸 세월이었다. 시작할 때 이리 오래 걸릴 줄 몰랐지만, 그렇게 걸려 버렸다. 내가 가진 수첩에는 오늘로써 더 이상 빈칸이 남지 않는다. 자전거 종주길로 추가 지정된 제주도 길과 동해안 길이 있지만, 내 숙제는 처음 그대로다. 영산강하구둑 인증 첫 도장을 꾹 하고 눌러 찍는다. 오늘 하고 내일, 내가 함께 할 저 강을 바라보는 느낌이 익숙하고도 새롭다. 강물은 둥실둥실 날갯짓을 하며 더욱 아래쪽 바다로 흘러간다.
그간은 상류에서 하류 쪽으로 강을 따라 내려왔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의 속성에 순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고도차에서 오는 이점도 아쉬웠기 때문이다. 오늘은 하류에서 상류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바람을 등으로 받고 싶었고, 강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따라가는 강은 늘 너무도 빨라, 아무리 발을 굴러도 그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첫날의 바람은 뒤에서 불어 줬으나, 둘째 날의 바람은 앞에서 불었다. 하지만 실로 쏟아지듯 흘러 다가오는 강의 얼굴을 마주하며 달리는 일은 싫증 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강과 나는 서로를 응시하며 서로를 달려 나갔다.
역사는 켜켜이 쌓이고, 삶은 계속 된다.
두 번째 인증센터인 느러지 관람 전망대는 강을 낀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인위적인 끌어올림이다. 이번 종주길 거의 유일한 험로였다. 다리가 퍽퍽해 자전거에서 내려걸었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여유로움이, 무조건 페달을 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벗게 해 준다. 경사도에 맞춰 자연스레 기울어진 상체로 인해 더욱 가까워진, 땅 위 날것들을 살피며 천천히 올랐다. 앞선 인증센터에서 36킬로미터란 제법 먼 길을 온 후라 그런지 피곤함이 느껴진다. 마치 종주의 막바지인 양 중간중간 쉬어 줘야 했고 비상식량인 양갱도 이미 먹어 버렸다. 몸이 덜 풀린 탓이겠지. 그래도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고, 오후 늦게 쯤 오늘의 목적지인 나주에 닿을 것이다. 느러지 관람 전망대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영산강은 종 모양으로 생긴 육지를 크게 감싸고돌며 흐르고 있다. 그 땅의 끝은 완만하게 흐르는 강 속으로 부드럽게 잠겨 들어가고 위로는 제법 넉넉한 풍요로움을 이고 있다. 참으로 목가적인 풍경이다. 반대로 저 땅 위에 서면 건너편 이곳의 거친 단애를 마주하겠지만, 그 또한 강이 한 일이니 무섭지 않을 것 같다. 어제의 폭우에 쓰러진 나무의 주검을 헤치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길은 죽산보를 거쳐 나주로 향한다. 너른 들판 너머로 높고 낮은 산들이 보였지만, 멀리 있는 탓에 위협적이지 않았다. 계절은 이미 여름과 만나고 있기에 어디 하나 빈 곳 없는 초록빛이다. 강은 잘 골라놓은 제방을 따라 얌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이곳 물결은 저 멀리 산 아래까지 닿아 있었다. 영산강 줄기가 지금 모습으로 단련된 역사는 불과 백여 년 정도이고 꽤 오랫동안 지금 논밭인 저곳까지 물이었고, 바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뱃길에 더 익숙했고, 이곳 영산강의 역사는 뱃길을 따라간 고대 무역의 역사였다. 일찍이 중국 남부와 일본을 잇는 항로의 중심이었으며, 후삼국 통일의 결정적 계기였던 왕건의 나주 점령과 경영은 바다 같은 강 영산강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 지역 일대를 흔히 백제의 강역으로 알고 있으나, 근초고왕의 경영 이후로도 긴 세월, 독자적 문화가 번성했다. 나주 일원에서 발견되는 대형옹관묘와 아파트형 고분 문화로 대표되는 이곳의 고대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치열하고 시끄러웠을 것이다. 그 저력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밑거름이 되었고, 임진왜란 7년 전쟁을 버텨내게 한 생명줄이었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으로 인해 일제 침략기 수탈의 제1 대상이 되었고, 강 또한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메워지고 곧게 변해갔다. 그래도 우리의 강이다. 여전히 영산강은 드넓은 대지를 적시며 그 왕성한 생명력으로 수많은 생명을 길러내고 있다.
피로와 단것에 써진 입맛을 죽산보 근처 매점에서 새우깡으로 달래며, 이제 오늘의 마지막 여정을 달린다. 보를 건너 강의 북안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간다. 자전거 타이어와 바닥이 만나 내는 드르륵 소리에 무척 익숙해졌을 즈음 나주 시내에 들어섰다. 도심의 복잡한 길을 예상했지만, 마치 비밀의 숲에 펼쳐진 비단길처럼 잘 닦인 전용로를 따라 나주 금성관까지 갈 수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수육곰탕 한 그릇을 비우고 잠시 더 달려 근처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어느덧 사위의 빛은 제법 붉게 물들고 있었고, 그렇게 하루길을 달려 내었다.
고요함 속에 마무리한 나의 10 년, 그리고 앞으로.
이틀째 종주길은 오전 7시에 시작한다. 남은 거리를 감안하면 오전 중에 끝날 것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고 서두르지 않았으나, 시작은 7시였다. 광주 시내를 통과하는 종주길은 담양 대나무숲 인증센터까지 내내 이어진다. 험한 구간 한 곳 없이 길은 내내 평탄하다. 문제는 길의 포장 상태다. 처음 조성한 이후 재포장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아스콘은 모두 뜯겨나가고 오돌토돌한 자갈만 남았다. 바퀴에 갈리는 자갈의 비명이 어깨부터 엉덩이까지 모두 전해졌다. 어제 짓눌린 엉덩이 피부에 자극이 더해져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계속 가야지 별 수 있는가. 다행히 오늘 길은 그리 멀지 않을 것 같고, 다채로운 도시의 풍경에 지루함을 덜며 나아갔다.
휑한 제방 한편에 대나무숲 인증센터가 서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울창한 대나무숲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지나 특이하게도 하천 부지에 숲이 보인다. 이곳 대나무는 홍수에도 살아남는 모양이다. 숲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이곳만의 생경한 풍경을 눈에 담는다. 길은 제방 위를 가다 아래로도 내려가고 다시 일반도로로도 이어진다. 왠지 모를 안도감에 편안히 페달을 굴리며 나아갔다. 모든 조건이 편안했고, 특별히 기억에 남을 이벤트는 벌어지지 않았다. 가장 무미건조한 시간이지만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이제 이런 시간이 더 좋다. 어느덧 담양에 닿았다.
메타세쿼이아길 인증센터에서 종착지인 담양댐 인증센터까지는 약 7킬로미터였고, 그 길을 한 시간에 주파했다. 내 평속의 반도 안 되는 속도였다. 10년의 모든 과정을 그 시간에 마무리한다. 아주 평범하게 마무리한다. 누구에게 축하받을 일도 없지만, 나 스스로도 마지막 종주 도장을 다시 꾹 하고 찍을 뿐이다. 긴 시간, 지금 이곳에 이 모습으로 서 있을 나를 기다린 나에게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보상으로 주었다.
담양 시내로 돌아와 사우나를 하고, 근사한 12첩 제육볶음 정식 한 상을 만원에 먹고, 터미널에서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실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 끝은 언제일지 아직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