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에서 만난 섬마을 이야기

- 서해의 작은 섬 덕적도 여행 -

by 도시백수
아직 겨울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길 위로 나섭니다.
녹지 않은 살얼음을 밟는 다리에는 설렘이,
마주하는 바람에는 생명의 기운이 실려 있습니다.
낯선 풍경 속에서 나는 다시, 잊고 있던 작은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섬마을 덕적도의 이른 봄. 그 낯설음과 반가움에 대하여


새벽 첫 전철을 타고 두어 시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에 올라 한 시간 남짓. 덕적도에 닿았다. 배가 부두를 떠난 기억은 있는데 바다를 달린 기억은 없다. 덕적도까지 깔끔하게 잘 잤다. 섬의 최 북단까지 이어지는 중심도로(덕적북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 끝에 오늘의 첫 목적지인 능동자갈마당이 있고, 거기까지 가는 버스는 자의 반 타의 반 놓쳐버렸다. 버스 간격은 한 시간.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그냥 걸었다.


4월인데 눈이 온다. 처음엔 가랑비였으나 조금 지나니 싸락눈, 종국엔 함박눈이 내렸다. 4월에 함박눈이라니. 섬답게 매서운 바람까지 더하니 사방에서 눈이 덤벼든다. 그래봐야 4월에 내리는 눈이다. 걱정되지 않는다. 3살 먹은 작은 사내놈이 조막만 한 손을 꽉 쥐고 나름 결연히 덤비는 것 같긴 한데, 위협은커녕 마냥 귀엽기만 한 모양새다. 고개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날리는 눈에 사뭇 하게 휩싸인 작은 마을들이 나타났고, 그 마을들은 어김없이 작은 바다를 품고 있었다. 마을의 삶은 모르겠으나 바라보기는 정겹고 깔끔하다. 계절 덕분에 특유의 비린내도 풍기지 않는다. 지금은 단지 좋다. 이 마을은 귤색 지붕을 모두 얹고 있다.(덕적도 마을마다 지붕색을 통일해 칠했다. 하나의 마을은 하나의 고개를 넘어 만나고 한 가지 색의 지붕을 볼 수 있다.- 덧: 아닌 곳도 있다.)


마을 앞 물빛은 청량하지 않지만 적당히 탁한 것이 무섭지 않다. 물이 너무 파랗게 맑으면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 덜컥 가슴이 내려앉고는 한다. 이곳 물은 적당히 탁해서 그닥 깊을 것 같지 않다. 물론 난 저기 빠지면 죽는다. 물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몸이다. 그런 바다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매일 공포에 질려 사는 삶일까. 아님 육지 것들이 밭일을 하듯, 논일을 하듯 그냥 노동일뿐일까. 그들이 제일 잘 알 것이다. 바다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 세상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저 바다가 고향일진대 왜 이렇게 무서운 걸까. 그렇지만 결국 고향은 고향인지라 늘 그리워하는가 보다.


능동자갈마당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봐도 바람이 많이 분다 했다. 수 백 미터쯤 앞에서부터 걷기가 힘들 정도다. 험지도 아닌 아스팔트 신작로 위를 걷고 있음에도 가슴팍에 걸리는 바람의 힘이 버겁다. 뭄을 앞으로 잔뜩 기울여 가며 한 걸음씩 걸었다. 무슨 히말라야 고산 지대를 걷는 것도 아니고, 속으론 이런 상황이 우스웠지만, (혹 바람신이 노할까 봐) 겉으론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걸었다. 가끔 트럭이 지날 때마다 뭔가 민망해서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춘다. 오늘 혼자 잘 놀고 있다.


이름답게 크고 작은 맨질한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 크기를 따지자면 코끼리 머리만 한 자갈부터 사람 머리만 한 자갈까지. 결코 몽돌해변으로 불리지는 못할 크기의 검은 자갈 천지다. 실컷 바람을 맞고 자리를 떴다. 가는 길에 보니 서해지역 최대 갈대숲이라는 곳이 쭉 펼쳐있다. 센 바람에 출렁이는 갈대는 운치 있었지만, 너무 센 바람 탓에 가만히 즐기질 못하니 오던 길을 바지런히 되돌아 나올밖에 없었다.

KakaoTalk_20250422_093856130.jpg?type=w773 [능동자갈마당 - 바람이 몹시도 불었다.]


섬에도 산은 있고, 그 산행에서 나는 봄을 마주했다.


위쪽 국수봉에서 아래쪽 비조봉에 이르는 덕적도 종주길 허리께 쯤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는 덕적도항에서 시작하는 덕적남로 가파른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고갯마루쯤에 위아래 산줄기를 잇는 출렁다리가 있고, 그 다리 양 끝이 이쪽저쪽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다. 아스팔트길 따라 두어 시간을 걷고 난 나의 두 다리와 발바닥은 벌써부터 비명을 질러댔지만, 쉬엄 가자며 어르고 얼러 산길을 따라 올랐다.


마치 백두대간 줄기에 올라서 동해와 서해를 한꺼번에 바라보는 것 같다. 섬을 둘러싼 동쪽과 서쪽 바다가 고개를 돌리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향긋한 숲 내음과 뭔가 아련한 바다내음이 교차해 코를 자극한다. 다행히 사나운 날씨는 한 풀이 꺾이고, 가끔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제외하면 걸을만했다. 섬에 있는 산이 대개 그렇듯 산길이 마냥 편하진 않았지만, 지리산 종주를 하던 젊었을 적 나를 소환해 가며 한발한발 더디게 내어본다. 맞다. 산길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다 보면 높은 봉우리에도 올라서고 계곡도 지나가고 바윗길도 넘을 수 있다. 길가의 쭉 뻗은 나무들과 계절에 맞춘 어린 새싹들. 갓 피어 물이 오르기 시작한 진달래를 만나 가끔 말도 걸면서 이렇게 지나가면 된다. 덤으로 초상권 부담 없이 사진도 찍어가면서 말이다. 사진기(실은 스마트폰)를 들이대면 뭐가 부끄러운 지 꽃은 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해서 사진 속의 진달래는 언제나 눈앞 진달래 보다 예쁘지 않다.

KakaoTalk_20250422_094503961.jpg?type=w773 [덕적도 바다 - 산줄기에 서면 양 쪽의 바다가 잘 보인다. 섬 산행의 매력이다.]


수통에 물이 떨어져 갈 때쯤 아래쪽 끝 비조봉에 도착했다. 저 아래 오늘 하루 묵을 서포리 해변이 보였다.광활하진 않지만 품 넓게 뻗은 정갈한 백사장이다. 멀리 보이는 저런 풍경이 미치도록 아름답다. 가파른 계곡길을 따라 반 시간쯤 내려갔을까?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놨을 것만 같은 대나무 숲을 통과해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해변을 향해 곧장 걷는다. 산 위에서 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모래 위에 퍼지게 앉았다. 저 멀리 바다 끝이 어딘지. 나이 탓에 흐려진 눈에 꽉 하고 힘을 준다. 바람이 분다. 세차게 분다. 태어나 처음 모래 싸대기를 맞았다. 아 이런 맛이었구나.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그렇게 맞아본 후 처음인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은 날 왜 그리 미워했을 까? 나이가 지긋한 여선생님이었는데, 내가 좀 까분다고 해서 험하게 날 다뤘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때릴 일이었을까. 그 뒤엔 단체기합을 제외하곤 선생님이란 존재에게 맞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의 기억이 더욱 또렷하다. 50줄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전혀 잊히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나이에도 꽤 충격이었나 보다.


해변에서 그런 일(?)을 당하고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아!, 해변에서 일은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받은 질투 섞인 스킨십인 것 같아 원망이 아닌 없던 그리움까지 샘솟을 정도였다.


숙소로 가는 길에 편의점이 하나 있었고, 식당도 문 연 곳 한 곳이 있었다. 칼국수라도 먹어야지 하고 식당에 들어서니 혼자인 나를 반기는 기색이 없다. 칼국수를 먹겠다 하니 지금 안된단다. 그럼 되는 메뉴가 있냐 하니 지금은 되는 음식이 없단다. 휴게시간도 아닌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다니. 혼자인 날 거부하는 눈치기에 그냥 나왔다. 편의점에서 손에 걸리는 대로 먹을 것과 막걸리 한 병을 집어 계산을 했다. 숙소에 들어와 허겁지겁 먹어 치우니 이젠 졸음이 몰려온다. 씻지도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현생으로 돌아오는 길, 그리고 다시 낯설음


2일 차. 아침 일찍 항구로 가는 마을버스에 오른다. 바다를 끼고 때론 절벽을 따라 해안 도로를 달린다. 바다에 면한 오른쪽 창가에 앉아 스쳐가는 풍경을 즐겼다.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이곳에 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한 현실과 제일 멀리 떨어져 생각하고 싶었다. 도로를 따라 산길을 따라 바닷길을 따라 그렇게 걸었다. 다행히 별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리의 퍽퍽함을 느꼈고 가파른 고갯길에 힘들어했으며, 산길 따라 핀 꽃들에 인사하고 봉우리에 올라 아래를 내려 봤으며, 큰 소나무를 만나 힘껏 끌어안았다. 매 순간 충만했다. 좋은 여행이었다.


섬을 나올 때는 자지 않았다. 창 밖으로 달려드는 물방울을 줄곳 바라보며 다시 인천항으로 돌아왔다.


인천항 도착 시간이 오전 11시가 조금 안 됐을 때다. 문득 차이나타운에 가고 싶었다. 정확히는 차이나타운에 연이은 개항 후 광복 때까지 조성된 근대 거리다. 그곳엔 대한제국의 마지막 몸부림(세관 건물)이 아주 조금 남아 있고, 일제 침략 역사가 제법 남아 있다. 당시 지어진 근대식 건축물들이 몇 개 블록에 담겨 조밀하게 배치돼 있다. 두 어시간 정도 둘러볼 수 있다. 그때의 근대식 건물은 이국적이고 생경하다. 전통 방식의 한옥과 현대식 빌딩에 익숙한 우리 눈에, 당대의 건축물들은 희소성과 함께 충분한 시각적 만족감을 준다. 다만 아픈 것이, 그 대부분이 일제 침략 역사와 같이 한다는 사실이다. 군산, 목포, 논산(강경), 포항 등. 때론 시간을 내어 일부러 찾아가는 그곳에 서면 내 머리와 가슴은 수많은 생각과 느낌들로 폭발해 버린다. 고전 건축 특유의 질서와 정갈함과 고풍스러움에 매료되다가도 수시로 치고 들어오는 역사가 매섭고 아프다. 그래. 그런 곳이다.

KakaoTalk_20250422_101106527.jpg?type=w773 [인천 구 일본 제 18 은행 - 일본 제1은행, 제58은행 등 저 좁은 곳에 남아 있는 구 일본은행 건물만 3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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