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강진에서 광양까지, 섬진강 자전거 종주 여행 -
섬진강. 봄의 격정을 품고 흐르다.
섬진강은 먼 강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큰 강들 중 대도시를 끼고 있지 않은 유일한 강이다. 멀고도 조용한 강이다. 저 멀리 남녘, 덕유산과 지리산을 옆에 끼고 산과 산 사이를 흘러, 종국에 이르러 남쪽 바다와 만난다. 그 멂 덕분에 아직 섬진강은 맑고 그 속 생명들은 건강하다. MB 시절, 사대강 사업이라는 흉수(凶手)에 직면했었으나, 다행히 자전거 종주길로만 그 흔적이 남았다. 종주길을 달리는 내내 나는 그 상황에 감사하고 저 물속에 조용히 숨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전북 임실(강진면)에서 시작한 종주길은 순창, 곡성, 구례, 하동을 거쳐 광양에서 끝난다. 총거리는 약 160km로 섬진강댐인증센터, 장군목인증센터, 향가유원지인증센터, 횡탄정인증센터, 사성암인증센터, 남도대교인증센터, 매화마을인증센터, 배알도수변공원인증센터 등 8개의 종주 인증센터를 지나야 한다. 빠르게 이동하는 이들이라면 하루에도 완주할 수 있겠으나, 보통의 종주객이라면 이틀은 잡아야 무리가 없다. 나는 서울에서 출발해 임실에 닿은 다음 반나절을 달려 횡탄정과 사성암 사이에서 묵었다. 이틀 재에 하루길로 종주를 마무리하고 광양에서 서울로 돌아왔으니, 자전거를 탄 시간은 도합 12시간 정도이다.
장군목을 지나고 향가유원지로 가는 길은 실로 격정이었다. 주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그 여리고 힘찬 기운을 몸 밖으로 터질 듯 뿜어 내고 있었다. 그 빛들은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안쪽 깊이 간직했던 속살의 색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섬진강 양 옆으로 기대어 우뚝 선 산들은 초록이라는 빛의 스펙트럼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갓난아기의 뽀얀 살결 같은 그 빛들이 주변 공기마저 물들이니,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물안개 같았다. 온갖 생명들의 잔치 마당에 홀로 내동댕이 쳐진 느낌이었다. 바깥세상에 알리지 않고(알릴 생각도 없이) 그들만의 잔치를 열었는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가 그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초대하지 않은 나그네가 있건 없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향연에 열중하는 그들 모습에 가끔은 내가 부끄러워 눈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흐르는 강, 섬진강.
향가유원지를 지나 강은 중류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여태껏 오면서 큰 마을도, 넓은 평야도 보지 못했다. 강은 줄곧 준수하게 생긴 산들을 양옆에 거느리며 흘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에는 충분한 크기의 땅은 있었다. 하지만 남이 탐내기에는 뭔가 조금은 모자라 보인다. 험준한 산길을 넘어와 억지로 빼앗아 본들 차지할 부가 넘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한반도 어느 곳에서 봐도 먼 그곳은 사람 손을 많이 타진 않았다. 그래서 섬진강은 예나 지금이나 섬진강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땅의 원형을 목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라 감히 단언하고 싶어 진다.
그 옛날, 이곳 섬진강도 핏빛에 물든 적이 있긴 했었다. 섬진강 수로를 확보하기 위한 백제와 가야의 싸움이 약 1세기 동안 벌어진 적이 있었다. 신라에 의해 낙동강에 대한 지배권을 잃은 가야제국은 왜 열도로 가는 수로 확보를 위해 섬진강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고구려의 침략에 의해 위례성을 잃고 나라의 존폐위기까지 몰렸던 백제의 빈틈을 치고 들어갔다. 가야는 섬진강 상류 장수, 남원 등지를 확보하고 강을 그 세력권에 두는 데까지 성공했다. 하나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동성왕, 무령왕, 성왕으로 이어지는 백제의 국력 회복에 따라 섬진강은 다시 백제의 차지로 돌아갔고,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를 모두 빼앗긴 가야는 시름시름 앓다가 그 명을 다해 갔다. 그 사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 간 생명들이 과연 얼마겠는가.
자전거 타기는 끊임없이 페달을 돌리는 단순 동작의 반복이다. 그 동작을 통해 단 한 뼘의 빈틈도 없이 내 몸은 대지와 연결된다. 이곳 섬진강을 기대어 끊임없는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했을 수많은 사람들 역시 그렇게 대지와 연결돼 왔을 것이다. 비록 잠시 들러가는 여행자의 몸이지만, 오늘 하루 저 강의 품을 잠시나마 빌려 기대고 싶다. 강은 이제 여실히 몸을 불리며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산에 겹겹이 가려진 그 끝을 보여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어줬으나, 다시 잉태하는 강, 섬진강.
아기 숨결 같던 주변이 시나브로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남도대교를 지날 때쯤 이미 산은 완연한 여름 빛깔이다. 하나 아직은 초여름인 것 같다. 두 달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친 갖 이등병 계급장을 단 군인의 모습 같다. 맨 위 단추까지 채우고 평평한 챙의 군모를 머리에 쓴 군기 바짝 든 신병의 모습이다. 아직은 앳된 소년의 모습이 많이 남은 군인. 이제 곧 성하(盛夏)란 치열한 전쟁터로 진군해야 할 그들이다. 그 맹렬함을 상상하니 맨 몸 하나로 맞설 저들이 안쓰럽다. 그래도 그 무거운 섭리를 어찌 거스를 수 있겠는가. 나 역시 피곤에 기울어가는 목에 다시 힘을 준다. 그렇게 오늘도 강과 나는 함께 나아갔다.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자전거를 취미로 선택한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맘이 새록 피어날 때쯤 길은 강의 하구에 닿는다. 이미 강은 바다와 만났고, 둘의 구분은 모호해졌다. 망망대해에 떠 있을 법한 고기잡이 배들이 강에 떠 있고, 강가 갯벌에는 갈대가 넘실댄다. 강은 상류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바다에 넘겨주고, 바다는 수많은 생명의 잉태를 위해 강을 거슬러 오른다. 수 만 년을 단 한 순간도 쉼 없이 이루어지는 역동이리라. 하지만,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외경의 마음만 보내며 달리기를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