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도 안 돼 보이시는 70대 아버님 이야기

『흙 묻은 손, 맑은 마음』

『흙 묻은 손, 맑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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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흙에서 살았다.

마당에 닭을 키우던 시골집에서 태어나

삽보다 먼저 들었던 게 호미였다.

어릴 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동네 산자락 끝까지 가서 소를 몰고,

벼 베고, 고구마 캐고,

저녁이면 땀범벅이 된 채

우물가에 앉아 발을 씻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1955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말이 없으셨지만 성실한 분들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일손이 부족해도

남의 논에서 품 팔아오시곤 했다.

그 모습이 어린 나에겐 ‘사내답다’는 말보다

‘참 고된 삶’으로 느껴졌다.


학교는 재밌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다.

중학교 때는 시골에서 자전거 타고 왕복 10리를 다녔다.

그땐 교복보다 신발이 귀했다.

학교 끝나면 물지게를 메고 논두렁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밤에는 라디오를 붙잡고

서울이라는 곳을 상상하곤 했다.

불빛이 많고, 다들 바쁘게 사는 도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상경했다.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고,

우리 집 형편으로는 대학이라는 선택은 없었다.

처음 취직한 곳은 공장,

기름때 묻은 기계를 닦고, 납품 트럭을 따라다녔다.

가끔은 쌀쌀맞은 거래처 사장에게 꾸중도 들었다.

그래도 그 일을 악물고 버텼다.

월급날엔 아버지 이름으로 우체국 송금표를 썼다.

"5,000원 보냄 – 아들 철호"


스물일곱에 결혼했고,

그 뒤로 내 삶은 나보다는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다.

두 아들이 태어났고, 나는 그저 '가장'이었다.

일찍 퇴근하면 슈퍼에서 귤 한 봉지 사들고 집에 들어가던

그 시절을, 아내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느덧 정년퇴직을 했다.

서랍에 명함이 남아 있고,

전화기는 조용해졌다.

처음엔 허전했지만 지금은 괜찮다.

텃밭을 일구고, 동네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본다.

아내와 시장도 같이 간다.

아들이 손주를 안고 집에 올 때면

왠지 모르게, 내 젊은 날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내 인생은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경력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식들 앞에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아빠는 열심히 살았고,

정직하게 버텼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한 줄씩, 글로 남겨보려 한다.

누군가 읽게 된다면,

이 말을 해주면 좋겠다.


“우리 아버지,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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