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면 예민한 사람? 웃으면 착한 사람?

7화 아니 그냥,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by hey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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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정색하면 예민한 사람? 웃으면 착한 사람?



“아니 그냥,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그 말이 날 가장 진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너무 기분이 나빴다.

그 말, 아마 5초 안에 나온 대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 5초로 인해, 나는 하루 종일

‘나 예민한 사람인가?’를 되뇌며
마음속으로 표정을 반복 재생했다.
정색했나? 웃었어야 했나? 그 상황에서?


■ 웃었어야 했던 순간들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많은 장면에서 웃었다.
기분 나쁜데도 웃었고, 억울한데도 웃었고,

할 말 많은데도 웃었다.
웃으면 사람들이 무해하다고 느끼니까.
웃으면 상황이 빨리 끝나니까.
웃으면 다들 안심하니까.
그리고 나는, 안심시켜 주는 사람으로 자라왔다.

"와 너 진짜 착하다~"
"넌 진짜 배려심 깊어~"
"하하하 너 진짜 센스 있네~"

그렇게 툭툭 던지는 말에 나는 또 웃는다.
심지어 웃고 있는 나 자신에게 약간 소름이 끼칠 때도 있었다.
진짜 착해서 웃는 게 아니라,
불편함을 모른 척하는 데 훈련이 된 얼굴이라서....


■ 정색한 나, 해석당하다

그러다 한 번. 아주 작정하고 ‘정색’을 했다.
회의 중이었다. 내 아이디어를 중간에 끊고 누군가
“아 그건 너무 감성적이지 않냐?”라고 말했다.
나는 정색했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 중얼였다.
“와… 예민하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뭐였을까.
창피함? 분노? 무력감? 아님 그냥… 피곤함?

어쨌든 그날 이후 나는 ‘정색 = 예민한 사람’이라는
공식 아래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심지어, 정색을 안 했는데도 정색한 것처럼 해석될까 봐
내 말투, 어조, 눈빛, 마침표까지 계산하며 말하게 되었다.


■ 웃음과 정색 사이, 그 얄미운 간격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적당히 넘기지 왜 그래~”
“에이~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정색을 해~”
“하하하, 그거 그냥 농담이었잖아~ 진지하긴~”

나는 그게 더 웃기다.
너무 웃겨서 진짜 정색하게 생겼다.
아니, 진짜 웃기다니까?

누가 내 감정에 들어와선, 마치 자기가 관리자라도 되는 양
내 반응을 이래라저래라 하다니.
그리고 그걸 “칭찬처럼” 말할 때가 진짜 블랙코미디다.


■ 그래서 나 요즘은 이런다

정색?
예, 합니다.

웃음?
필요할 때만 씁니다.

착한 사람 코스프레?
이제는 너무 비싸요. (인생 갉아먹습니다.)


이제는 누가 불편한 소리를 하면,
적당히 무표정으로 “그 말은 좀 기분 나쁜데요”라고 말한다.
상대가 당황하면,
“아, 제가 정색하면 예민한 사람이 되는 거였죠?
그럼 이건 무표정이에요. 괜찮죠?”
라고 덧붙인다.

블랙코미디 한 숟갈 얹은 채로....


■ 착한 사람이 웃는 세상이 아니라,

‘웃고 싶은 사람이 웃는 세상’이길

언제부턴가 나에게 붙은 이름표는
“항상 밝은 사람”이었다.
‘항상’이라는 말 안에는 감정의 여지없음이 들어 있다.
언제나 그래야 하는 사람.
그건 결국, 감정을 감추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제 그 이름표를 뗐다.
필요할 땐 웃는다.
필요할 땐 정색한다.
그리고 정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정색은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일 뿐.
예민한 것도, 나쁜 것도, 웃음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를 지키는 데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러니, 오늘도 나의 감정 앞에
당당하게 말해본다.

“정색하면 안 되는 이유, 대체 뭐죠?”



당신에게도 물어봅니다

정색할 줄 안다는 건,
감정을 감추지 않는 용기일지도 몰라요.

당신은 최근에 정색해 본 적, 있나요?
그 순간, 어떤 기분이었나요?

by H.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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