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아니 그냥,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아니 그냥,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그 말이 날 가장 진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너무 기분이 나빴다.
그 말, 아마 5초 안에 나온 대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 5초로 인해, 나는 하루 종일
‘나 예민한 사람인가?’를 되뇌며
마음속으로 표정을 반복 재생했다.
정색했나? 웃었어야 했나? 그 상황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많은 장면에서 웃었다.
기분 나쁜데도 웃었고, 억울한데도 웃었고,
할 말 많은데도 웃었다.
웃으면 사람들이 무해하다고 느끼니까.
웃으면 상황이 빨리 끝나니까.
웃으면 다들 안심하니까.
그리고 나는, 안심시켜 주는 사람으로 자라왔다.
"와 너 진짜 착하다~"
"넌 진짜 배려심 깊어~"
"하하하 너 진짜 센스 있네~"
그렇게 툭툭 던지는 말에 나는 또 웃는다.
심지어 웃고 있는 나 자신에게 약간 소름이 끼칠 때도 있었다.
진짜 착해서 웃는 게 아니라,
불편함을 모른 척하는 데 훈련이 된 얼굴이라서....
그러다 한 번. 아주 작정하고 ‘정색’을 했다.
회의 중이었다. 내 아이디어를 중간에 끊고 누군가
“아 그건 너무 감성적이지 않냐?”라고 말했다.
나는 정색했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 중얼였다.
“와… 예민하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뭐였을까.
창피함? 분노? 무력감? 아님 그냥… 피곤함?
어쨌든 그날 이후 나는 ‘정색 = 예민한 사람’이라는
공식 아래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심지어, 정색을 안 했는데도 정색한 것처럼 해석될까 봐
내 말투, 어조, 눈빛, 마침표까지 계산하며 말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적당히 넘기지 왜 그래~”
“에이~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정색을 해~”
“하하하, 그거 그냥 농담이었잖아~ 진지하긴~”
나는 그게 더 웃기다.
너무 웃겨서 진짜 정색하게 생겼다.
아니, 진짜 웃기다니까?
누가 내 감정에 들어와선, 마치 자기가 관리자라도 되는 양
내 반응을 이래라저래라 하다니.
그리고 그걸 “칭찬처럼” 말할 때가 진짜 블랙코미디다.
정색?
예, 합니다.
웃음?
필요할 때만 씁니다.
착한 사람 코스프레?
이제는 너무 비싸요. (인생 갉아먹습니다.)
이제는 누가 불편한 소리를 하면,
적당히 무표정으로 “그 말은 좀 기분 나쁜데요”라고 말한다.
상대가 당황하면,
“아, 제가 정색하면 예민한 사람이 되는 거였죠?
그럼 이건 무표정이에요. 괜찮죠?”
라고 덧붙인다.
블랙코미디 한 숟갈 얹은 채로....
언제부턴가 나에게 붙은 이름표는
“항상 밝은 사람”이었다.
‘항상’이라는 말 안에는 감정의 여지없음이 들어 있다.
언제나 그래야 하는 사람.
그건 결국, 감정을 감추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제 그 이름표를 뗐다.
필요할 땐 웃는다.
필요할 땐 정색한다.
그리고 정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정색은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일 뿐.
예민한 것도, 나쁜 것도, 웃음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를 지키는 데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러니, 오늘도 나의 감정 앞에
당당하게 말해본다.
“정색하면 안 되는 이유, 대체 뭐죠?”
정색할 줄 안다는 건,
감정을 감추지 않는 용기일지도 몰라요.
당신은 최근에 정색해 본 적, 있나요?
그 순간, 어떤 기분이었나요?
by H.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