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진짜 내 얘기 아니야?

8화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벗기까지

by hey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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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그 말, 진짜 내 얘기 아니야?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벗기까지, 몇 번을 웃어야 했을까.


"아니~ 그건 너 얘기 아니지!

설마 너처럼 착한 애가 그러겠어?"

그 말이 웃기지도 않았지만, 나도 따라 웃었다.
진짜 웃겨서가 아니라,

나 아니라고 해줘서 다행이다 싶어서.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 얼얼했다.
“그런데 진짜 아니야?”
내가 내게 다시 묻고 있었다.

괜히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도 같고.

한참 지난 뒤에도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은 잊었을 테지만,

나는 아니었다.
누가 내 얘기를 몰래 복사해서,

칭찬 코팅지를 붙여서 내 앞에 가져다 놓은 느낌.
알아보지 못하길 바라는 마음과,

제발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소란을 피웠다.

어릴 때부터 익힌 기술이었다.
이건 화낼 일이 아니야, 그냥 웃고 넘기자.
그래야 좋은 사람으로 보이니까.
웃어야지. 예쁘게. 그래야 착하단 말도 듣지.
그게 칭찬인 줄 알고 착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웃음 안에 감추는 게 너무 많아졌다.
화가 났지만,

화내지 못한 감정들이 자꾸 늑골을 건드렸다.
마음이 찝찝하면 입을 닫고,

입을 닫으면 감정도 정지되는 줄 알았다.
아니다.

감정은 얼음처럼 내려앉을 뿐, 언젠간 녹아 흐른다.
어디선가 물난리가 나는 식으로.

한 번은 비슷한 상황에서 나도 똑같이 해봤다.
"야, 그거 너 얘기 아니야?

너 완전 그 스타일이잖아."
말 끝에 억지로 웃음을 붙여봤다.
상대는 정색했다. 발끈하면서.
그때 알았다. 아, 나도 저 표정으로 듣고 있었구나.

칭찬이란 말이 어쩌면 가장 정교한 위장술인지도 모른다.
속뜻 없이 던졌다는 듯한 말들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망치는 트리거가 되기도 하니까.
"너 정도면 정말 잘하고 있는 거야."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그러니까 더는 힘들다고 하지 마’처럼

들리기도 하니까.

웃기만 하고, 웃어야만 했던 내 방식은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코스프레였다.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도 잘 산다는 사람처럼 굴었던.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았다. 진짜 괜찮냐고.
그래서 결국, 내가 묻게 됐다.

"그 말, 진짜 내 얘기 아니야?"

그리고 내 안쪽에서 어떤 목소리가 대답했다.
"응, 그거 너 얘기 맞아."

그제야 뭔가가 풀렸다.
기분 나빴던 순간들이

다 내 감정이었다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대신 ‘너 얘기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건
위로가 아니라 회피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까, 다시 물어보게 된다.

"그 말, 진짜 내 얘기 아니야?"

웃는 대신, 대답하고 싶어졌다.




감정질문

당신은, 언제부터 '그 말'이 자꾸 찝찝하게 들리기 시작했나요?

혹시, 웃어넘겼던 말들 중

당신 마음을 똑 닮은 이야기... 있지 않았나요?

by H.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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