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 먼저 있었던 삶

이름이 삶이 되고, 삶이 이름이 된 이야기

by 기록하는여자

1962년 5월.
주민등록법이 제정되던 날, 나라는 모든 국민에게 이름과 본적을 등록하라 했다.
그전까지 이름 없이도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집에서는 '막둥이', '꼬맹이', '갓난이'처럼 불렸고,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엄마로,
그렇게 가족 안에서만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하루를 충분히 살아냈다.

그날은 동사무소 직원이 골목마다 찾아오던 시절이었다.
외증조할머니는 마을 어귀 평상에 앉아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고 한다.
"이름이 필요하다니, 뭘로 적어야 하나..."
낯설고 어색한 순간,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야, 무로 해요. 정. 야. 무. 이렇게 야무진 사람이 또 있나."
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상에 이렇게 야무진 사람이 없지. 정야무, 참 잘 어울리네."

그 순간,
막둥이, 갓난이, 꼬맹이로만 불리던 한 여인에게
처음으로 '이름'이 생겼다.
세상의 야무짐이 이름이 되어,
정 씨 성을 따라 그렇게 '정. 야. 무'.
나의 외증조할머니의 이름이 그렇게 태어났다.

이름보다 먼저 삶이 있었고,
그 삶이 곧 이름이 된 순간이었다.
부지런하고 손끝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성품이,
이름 안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외증조할머니의 손녀인 나의 엄마도
평생 '야무지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일흔이 넘은 지금도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카카오톡을 능숙하게 쓰고,
온라인 주문과 링크 전송은 물론,
스마트뱅킹과 관공서 업무까지 혼자 척척 처리한다.
종류별 김치는 못 담그는 것이 없고,
손맛이 살아 있는 반찬을 척척 해내신다.
부엌에서 나는 냄새만으로 오늘의 반찬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엄마의 솜씨는 여전히 빛난다.

그리고 나.
정야무 씨의 증손녀이자
그 야무진 엄마의 딸.
어릴 적부터 '야무지다'는 말을 들었다.
책가방을 가지런히 챙기고,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아이.
교과서를 깨끗하게 싸고,
작은 메모도 소중히 간직하던 아이.
정돈된 말투와 또렷한 눈빛으로
누군가에게 '야무지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빠는 내 이름에 '이삭 수'를 넣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뜻.
속이 꽉 차고 겸손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시아버지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두고
"우리 며느리는 참 여문 사람이야"라고 하신다.
그 말이 좋았다.
조용한 노력과 성실함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렇게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이름은 주어졌지만,
그 이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나는 태생부터 야무진 건지,
아니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를 다져온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말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정야무 씨의 피를 이었다.
그 이름이 살아온 방식과,
그분의 손녀이자 나의 엄마가 걸어온 길을 닮았다.
그리고 지금,
나 역시 딸아이 앞에서
또 다른 야무짐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 나를 다듬으며 살아간다.

고맙다.
이름보다 먼저 삶을 물려준 당신들.
그리고 나를 여문 사람으로 자라게 해 준 모든 말들.

나는 오늘도,
조용히 야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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