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닮아버린, 기록하는 습관
아빠는 기록 중독자였다.
그냥 메모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삶의 구석구석을 조각내듯, 숨 쉬듯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이걸 왜?" 싶을 만큼,
"이렇게까지?" 싶은 것들로
아빠의 흔적은 온기처럼 남아 있다.
작년 봄, 아빠는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우리 곁을 떠났다.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그 순간.
그러나 믿기지 않게도,
아빠는 마지막까지 글을 남기셨다.
며칠 전 돌아가신 할머니께
미처 전하지 못한 속마음을
휴대폰 메모장에 꾹꾹 눌러 담고 계셨던 것이다.
그 메모를 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빠의 진심이,
그 뜨거운 마음이
기록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빠가 떠난 후,
우리는 아빠의 기록을 통해
다시, 아빠를 만난다.
가족들과 주고받은 온라인 카페의 대화들,
휴대폰 메모,
아빠의 개인 홈페이지,
네이버 밴드에 남겨진 수많은 사진과 글들.
그 안에는,
소소한 일상 하나까지도 소중히 여겼던
따뜻하고 꼼꼼한 사람이 살아 있다.
놀라운 건,
그 아빠의 유전자를
너무도 깊이 닮아버린 내가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아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나.
나 역시 아이가 태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남기고,
짧은 문장으로 내 마음을 정리해 왔다.
글로 남긴 내 감정과 시간들은
해시태그처럼 정돈되어
어느 날 문득,
시간 여행이 되어 돌아온다.
내 손 안의 작은 기억 박물관.
그 안에는
아이의 웃음과 눈물,
나의 다짐과 후회,
엄마로서 살아낸 수많은 날들이 담겨 있다.
나는 지금
아무도 들여보지 않는 1인 비공개 네이버 카페의 매니저다.
오직 나만의 공간.
세상에 꺼내놓을 수 없는 감정과
엄마로서의 고민,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할 작은 고백들이
그곳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곳 브런치와 블로그라는 또 다른 기록의 장을 펼쳐
'엄마로 사는 나'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은 언제나 내게
다시 살아내는 용기를 준다.
가끔 생각한다.
나의 엄마도 그 시절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두셨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의 내가 엄마를
더 잘 이해하고,
더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아쉬움이 나를 더욱 기록하게 만든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을
나의 딸은 언젠가 이해할까.
그리고, 받아줄까.
아빠, 이남호 씨는
그렇게 세상을 다녀가셨다.
기록으로 마음을 전하던 사람.
기억을 사랑하던 사람.
사랑을 남기고 간 사람.
그리고,
본인보다 더한 기록 중독자 하나를 남기셨다.
그게 바로, 나다.
오늘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이 곧 기억이 되니까.
기억은 곧 사랑이 되니까.
아빠의 딸로, 기록하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