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며느리 사랑해
나의 시아버지는 경상도 포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야말로 경상도 토박이시다.
결혼 후 포항에서 15년을 살고 올라온 지금은
제법 익숙해진 그 억양이,
처음에는 마치 외국어 듣기 평가처럼 느껴졌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겐
경상도 사투리의 강한 억양이 낯설고도 생소했다.
결혼 후 나는 가계 설계를 다시 짜며
시부모님의 보험을 담당하던 설계사님을 만나게 됐다.
그분은 아버님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셨다.
"제가 처음 뵈었을 때, 아버님은 진짜 경상도 남자셨어요.
무뚝뚝하고 말도 짧고, 억양도 세고요.
근데 서울 며느리 들이시고 나서 정말 달라지셨어요.
사람이 부드러워지고 유해지시고..
전 그게 전적으로 00씨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이 고맙기도 하고, 조금 낯설기도 했다.
경상도 상남자이신 아버님은
내 앞에서는 언제나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처음엔 나를 위해 애써주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주변 사람들까지도
그 따뜻한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 며느리 사랑해~"
"며느님, 고마워~"
농사로 거칠어진 두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으며 건네던 그 말은
내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남았다.
결혼 전, 처음 인사드리던 날을
아버님은 지금도 자주 말씀하신다.
"흰옷 입고 온 선녀 같았어.
저 참한 아가씨가 우리 집 사람이 될 것 같다고.."
내 덩치에 흰옷은 무리였을 텐데,
아마도 환한 투피스를 입었던 날이었겠지.
그 순간을 여전히 기억해주고,
예쁜 눈으로 바라봐 주시는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수년 전, 아버님께서 부정맥으로 시술을 받으셨을 때가 떠오른다.
대구 병원 수술실 앞에서
어머님과 함께 아버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취가 덜 풀린 채 회복실로 옮겨지시던 아버님은
허공에 손을 흔들며 외치셨다.
"우리 며느님~ 어디 계셔~ 우리 며느님~"
나는 뭉클한 마음으로
그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아드렸다.
며칠 뒤, 병실에 다시 들렀을 때
의료진과 병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웠다.
"아, 저분이 그 며느님이세요?"
아버님이 나를 얼마나 자랑하셨는지
그 눈빛만으로도 느껴졌다.
"다른 집 며느리 다 데려와 봐도
우리 첫째 며느리만은 못할 거야.
우리 며느리는 여문 사람이야."
아버님은 가끔 나를 그렇게 부르신다.
여문 사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과실이나 곡식이 알차게 잘 익다'는 뜻이란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더 여문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내 안을 더 단단하게 채우고 싶어진다.
신기하게도,
나를 낳아주신 친정 아버지 역시 같은 마음을 내 이름에 담아주셨다.
'이삭 수'
가을 들판에 고개 숙인 벼 이삭처럼
속이 꽉 차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란다.
그 뜻을 알고 나서,
두 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마음이
참 닮아 있다는 걸 느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요즘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부모님 말고,
과연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까지 믿고, 사랑해줄 수 있을까.
말로만 듣던 '시아버지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나는
참 복받은 사람이라는 걸 문득문득 깨닫는다.
작년 봄, 친정 아빠를 떠나보낸 후
나는 더 자주 아버님을 생각하게 된다.
그분이 안 계신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날이 온다면,
친정 아빠를 떠나보낸 날보다 더 아플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하다.
아버님의 사랑을
남편을 통해 다시 받는 나.
그 사랑 속에서
조금씩 더 여물어가는 나.
나를 "여문 사람"이라 불러주는
그 따뜻한 목소리가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