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여름 햇살이 제법 따가워진 오후였다.
동네를 산책하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여성복 매장.
무심코 들어선 그곳에서 나는 인견으로 만든 통바지를 마주했다.
손끝으로 스치는 촉감이 시원하고 가벼웠다.
딱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았다.
색상은 은은한 베이지.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바로 하나를 골랐다.
며칠 후, 엄마는 그 바지를 입고 환하게 웃으셨다.
"이렇게 편한 바지는 처음이야.
세상에, 안 입은 것처럼 가볍고 시원해."
'잘한다'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수고의 끝이지만,
나에게는 또다시 잘하고 싶어지는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바지를 사기 위해 그 매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검은색 바지를 엄마께,
또 엄마의 친구분께 두벌.
그리고 문득 떠오른 한 사람, 작은엄마.
작은엄마는 작은 아빠와 함께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하신다.
두 분의 러브스토리는 등기소에서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작은 아빠는 등기소 직원, 작은엄마는 법무사 사무실 직원.
그렇게 만나,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오셨다.
나와 작은엄마의 인연은 내 유치원 시절부터다.
작은엄마는 언제나 호탕하신 분으로,
조카인 나에게 큰소리 한 번 내신 적 없는 분이었다.
하지만 삶이라는 건 언제나 예상 밖의 굴곡을 안겨준다.
장남이었던 우리 아빠는 사업을 하셨고,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던 무렵부터 집안 형편이 크게 어려워졌다.
명절마다 큰집이던 우리 집 대신
작은엄마네 집에 친척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아빠가, 그리고 나조차도
그 변화 앞에 마음 한편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명절이 되면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편함을 온몸으로 감내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상 치우고 설거지하고 커피를 타는 일들을 스스로 맡았다.
사촌동생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마음 한편엔 조용한 눈치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 공간에서,
항상 빛났던 건 작은엄마의 정갈한 살림이었다.
주방엔 어지러운 물건 하나 없었고,
손길이 닿은 살림살이는 말없이 질서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린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언제부턴가 나는 작은엄마를
내 살림의 롤모델로 삼게 되었다.
작은엄마는 둘째 며느리였지만
거의 맏며느리처럼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셨다.
할머니 생신, 명절,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
그리고 우리 엄마의 수술과 아빠의 병환까지.
작은엄마는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런 작은엄마께
내가 처음으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던 날이 있었다.
아빠의 후두암 수술 전날, 병실에 오신 작은엄마께
나는 복도에서 울컥한 마음을 쏟아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든데..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셨으면 좋았잖아요.
그냥.. 안부 한마디라도요."
서운함과 슬픔이 뒤섞인 말이었다.
그날, 작은엄마는
어떤 해명도, 변명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다 들어주시기만 했다.
몇 년이 지나 알게 되었다.
그 시기, 작은엄마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계셨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아빠의 무례했던 일도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어른이라는 건,
모든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그저 품는 것이라는 걸.
작년 할머니 장례식.
작은엄마는 조카들 중 나를 따로 불러
장례 절차 하나하나를 알려주셨다.
그때는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알려주시나, 의아했지만
정확히 13일 후, 나는 아빠의 장례를 도맡게 되었다.
그날, 나는 사촌들과 작은엄마께
"아빠가 마지막으로 주는 용돈"이라며
작은 봉투를 건넸다.
그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손사래를 치던 그들,
하지만 나는 담담하게
고마움과 사랑을 대신 전했다.
그것도, 작은엄마에게 배운 것이었다.
여름이 오자,
작은엄마 생각이 더욱 자주 났다.
나는 인견 바지 두 벌을 챙겨
작은 아빠의 사무실을 갑작스레 찾아갔다.
그리고 초복에 삼계탕을 대접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극구 사양하시는 작은엄마께
나는 끝내 용돈 봉투도 함께 드렸다.
작은엄마는 눈시울을 붉히시며 고마워하셨다.
그리고 작은엄마는
우리 가족 삼계탕까지 챙겨 놓으셨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언제나 한 걸음 더 앞서 계시는 분.
그게 바로 작은엄마였다.
집으로 돌아와
문자로 감사 인사를 주고받으며
나는 처음으로,
내가 한 일이 스스로 참 뿌듯했다.
어릴 적, 명절이면 설거지를 하며
작은엄마를 바라보던 그 눈동자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감사와 배움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엄마,
당신의 삶은 제게 배움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보다 더 조용한 헌신으로
나의 인생에 스며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가 아닌,
작은엄마라는 이름으로도
이토록 큰 울림을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