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나비로 돌아온 당신
작년 2월,
친할머니의 발인이 끝난 지 이틀째 되던 흐린 아침이었다.
슬픔이 채 마르지 않아, 숨결조차 조심스러웠던 그때
세브란스 병원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이남호 님 보호자 되시죠? 가능한 한 빨리 오셔야겠습니다."
그 순간,
손끝이 얼음처럼 식어버렸고
가슴이 쿵, 무겁게 내려앉았다.
망설일 틈도 없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기록을 좋아하시고, 마음만은 평생을 효자로 살아오신 아빠.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장남으로서 지키지 못한 그 순간을
당신은 끝내 가슴에 담고 계셨던 것 같다.
가쁜 숨 사이,
아빠는 핸드폰에 짧은 글을 남기셨다.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
그리움과 미안함을 꾹 눌러 담아
문장 하나에 마음을 실으셨다.
그 편지를 남기며,
아빠는 속 깊은 사랑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으셨던 걸까.
하지만 그날,
병실에서 아빠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셨고
응급처치 끝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의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9일을
뇌사 상태로 버티시다
아빠는 하늘의 품으로 떠나셨다.
2016년 10월.
후두암 수술을 시작으로 심부전과 신부전까지,
병명은 길었고
그 고통의 시간은 8년이나 되었다.
그토록 긴 고통의 끝,
입관식에서 마지막으로 뵌 아빠의 얼굴은
마치 모든 아픔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편안하고 고요해 보이셨다.
그것이 그나마 내 마음을 놓이게 했다.
2024년 2월 29일.
그날은 아빠의 기일이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이 날짜가,
왠지 아빠다운 선택 같기도 했다.
"내가 일부러 너희들 편하라고 맞춰서 가는 거다."
장난스럽게 웃으실 것 같은,
그 특유의 유쾌함이 떠올라
정말 일부러 그날을 골라 떠나신 건 아닐까 싶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친정은 제사를 지내지 않기에
우리는 음력 대신 양력을 따르기로 했다.
2월 29일이 있는 해엔 그날,
없는 해엔 3월 1일.
엄마와 오빠에게 말했더니
오빠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산소에 다녀왔다.
2주 전, 할머니의 첫 기일엔
땅 위에 얼어붙은 눈과 얼음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엔 바람이 한결 부드러웠다.
봄이 오는 길목.
작년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아빠가 떠나시던 그 밤.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새벽,
차 안에서 나는 마음을 다잡느라
애썼다.
도로를 따라 이어지던 가로등 불빛,
차창 밖으로 스치던 밤공기,
손에 쥔 물병이 축축이 식어가던 그 감촉까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새벽을 기억하면,
지금도 마음이 저릿하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음악을 틀고
다른 생각들로 마음을 채운다.
지우려는 게 아니라,
그리움에 잠기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시간들 속에서
나는 안다.
아빠는,
지금도 늘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아빠!
아프지 않은 그곳에서는
사랑하는 할머니와 함께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죠?
작년 봄,
아빠 산소에서 조용히 우리 주위를 맴돌던
하얀 나비 한 마리를
저는 아빠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작년에도
하얀 나비로 몇 번이나 제 앞에 나타나 주었던 것처럼,
올해도 저를 찾아와 주세요.
아빠가 그렇게
저희 곁을 지켜봐 주고 계신다는 걸
느낄 수 있게요.
아빠가 남겨주신 사랑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남은 시간 열심히 잘 살아갈게요.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