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끝에서 남긴 한마디
어릴 적, 아빠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실명이 아닌, 별명.
너구리 아저씨, 비 사이로 막가 아저씨, 바퀴 아저씨.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피어오르지만
그 시절 나는 진짜 그게 그들의 이름인 줄 알았다.
익숙하고 정겨웠다.
그분들은 아빠의 학창 시절 친구였고,
군대까지 함께한 동기들이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걸어온,
말 그대로 인연의 깊이를 증명하는 시간들이었다.
너구리 아저씨는,
행동이 어쩐지 너구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비 사이로 막가 아저씨는 너무 마르셔서,
바퀴 아저씨는 성함에서 따온 별명이라 했다.
그렇게 어릴 적 내 기억 속엔
아빠의 친구들이 만화 속 인물처럼 남아 있었다.
작년 2월,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너구리 아저씨를 뵈었다.
스무 해 가까이 흘렀던 시간도
그리움을 가리지 못했는지,
아저씨는 아빠와의 젊은 시절을 들려주셨다.
그때 아빠는 병원에 계셨다.
장남이자 상주였지만,
강심제 투여 중이라 퇴원은커녕 외출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아저씨는 조만간 병원으로 꼭 찾아뵙겠다며,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 지켜주셨다.
그로부터 이틀 뒤,
아빠는 할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심정지를 겪으셨다.
심폐소생술 끝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끝내 열흘 뒤 뇌사 상태로 생을 마감하셨다.
할머니의 발인이 있은 지 13일 만이었다.
장례 마지막 날 밤,
조문객들이 거의 돌아간 시간이었다.
술에 반쯤 취한 너구리 아저씨가 조용히 들어오셨다.
아빠의 영정 앞에 서시더니
오랫동안 무언가 말도 못 할 표정으로
사진을 노려보시다,
울컥 목소리를 높이셨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네 사진 앞에서 절을 해야 되냐...
이 자식아..."
그리고는 두 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절을 하셨다.
그 무릎의 무게가
마치 우정의 세월만큼이나 무거워 보였다.
빈소 한편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아저씨는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작년엔 '비 사이로 막가'가
갑자기 죽더니...
올해는 네 아빠까지...
이젠 누구한테 내 얘길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말엔
허전함과 외로움,
지나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
겹겹이 겹쳐져 있었다.
그 슬픔 앞에서,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 용용이는
누구의 말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할아버지,
저희 할아버지를 그렇게 사랑해 주셔서,
그리고 슬퍼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따뜻했던 그 말에
아저씨는 울음을 삼키시며 웃으셨다.
"역시 남호가 그렇게 손녀 자랑할 만하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가족보다 친구가 더 슬퍼할 수도 있겠구나.
말 못 할 이야기,
쉽게 꺼낼 수 없는 속마음을
아빠는 너구리 아저씨와 나누셨겠지.
그런 존재가 옆에 있었기에,
아빠의 고단했던 시간들도 버텨졌던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좋은 친구가 있었던 사람.
울음을 참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도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건,
그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너구리 아저씨의 눈물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선명하다.
그 눈물과 함께
아빠의 마지막이,
또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