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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희 Dec 23. 2024

시기 1

글을 쓰는 나의 한 가지 강박은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는 일이다. 더 이상 나는 실수하거나 모르는 것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일이 크게 두렵진 않지만 왠지 단어의 사용을 틀리는 건 아직까지 부끄럽다. 남에게는 그러지 않는데 나에게는 왜 관대하지 못한지 모르겠다.


요즘 나의 관심 단어는 시기(Envy)와 질투(Jealousy). 그중 오늘은 시기에 대한 글이 쓰고 싶어 자판을 두드린다.


시기 (猜忌)

남이 잘되는 것을 샘 하여 미워함
                                                   (표준국어대사전)
시기 (Envy)

타인의 것을 갖고 싶어 하는 감정

다른 사람이 가진 능력, 성취, 외모, 재산 등을 부러워하거나 그 사람이 가진 것을 자신도 갖고 싶다고 느낄 때 발생

비교 대상은 타인과 나
                                                            (GhatGPT)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던 나인데 이제는 그 주체가 조금 바뀌었다.


‘남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바뀔 수 있다.’


이건 나의 100% 경험에 기댄 말인데 나로 인해 남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고 생각해 그런 기대는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바뀐 사람이어서 스스로를 바꿀 수 있다는 말에는 확신이 있다.


글을 쓸 때 나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자주 비교하곤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0대까지의 나와 30대의 내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시기’라는 단어는 20대까지 나를 늘 따라다닌 친구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여러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건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은 딱 나를 위한 말이었다. 키는 작아서 우리 아빠 표현으로 쥐알통만한게 욕심은 많아 반장도 하고 지휘자도 하고 방송부도 하고 봉사대 활동도 하고 지금처럼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았는데 그중 달리기를 매우 잘했다. 특히 단거리. 매년 운동회에서 1등 자리는 내 몫이었고 계주에서도 내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학교 대표로 육상대회에 나가게 되어 수업이 끝난 후 매일 연습을 했는데 함께하던 한 학년 후배가 있었다. 같은 학년은 아니니 경쟁자는 아니었지만 연습하면서 이 친구 때문에 내 능력 부족이 수면 위로 드러나려 해 계속 위기의식을 느꼈던 거 같다. 그러다 감독님이 같이 뛰어보라고 하셨고 출발과 동시에 전력질주하던 나는 그 친구의 속도가 나를 앞지르려 하자 나도 모르게 내 목표의 방향이 앞이 아닌 사선을 향하게 되었고 그 친구를 옆으로 조금 밀게 되었다.


살짝이었기에 부상도 없었고 실제 대회가 아니니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은 달랐다. 내 능력을 넘어선 그 친구가 부러웠지만 내 한계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어두운 마음이 행동으로까지 발현됐다는 걸 어린 마음에 누가 알아챌까 창피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에피소드는 처음 말하는 게 어린 마음에도 이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아서 당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잊어버린 일이 되었다가 글을 쓰며 다시 상기가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이야 귀엽게 느껴지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지우고 싶은 사건이었을 거다. 육상대회 결과도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나 첫번째지 다 같은 일등들을 모아놓은 대회에서는 내 능력과 작은 키인 신체적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후배의 기록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나보다 훨씬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민감한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남이 더 뛰어난 것에 대한 시기로 나만의 벽을 단단히 만들고 아닌 척 괜찮은척하며 속으로는 내가 더 뛰어나고 싶어 연못 위의 백조처럼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이런 삶은 피곤하고 나를 갉아먹는다. 그러니 내 부족함이 드러날까 늘 불안했던 거 같다.


지금은 시기심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할 순 없지만 나와 남은 다른 존재라고 인정을 해버려 그런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바라는 누군가가 될 수 없고 나와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시기심이 올라올 만한 사람을 만나도 그 자체를 그냥 인정해 버린다. 그리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살펴보고 배울수 있는 점이라면 나에게 적용시켜 본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시기심보다는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심이 더 드는 것 같다.


남을 시기하는 마음은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아무리 내가 누군가를 샘나하고 미워하고 따라 한다 해도 내가 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면 내 자신이 소중해지고 내 하루가 소중해지고 내 주변사람들과 환경이 소중해진다.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매분 매초를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기 자신을 위해 잘 썼으면. 오늘 소중한 나의 하루도 기대가 된다.


일출 1시간 후.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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