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생도를 우주비행사 추모식에서, 그것도 유가족 대표로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최성진 구조사의 알지 못했던 배경을 자유롭게 연상하며 남몰래 슬픔에 잠겼고, 동시에 사관학교 선생이 되기를 잘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정신이 팔린 사이에 추모행사는 막힘없이 진행됐다. 묵념과 추모 공연, 국무총리의 추모 말씀으로 이어졌다. 점박이들의 대표도 중간에 나와서 빤한 이야기로 한마디 거들었다.
행사 내내 박 상담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임했는데, 당연히 나는 한마디도 말을 붙이지 못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폐회가 선언되고, 사람들은 대강당을 나섰다. 박 선생님과는 별말을 나누지 않고 학교 정문으로 나왔다. 아직도 시위 중이었다. 그들의 주장과 심정을 아주 모르지는 않지만, 꼭 오늘 같은 날까지 여기서 시위를 해야만 하는 건지 마음에 들지 않아 흘겨보았다.
나는 박 상담사의 팔을 슬며시 잡아끌어 큰길까지 대동한 후에 연락드리겠다는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다. 그가 괜찮아졌다고는 말하지만, 이런 날에는 어쩔 수 없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최성진 구조사의 얼굴과 그의 우주가 어른댔고, 쉬이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만에 그 꿈이다. 눈밭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꿈. 역시 그 행성인 듯하다. 어디를 보나 하얗다. 장소는 그대로인대 내 상태가 이전과는 다르다. 나는 아주 어리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몸은 작아졌고, 손과 발도 아이의 것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따뜻하다. 눈송이는 서두르지 않고 나를 서서히 덮는다. 온몸을 하얗게 가린다. 나는 작은 눈사람이 된다. 벗어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자리에 눈을 맞으며 오래도록 서 있다. 눈이 사르르 감길 정도로 포근하다.
엄마를 생각하지만 부르짖지는 않는다. 나는 눈꺼풀의 무게에 저항하지 못하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눈앞이 보이지 않지만 나의 위치가 바뀐 것을 느낀다. 마치 우주 한가운데에 떠 있는 느낌이다. 습관처럼 허리춤을 매만진다. 생명줄이 없다. 그럼에도 불안하지 않다. 눈을 감은 채로 자유롭게 떠돌아다닌다.
불쑥 내 손을 누르는 힘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나를 잡아챈 듯하다. 나를 어디론가 이끈다. 나는 놀라 눈을 뜬다. 주변은 희부연하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고 있다. 그의 손과 팔을 겨우 식별할 수 있을 뿐, 어깨부터는 흐릿하다. 정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확신을 가지고 인사한다.
엄마구나. 엄마, 안녕. 이제 돌아가려는 거지.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엄마에게 손을 젓는다. 엄마는 나의 손을 놓는다. 팔은 뿌연 연기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주변은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물든다.
나는 놀라 눈을 뜬다. 눈물이 고여 있다. 얼른 눈가를 훔치고 차가운 물 한 잔을 들이킨다. 시원하다. 눈물이 났지만 슬프지 않다. 오히려 개운하다. 나는 잠시 멍하니 침대 끝에 앉아 꿈속의 어린 나를 떠올린다. 손에 남아 있는 생생한 감각을 재생시키듯 주먹을 쥐어 보다가, 입가에 오르는 간질간질한 감각을 느낀다. 나는 어색하게 웃고는 몸을 일으킨다.
아침 일찍 한강변을 달리고 돌아와 선생으로서 학교로 출근한다. 오늘은 중요한 교육 훈련이 있는 날이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졸업반 훈련생 8명을 인솔해서 우주탐사 훈련소로 향한다. 승합차 안은 아주 조용하다. 주행소리만이 들린다. 아무리 철딱서니 없이 구는 훈련생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오늘 처음으로 우주로 나가는 것이다.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직접 달로 나가 실전처럼 기본적 탐사를 진행하고 돌아오는 것이 훈련의 주된 골자다. 졸업 시험에도 포함되어 있는 실기 과목으로 사관학교의 모든 훈련생들, 특히 천체 탐사 전공생에게는 필수적이며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다.
중요한 만큼 몹시 위험한 훈련이라는 점은 훈련생뿐만 아니라 선생인 나도 실감한다. 당연히 아무나 이 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훈련에 필요한 관련 절차가 몸에 익을 때까지 선생의 지도하에 수중에서 반복하고, 합격한 훈련생만이 실제 달로 나가는 훈련에 참여할 수 있다. 아무리 훈련 준비에 성실히 임했다하더라도 실전 훈련은 언제나 긴장되기 마련이다. 긴장감 있는 훈련인 만큼 사건 사고는 매우 드물지만 어디까지나 선생의 몫이 큰 법이다.
훈련소에 도착해 조교들과 함께 훈련 준비를 시작한다. 학생들에게 중요한 부분을 재교육한다. 조교들은 훈련생과 2인 1조로 짝을 이뤄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 과정을 거친다. 우주복 착용을 마친 후, 모두 훈련용 대형 탐사선에 몸을 싣는다. 훈련생들은 양쪽에 나란히 앉는다.
아무도 쓸데없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훈련생도 조교도 모두 안전에 만전을 기한다. 맨 앞에 앉은 훈련생의 얼굴은 긴장하다 못해 울상을 짓고 있다. 나는 그를 지나치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그는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고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정면을 응시한다.
훈련생들의 낯은 창백하다. 나의 첫 실전 훈련이 떠오르면서 훈련생들의 표정이 다시 보인다. 그들을 숨막히도록 압박하는 것은 조교나 선생의 권위가 아니라, 낯선 세계 그 자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는 것, 그 세계를 말과 글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것,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품는 것, 목숨을 걸고 자신의 세계를 실제로 확장시키는 것, 그 앞에서는 모두가 두려움을 느끼고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우주로의 첫걸음을 떼려는 훈련생들의 마음가짐을 상상하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이 씁쓸하게 떠올라 괜히 탐사선 안을 서성인다.
조교들은 다시 훈련생들의 상태를 점검한 후에야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륙 신호가 떨어지고 서서히 탐사선이 움직인다. 선체가 흔들리다가 날아오른다. 선체 내에 있는 모든 인원이 분위기에 압도된 듯 얼어 있다. 오래도록 굉음이 들린다. 훈련생들의 몸은 이리저리 진동한다. 마치 그들이 겁을 지레 먹고 몸을 떠는 듯하다.
차츰 소음이 잦아들고 훈련탐사선 비행사의 안내가 흘러나온다. 안전 궤도에 오른 후에, 나는 선체 내 훈련생들에게 교신한다.
“오늘은 실전이다. 지금까지의 훈련은 모두 오늘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하도록. 오늘 경험한 것들이 앞으로 너희들의 길을 결정할 거다.”
선체 내로 적막만이 흐른다.
달에 착륙한 후, 조교들은 각각 훈련생을 인도하여 탐사선 밖으로 이동한다. 조교의 지시에 따라 각자의 생명줄을 점검한다. 그 사이 나는 훈련생들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로 이동해 탐사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우주를 올려다본다.
다시 우주. 언제나 낯선 세계.
훈련을 위해 잠시 지구 근처에 나왔지만 돌아가지 못할 것처럼 아주 먼 곳에 나온 듯하다. 내가 이르렀던 가장 먼 곳을 떠올린다. 어젯밤 꿈속에서 홀로 서 있던 곳, 속박 없이 마음껏 헤엄친 곳, 지금 그곳은 복합적인 탐사가 진행되고 있겠지. 그 차디찬 동토에서, 그 희고 탁한 설국에서 그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과연 나처럼……
조교들의 준비 완료 교신이 차례로 들려온다. 모두가 준비된 듯 훈련생과 조교들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선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둘러본 후에, 전체 교신을 시작한다.
“자, 주목. 우리는 지금 지구와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에 도착했지만, 여기도 엄연히 우주다. 너희들은 지금 아주 당황스러울 거다. 그동안 공부한 우주에 대한 지식들은 고작 이 달에만 나와도 의심이 들겠지. 그래, 원래 그런 거다. 천체 탐사 전공생인 만큼 확실히 말해둘 것은, 너희들이 이미 알고 있는 걸 절대로 믿지 마라. 너희들이 배운 것들은 이미 우주에서 일어나고 지나간 과거에 불과하다. 너희들의 과제는 가장 먼저 새로운 곳에 도착해서 어느 누구의 입으로도 전한 적 없는 곳을 조사하고 알아내는 일이다.”
나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고른다.
“직접 관찰하고 확인한 것, 우리는 그것만 받아들이며 본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본부의 무인 간접 탐사 이후에 우리를 파견한다고 해서 절대로 안전할 것이라 기대하지는 마라. 우주에서는 너희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언제 어디서든 벌어진다. 이미 너희들이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었겠지만, 몇 번이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탐사의 처음과 끝은 생명줄이다. 이 생명줄을 어머니의 탯줄이라고 생각해라. 조사를 끝마치기도 전에 섣불리 해제했다가는 죽는다. 가장 중요한 건, 사는 거다. 살아서 지구로 돌아가는 거다. 모두 내 말 이해했나?”
“네!”
나는 교육훈련의 절차를 상기하며 묵묵히 전경을 눈에 담는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회색의 땅. 우주의 검은 배경에 비하면 아주 밝다. 학생들은 잔뜩 기합이 들어 표정은 비장하고 눈빛은 또렷하다. 숙련된 조교들도 훈련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하얀색 우주복을 입은 훈련생과 조교들은 나를 향해 꼿꼿이 서서 탐사 훈련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