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에는 눈이 정말 많이 내렸습니다. 그 기나긴 겨울 내내 명상밖에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디찬 그곳에서 성은이를 마주한 그 다음날 곧바로 박연호 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선생님에게 묻고 싶었던 것도 많았고, 전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는데 정작 그를 만나자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명상 속으로 성은이를 만나러 간 경로만을 겨우 묘사했습니다.
저는 그 명상의 체험과 감정에 압도되어 얼떨떨한 상태였습니다. 박 선생님은 제 상태를 아셨는지 면담을 짧게 그치고 저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명상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은이를 만난 첫 명상 이후로는 명상 경험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검은 구멍도, 색색깔의 점들도, 끈질긴 액체도, 성은이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성은이를 만난 장면이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습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감촉이 가슴에 매섭게 남아 저를 괴롭혔습니다. 일상 중에도 시린 느낌이 선득 들어 혼났습니다. 마치 살아난 성은이가 다시 죽은 듯한, 그런 끔찍한 느낌이었습니다. 아픈 만큼 성은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습니다. 딸아이를 꼭 다시 안고 싶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저는 명상을 악착같이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없는 시간까지 만들어 명상 모자를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생활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식사도 챙기지 못했고,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까지 제쳐두고서 온종일 명상만 했습니다. 침잠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 애썼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명상은 제게 암흑만을 보여주었습니다. 돌고 돌아 다시 명상을 시작한 가장 처음으로 되돌아온 듯했습니다.
성은이를 보고 싶은 마음, 침잠한 상태를 되돌리기 위한 갈증으로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해서 박연호 선생님을 찾아뵈려는 마음을 다시 쉽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선생님을 찾지 않은 이유는 사소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사건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가벼운 일이었습니다.
겨울 방학은 시작됐고 강의도 없던 터라 그 넘치는 시간 동안 비밀스런 고행자처럼 명상에 더욱 매진하던 때였습니다. 그 겨울날에도 역시 연구실에 앉아 저리다 못해 감각이 사라진 다리를 포갠 채로 명상했습니다. 집중했지만 결국 깊이 가라앉지 못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에 지쳐 창가에 앉아 눈으로 덮인 교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큰길에 눈은 양옆으로 치워져 있었지만, 잔디밭과 좁은 길 위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큰길만을 따라 사람들은 걸어 다녔고, 가끔씩 눈을 뭉쳐 친구에게 던지는 천진난만한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정경을 지친 상태로 내려다보았습니다.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습니다.
해가 일찍 떨어지고 저녁때쯤에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시간에 저를 찾아올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의아하여 귀를 기울였습니다.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확실히 누군가가 제 연구실에 찾아온 것입니다. 저는 얼른 대답을 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앞에는 지난 수업에서 손을 들고 무지를 고백한 학생이 서 있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공부하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렇군요. 들어오세요.”
저는 마지못해 소파로 자리를 안내했습니다. 처음 마음으로는 솔직히 귀찮기도 했지만, 놀라움이 더 컸습니다. 그 학생이 공부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방학에 질문하기 위해 저를 찾아왔다는 점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갑작스런 학생의 방문에 재빨리 연구실을 살폈습니다. 마음이 찝찝했습니다. 연구실에 홀로 틀어박혀 하라는 연구는 하지 않고 명상만 하고 있는 것을 학생이 알 리가 없지만, 혹시나 제 상태를 들키지는 않을지 불안했습니다. 저는 책상 위에 놓인 가족사진을 몰래 훔쳐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습니다.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생은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전공 교재를 꺼내더니 한 명제의 증명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이 질문한 증명은 어떤 위상공간이 콤팩트 공간임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한 증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합니다. 정의는 정확히 알고 있는지, 그 전에 배웠던 증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수학용어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수학의 증명이 하나의 맥락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저는 근래에 제 상태를 속여 넘기기 위해서라도 학생에게 성심성의껏 답했습니다.
표정을 관찰하면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부분은 되묻기도 하고, 연필을 들어 직접 예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몇 쪽 전으로 돌아가 다른 명제의 증명을 읽기도 했습니다. 학생은 제 설명을 따라오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는 듯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몹시 귀한 태도였기 때문에, 저는 진심으로 학생에게 그 증명을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긴 설명을 끝으로 학생은 모든 조각이 맞춰진 듯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제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저는 학생에게 공부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고 일러두었습니다.
콤팩트 학생은 그 이후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연구실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 학생을 특별히 콤팩트 학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매번 저를 찾아와 묻는 질문이 항상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어떤 위상공간을 콤팩트공간으로 밝히는 증명을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싶었지만 같은 질문이 반복될수록 의아했습니다.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학생은 지나치다 싶었습니다.
콤팩트 학생이 제 연구실을 또 찾아왔을 때, 저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학생은, 혼자서 다시 증명하고 있나요?”
그 학생이 어떤 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대답을 얼버무린 것 같습니다. 콤팩트 학생은 그 이후에 연구실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한 주 정도는 학생을 기다리며 마지막 만남을 곱씹었습니다. 제가 던진 질문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습니다.
혼자서 다시 증명하고 있나요.
그 괜한 질문 때문에 학생이 찾아오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방학 중에 저를 찾아올 사람이 사라진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저는 연구실에 혼자 남아 명상에 전념했습니다.
막상 명상을 시작하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초반에는 제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도 제법 통제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제 손 안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도 생깁니다. 하지만 모두 착각입니다. 생각은 다른 생각을, 또 다른 생각을 불러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맙니다. 그 무한히 발산하는 생각 앞에 손도 못쓰고 압도되는 것입니다. 그 생각 중에는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간절히 안고 싶은 성은이는 떠오르지 않으면서, 희한하게 콤팩트 학생에게 던진 질문만 진득하게 맴돌았습니다.
혼자서 다시 증명하고 있나요.
그 질문은 결국 제게로 되돌아왔습니다.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다 보면 항상 그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질문을 학생이 아니라 제게 던지는 것입니다.
나는 혼자서 다시 증명하고 있을까.
저는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굴레를 한 바퀴 돈 듯 질문 앞에 다시 섭니다. 혼자서 다시 증명하고 있을까. 저는 같은 지점을 마주하며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콤팩트 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진전 없는 명상의 상태에 쉽게 박 선생님을 떠올리고, 다시 면담을 하려는 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박연호 선생님과의 면담은 언제나 도움이 됐습니다. 짧게라도 뵙고 나면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마치 아직은 제가 풀 수 없는 문제를 지도교수님이 도와주시는 기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박 선생님이랑 얘기하다 보면 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부분까지 닿을 수 있는 셈입니다. 돌이켜보면 박 선생님 덕분에 면담을 끝내고 며칠 동안은 제가 다시 회복된 듯했고 딸아이를 잃은 슬픔에서도 조금은 벗어난 상태로 지낼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명상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을 때마다 찾아갈 곳이 있다는 건 마음이 잘 맞는 지도교수님이 연구실에 항상 계신 것처럼 정말 든든한 일입니다. 그런데, 뭐랄까요. 너무 손쉽다고 해야 할까요. 일시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대학원생 때 지도교수님을 만나고 돌아올 때, 딱 그런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제가 간절히 풀고 싶어 붙잡은 문제 안에는 정작 제가 없고 다른 사람으로만 채워져 있다는 배신감. 돌아와 다시 책상에 앉으면 아무것도 모르겠는 허전함. 대학원 시절에도 제 상태를 깨닫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푼 것은 없고 모두 교수님이 해결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끝에 닿았을 때, 저는 얼마나 창피하고 속상했는지 아직도 그 마음이 생생합니다.
맞습니다. 결국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시간을 쏟아야만 합니다. 쉽게 얻어진 건 쉽게 사라집니다. 이건 정말 맞는 말입니다. 스스로 이해될 때까지 계산하고 논문을 읽고 연구해야만 진정 제 것이 되기 마련입니다. 딸아이와 관련된 명상의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어떤 누구도 제 문제에 개입시키지 말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렵더라도 제 문제는 제가 풀어야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