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있자니 벌써 잠이 온다. 아직 잠들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마지못해 TV를 켠다. 하단에 우주비행사 사망자와 실종자 수가 나타난다. 방금 시작한 뉴스에서는 내일 예정된 우주비행사 추모 소식을 전하고 있다. 김태진 선생이 유독 생각나는 날이다. 마음이 울적하다. 그런 기분은 내일로도 충분할 텐데. 급하게 채널을 여기저기 돌린다. 그다지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없고, 다른 뉴스 채널에서도 추모행사 이야기뿐이다.
우리한테 언제부터 관심 있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밖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나가서 무슨 일을 겪는지 관심 끈 지 오래잖아. 우주비행사들이 죽어나갈 때 하나같이 우리 공동체의 존립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했으면서, 추모 행사는 빠지지 않고 전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때를 까맣게 잊은 건가.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렸나. 나는 불쾌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TV를 끈다. 몸을 일으켜 집안을 서성인다. 사망자 수가 눈앞에 어른댄다. 추모식이 있는 날뿐만 아니라 매일 같이 각각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 아닌가.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는 이름들인데, 죽은 사람들을 고작 숫자 따위로 줄여 말하지는 말았어야지. 누군가에게는 전부인 하나일텐데.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숫자 하나를 생각한다. 김태진 선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앞에서부터 뛰기 시작한다. 아침 날씨는 아직 쌀쌀하다. 역시 매일 이 시간에 보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이른 시간인데도 출근을 하는지 정장을 입고 큰길로 나가는 사람, 백곰처럼 큰 강아지에게 끌려가듯 산책하는 사람, 작은 공원에서 팔을 높이 흔들며 몸을 푸는 사람, 한강으로 내려가면 나처럼 달리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아침마다 만나지만 지나고 나면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당연히 이름도 알지 못한다. 단지 같은 시간에 서로의 곁을 지나칠 뿐이다.
그들은 어디서 왔을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뛰면서 잡다한 생각에 몰두한다. 익숙하기만 했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다. 고요하고 생경한 한강. 아직 따스함이 깃들지 않은 아침 속으로 인간들이 일찌감치 들어와 기운을 불어넣는 듯하다. 마치 사람들이 아침 햇살을 부르는 것만 같다. 한강의 수면 위로는 햇살이 넓게 퍼지고, 강물은 그 온기를 널리 퍼뜨리려는 듯 유유히 흐른다. 나는 그 물결을 따라 달린다. 금세 몸은 덥고, 숨이 차오른다.
집으로 돌아와 씻은 후에 여유를 부리며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는 사관학교 대강당으로 향한다. 매일같이 가는 출근길인데도 발걸음이 무겁다. 박연경 상담사의 걸음에도 마음이 쓰여 전화를 하려다가, 그냥 문자를 남긴다. 다행히도 바로 답장이 왔다. 사관학교 정문에서 만나 같이 들어가기로 약속한다.
휴일 애매한 오전이라 그런지 여느 때와 다르게 사람들이 많다. 행인들은 오늘 추모식이 있는 걸 모르는지 바삐 어디론가 걸어간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의 몫을 더해 나라도 거듭 기억하고자 한다.
가는 내내 김태진 선생을 생각한다. 사실 어제부터 계속 떠오른다. 그와 있었던 일들, 첫 만남, 체력단련, 운동장, 생명줄의 무게, 하얀 병상과 소독약 냄새, 조언과 눈물, 수많은 장면들이 한데 엉켜 떠오른다. 군중 속에 있지만 우주 한가운데 홀로 있는 것만 같다. 저 바깥에 있을 때는 이따금씩 얼굴 없는 사람들의 무리를 떠올렸으면서, 정작 사람들 속으로 돌아오니 별들이 반짝이던 그곳이 떠오른다.
그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가 아주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들려야 들 수가 없지. 그래, 잠시 쉬어갈 만한 곳 정도라 말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군중 속에서 빠져나온다.
학교 정문 한쪽에서는 피켓과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이 진을 쳤다. 그들도 검은 옷을 입기는 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우주로의 무의미한 진출을 당장 중단하라는 것이다. 우주비행사들의 죽음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들을 못 본 척 앞을 지나, 박 상담사를 찾는다. 그는 정문 뒤쪽 작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인사만 점잖게 주고받을 뿐,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사관학교 선생이다 보니, 안내하듯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대강당으로 향한다. 주변으로는 우리와 같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묵묵히 걸어간다. 주차장에도 차량이 많다. 대강당으로 들자 의자들이 보인다. 강당이 워낙 넓다 보니 추모 장소는 앞쪽에 모여 있고, 뒤로는 휑한 느낌이 든다.
이미 자리에 앉아 추모식을 기다리는 사람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 무엇을 보는 건지 멀뚱히 서 있는 사람, 뒤쪽에는 방송국 관계자들이 있다. 사람은 많지만 소란스럽지는 않다. 천정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강단 위로 내린다. 강단 위로는 하얀 꽃들이 가득하고 그 사이로 우주비행사들의 이름이 적힌 기다란 구조물이 놓여 있다.
박 상담사와 나는 나란히 앉는다. 곧 짧은 안내가 강당 안으로 흘러나오고, 추모 행사가 시작된다. 개회 선언에 이어 유가족 대표 한 명이 강단 위에 오르는데, 그의 이름과 소속을 듣고 놀랐다.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관학교 졸업생 중에 한 명이었다. 그는 작년 우수한 성적으로 조기 졸업한 최성진이라는 훈련생이었다. 선생들 사이에서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모범생이었다. 그가 천체 탐사 전공도 아니었고, 내가 모든 생도들을 기억할 만큼 좋은 선생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그 학생을 기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선생으로 부임한 이래로 나는 이른 아침에 달리기를 한 후에 사관학교로 출근했다. 사람이 많은 건 딱 질색이었으므로 그때는 보통 출근시간과 겹치지 않아 사람이 적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에 학교로 들어서면 아주 조용하다. 아직 활기가 돌기 이전의 학교는 버려진 곳처럼 썰렁하고 내일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볼품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 정경이 마음에 들었다.
천천히 정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그곳에 언제나 최성진 훈련생이 있었다. 그는 매일 혼자서 운동장을 뛰었다. 처음에는 어떤 선생님의 훈육이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니었다. 그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을 열심히 하는 인간에게는 눈이 가기 마련이다.
내가 부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성진 훈련생도 내가 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매번 멈춰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인사하지 말고 계속 뛰라고 말했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그와 말을 섞은 적은 아마도 두 번 정도가 전부일 텐데, 모두 그 이른 아침에 뜀박질을 하다가 멈춰 서서 내게 인사를 건넨 후였다.
한번은 내가 물었다. 힘들 텐데, 왜 아침마다 운동장을 뛰는지. 그가 멋쩍게 웃으며 답하기를, 달리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고작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고 있지만 정신없이 뛰다 보면 날아오르는 기분이 든다면서, 하늘 가까이 닿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도 아예 모르는 바가 아니었고, 김태진 선생도 생각나는 탓에 그를 진심으로 독려했다.
그와 나눈 마지막 대화는 아마도 작년 겨울쯤이었다. 졸업 직전이었는데 그날도 최성진 훈련생은 뛰고 있었고 역시나 썰렁한 운동장 한편에서 서로를 마주쳤다. 그는 발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했다.
“역시 오늘도 뛰고 있군. 졸업은 잘 준비하고 있는 거지?”
그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네.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통이라면 짧게 대화를 마쳤겠지만,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때라 괜히 말을 더 이었다.
“최성진 훈련생은 세부전공이 뭔가?”
“수색 구조 전공입니다. 이제 우주로 나가 실전에 투입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는 반은 장난삼아 농을 붙였다.
“우주로 나가면 이렇게 자유롭게 뛰지도 못할 텐데. 조기졸업까지 해서 왜 서둘러 나가려고 해.”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진지하게 말을 받았다.
“저는 하루 빨리 나가고 싶습니다. 사실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아침마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뛴 거리만큼 제 목표와 더 가까워진다고 상상하면서 매일 달렸습니다. 그게 다 망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빨리 졸업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나는 조금 더 그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그의 호흡이 벌써 차분해지고 있는 탓에 서둘러 대화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