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나서야 시야가 또렷해졌다. 그들도 모두 찾고 있었다. 공허에 온갖 것을 쑤셔 넣고 있었다. 다음으로 정착할 섬을 찾고 있었다.
그들도 나의 처지와 비슷했다. 왜 그것을 알지 못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미 발 딛고 있는 땅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인간들, 자기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타인을 밖으로 내보내는 점박이들, 내가 발붙이지 못하게 끊임없이 밀어낸 사람들. 얼마나 괘씸했던지 나는 우주에서 기꺼이 부재의 전령이 되기로 작정했다.
없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점박이들아, 너희들이 바라는 그것은 없어.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우리가 찾는 건 원래 애초에 없어. 그동안 망망대해를 절박하게 떠돌며 몸으로 체험한 괴로움의 여정은 나만의 길이 아니었다. 그제야 나는 유유히 파도에 몸을 맡긴 채로 그들의 다급한 헤엄을 지켜보다가 이따금씩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다. 그 말만 사실대로 되풀이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부재의 전령을 넘어 부재 자체를 꿈꿨다.
길가에 늘어선 각종 상점의 유리창 위로 행인들의 모습이 빠르게 지난다. 그 위에 나도 있다. 궁상맞도록 처연해 보인다. 마음에 들지 않아 얼른 눈을 돌린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우리 모두가 아주 같다는 것. 우주에서부터, 아니 그 전부터 이미 예감한 사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정하기 싫었을 뿐. 내가 겪은 힘과 고통을 그들이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분노와 복수가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겪은 괴로운 시간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래, 그런데 지금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 하지만 그들도 죽기 전에는 언젠가 알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부단히도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중이라는 것, 그래서 고통스러워한다는 것, 거기다 삶이라는 이름을 멋들어지게 붙였을 뿐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 순례자다. 곳곳에서 잠시 머무르고 다시 떠나는 방랑자에 불과하다.
오랜만에 많이 걸은 탓인지 벌써 힘이 든다. 이쯤에서 버스를 타야겠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나는 인파를 피해 버스에 오른다. 나와 함께 오르는 사람은 2명이다. 버스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 몇 명은 창밖을 보며 서 있다. 도로를 따라 차량이 빠르게 주행한다. 가볍게 몸이 흔들린다. 얼른 손잡이를 부여잡는다. 서 있는 승객들은 모두 단단한 것을 붙들고 있다.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그래, 방랑자. 혹시 누군가 자기는 제자리에서 떠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무언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지구를 따라 움직인다. 지구는 자전하며,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심지어 태양도 움직인다. 우리는 모두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때마다 우리의 위치는 변화한다. 그 자각에 이른다면 이 세상에 고정되고 불변한 것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 내가 지구 멀리 떨어진 행성에 들렀던 것처럼 우리는 매순간마다 새로운 지점에서 새로운 형태로 지나간다.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우리는 찰나 동안 머물고, 또 찰나 동안 스쳐지나갈 뿐이다.
버스 창밖으로 풍경이 유유히 흐른다. 걷기에는 먼 거리였는데 버스로는 금방이다. 즐길 틈도 없이 금세 몇 정거장을 지나 하차한다. 내리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셋, 아까 같이 버스를 탔던 사람들이다. 이제는 이런 것까지 신기하다. 어떻게 이 시간에 우리가 같은 버스를 탔는지. 같은 곳에서 내렸는지. 이것도 인연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러면 지구 위에 탄 인류는…….
이 정도의 망상이면 병이 분명하다. 나는 홀로 우스워 남몰래 웃고는 사람들을 힐끔 본다.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각자 갈 길을 같다. 같은 방향은 아무도 없다. 뿔뿔이 흩어져 어디론가 사라진다. 금세 길 위에는 나 혼자다. 날은 좋고 마음은 싱숭생숭해서 조금 더 걷고 싶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쉽게 지친다. 내일 일정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집에서 푹 쉬는 게 좋겠다.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저기 나의 집이 보인다. 우주에서는 즐길 수 없는, 맛있는 저녁에다가 술 한 잔을 걸쳐야겠다. 잠깐, 오늘 술을 마셔도 괜찮나. 아무렴 딱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집에 들어가서 우선 뜨거운 물을 욕조에 받아 느긋하게 씻어야겠다. 벌써부터 넉넉하게 마음이 풀어진다.
이제 고백하건대, 떠돌아다니는 삶의 여정에도 가끔씩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마음놓고 몸을 의탁할 곳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까.
술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다. 목욕 후에 반주로 걸친 술기운이 약간 올라 침대에 몸을 누인다. 씁쓰름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한 잔 더 하고 싶지만 내일 추모식을 위해서라도 별 수 없이 참기로 한다. 몽롱한 기운에 가만히 눈을 감는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창피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까는 내가 무슨 세상의 이치를 모조리 깨달은 현자라도 되는 것처럼 구구절절했지만, 사실 지구로 돌아와 가장 힘든 점은 어디를 가나 인간이 끔찍이도 많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겉도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거짓말을 조금만 보태면 차라리 새로운 행성에 적응하는 편이 더 손쉬울 것이다. 하지만 우주로 다시 나갈 생각은 전혀 없다. 처음 우주로 나아가게 한 동기, 멈추지 않고 다음 행성으로 향한 활력은 내 안에서 깔끔하게 사라졌다. 속이 편안했지만 동시에 허전했다.
재활훈련을 마치고 일상생활이 가능할 때가 되자마자 본부로 발령이 났다. 한편으로는 잘 된 일 같기도 했다. 예전만큼 점박이들에 대한 나쁜 감정도 없었고, 또 본부에서는 독립적인 연구와 실험을 진행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본부로 며칠 출근하지 못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먼저는 점박이들에 대한 앙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연유였고, 다음으로는 그들이 나를 은근히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하는 일도 중요하다고는 이제 조금은 인정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는데, 그들의 꼬락서니를 며칠만 봐도 오만함을 쉽게 목격했다.
상아탑에 고고한 학자라도 되는 양 목은 빳빳이 들고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아니, 무관심한 척 했다. 속으로는 서로를 견주고 낮잡아 보기 바빴다. 착각이 아니다. 그런 시선의 탐지야말로 내 전문 분야라 말할 수 있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속속들이 다 보였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평생을 그런 눈길 속에서 살아왔는데 또 이런 곳이라니. 진절머리가 났다.
지속적으로 불평불만을 표현하고 크게 문제되지 않을 선에서 갈등을 몇 차례 일으켰다. 사실 별 것도 아닌 일들이었는데, 점박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급변했다. 누군가는 나를 당장이라도 본부에서 쫓아내고 싶은 듯했고, 또 누구는 나를 멸시하듯 노려봤다. 상종 못할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계획대로였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주비행사 사관학교 선생으로 보직 변경을 요청했다. 학교에 선생이 부족했을 뿐더러 본부 입장에서는 내가 눈엣가시였으므로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로 보낼 절차를 밟았다.
나는 속성으로 교사 교육을 받은 후에 사관학교로 파견됐다. 많은 보직 중에 하필 왜 사관학교 선생인지 묻는다면, 곰곰이 생각해도 선생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걱정되기는 했다. 선생일이 만약 맞지 않는다면 그 다음으로 갈 곳도 없었고, 다른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난감한 처지였다.
놀랍게도 학교는 바뀐 것이 없었다. 그때 그 시절에서 멈춰 있었다. 강의실과 기숙사, 운동장과 강당, 제반 시설이 모두 그대로였는데도 불구하고 구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많은 자본과 인력이 응집된 결과로 아직까지도 세련미를 갖추고 있었다.
학생 수는 더 줄어서 시설들은 보다 더 비대해졌고, 활용도 면에서는 이미 효율을 잃었지만 화려했던 과거의 한 때를 억지로 상기시키려는 것처럼 기념비적으로 보였다. 꼴사나웠고, 한편으로는 씁쓸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마치 학교로 돌아온 내 모습 같았다. 우주의 시기를 겪은 내게 과연 선생으로서 권위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문제는 내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있었다. 내가 선생치고는 젊은 나이였어도 흘러간 세월을 속일 수는 없는지, 나 때에 비하면 학생들은 정말이지 엉망이었다. 초반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부담 없이 학생들에게 훈육을 빙자한 시비를 매일 같이 걸 수 있었다. 꽤나 괜찮은 일이었다.
기 싸움을 하던 학생들도 대부분 내 지도를 따르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마지막까지 대드는 나 같은 학생 한둘도 기수마다 있었다. 다른 선생들은 그 녀석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고 하든데, 나는 오히려 그 학생들이 반가웠다. 그런 친구들이 없으면 선생일도 재미가 없을 것 같았고, 본보기를 보이기도 힘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김태진 선생을 기억하며 지옥 같은 체력단련을 주된 지도방식으로 삼았다. 아주 잘 먹혔다. 물론 내가 좋은 선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나쁜 선생도 아니다. 옛날에는 사상이 썩어 빠진 선생도 차고 넘쳤는데, 나만 하면 괜찮은 선생 축에 속한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선생인 내가 꽤 마음에 들었고 훈련생도 잘 다루는 편이었다. 우주비행사로서 다시 우주로 나갈 수 있을 때가 와도 학교에 남기로 진작 마음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