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조금씩 내담자를 알아가다 보면요, 우주에 나가서 생긴 일을 다루는 건지, 그 사람의 마음 자체를 다루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어요. 제 결론은 이래요. 구분할 필요가 없어요. 보통 상담 과정이랑 정확히 똑같아요. 우주에서 시작했을 뿐이지 자신의 내면을 면밀히 들여다본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죠. 참 신기하죠? 우주비행사 전담 상담사로 일하면 일할수록 더 실감해요.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것밖에는 경험하지 못해요. 우리는 내면에 있는 것을 경험하고, 경험한 것은 다시 내면 어딘가에 머무르며 이름 붙여지기를 기다리죠.”
박연경 상담사는 신뢰 어린 눈빛을 보내다가 무언가가 생각 난 듯 다시 입을 뗐다.
“그 얘기 들었어요? 진영 씨의 마지막 탐사 행성이요.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이 거주할 가능성이 있다나 봐요.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 심화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이러다가 결국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한데, 그동안 이런 경우가 꽤 많았으니까요. 아무튼 그래서 임시로 그 행성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꿨어요.”
“이름을 뺏긴 느낌이기는 한데,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별로 관심도 없고요.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거잖아요. 서로가 이해하지 못해도, 단지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진심으로 하는 것뿐이니까요. 진짜라고 생각되는 거요.”
“네, 그렇죠.”
박 상담사는 내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친구 같이 서글서글한 눈 속으로 상담사의 눈빛이 문득 스쳤다.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내게는 무엇이 진짜인지.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었지만, 머릿속에서 한 예감이 차츰 선명해졌다. 우리 삶의 과정은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 어쩌면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들만이 진짜가 된다는 것. 진가를 가리는 일은 각 개인에게 속한 것이고, 동시에 억지로 구별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 하지만 상담사를 볼뿐 생각을 발설하지는 않았다. 슬쩍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박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몸은 아주 빠르게 적응하는데, 말씀처럼 마음은 언제나 쉽지 않네요. 지구에 선생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건 제 일인 걸요.” 박 상담사는 입을 오므리고는 다시 입을 뗀다. “그런데 우리 영영 못 보는 거 아니에요. 저도 이제는 우주로 나갈 생각 없거든요.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어요.”
“그래도 한 주에 한 번씩은 계속 봤는데,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저도 아쉬워요. 그래도 이번 주에는 또 보겠네요.”
“그러네요.” 나는 그의 낯을 살핀다. “선생님 괜찮으시죠?”
“그럼요.” 박 상담사의 표정은 입으로만 미소를 짓는 듯 어색하다.
“내일 앞에서 봬요. 연락드릴게요.”
우리는 다시 못 볼 사이처럼 작별인사를 하고도 아쉬운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었다. 우주에서 헤어질 때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마지막 상담을 끝내고 우주비행사 상담센터를 나왔다. 마음이 어수선해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 건물 앞을 서성이다가 벤치에 앉았다.
볕은 따사롭고, 바람이 선선히 분다. 눈을 감는다. 내 몸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의 품속, 온몸에 퍼지는 온기, 자유로운 비행. 그래, 내가 이렇게 변했는데 가짜일 리가 없지. 나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높이 솟은 깃대에는 국기와 세계항공우주연합의 깃발이 나란히 걸려 펄럭인다. 날도 좋은데 오늘은 집까지 걸어갈까. 땅에 발을 딛고 일어선다. 기립이 얼마나 신비한 일인지 새삼 놀랍기만 하다.
지구로 돌아온 후에는 치료와 적응에 시간을 가졌다. 치료는 타인의 일이었지만, 적응은 어디까지나 혼자서 감당할 일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치료는 잘도 진행됐지만, 적응은 나의 시간과 노력 모두가 필요했다.
적응이 필요한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물며 중력까지 어색해 처음에는 걷기도 힘들었다. 생각보다 아주 기본적인 일들에 애를 먹었다. 먹기, 마시기, 걷기, 뛰기, 씻기,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들이 가장 어색했다.
재활훈련을 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걱정이 앞섰다. 내 몸이 다시는 지구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몸이 된 것만 같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류의 생명체가 된 기분이었다. 혹시 그냥 거기서 죽었어야 했던 건 아닐까, 하고 몰래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구와 지구에 속한 것, 특히 사람들이 내게 복수를 하는 건 아닐지 염려스러웠다. 예전처럼 화도 나지 않아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는 꼴이었다.
지구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 듯했고, 나를 도저히 적응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결국에는 밖으로 다시 내쫓아내려는 듯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이제 그만 좀 하지. 이만하면 됐잖아. 언제까지 나한테 이럴 생각이야. 어차피 이제 갈 곳은 없다고, 좋든 싫든 지구에 살거야.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재활훈련에 임했다.
보행은 우주로의 진출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지구로 귀환하고 나서야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제는 완전히 적응한 지구의 중력에 균형을 잃지 않고 길을 걷는다. 인도와 차도, 사람들, 자동차, 가로수, 건물까지 주위에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우주에 다녀온 직후에는 예전보다 더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나만이 이방인이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같은 족속 같았지만, 지금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방인으로 보였다. 별만큼이나 다양한 이방인들이 지구에 모여 살아가는 듯했다. 무리지은 별들은 아름답지만 각각의 별들은 불안하고, 위험하며, 상처투성이다. 반면 인간들은 함께 있어도 아름답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한 명, 한 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지닌 깊은 외로움을 엿볼 수 있다.
별처럼 우린 원래 혼자다. 애초에 혼자면서 왜 서로를 밀어내려고 애를 쓰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하면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건가. 어떤 인간도 홀로 살아갈 수 없는 행성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돌아온 탓인지, 지구만큼이나 놀랍고 기이한 곳도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주로 나가서는 지구에 있던 사물과 생물들이 그다지 기억나지 않았는데, 지구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것들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절실히 느꼈다. 살아간다는 것, 살아 움직인다는 것, 다양한 생과 삶이 지구라는 좁은 곳에 징그러울 만큼 그득그득 모여 있다는 것 또한 기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재활훈련을 마치고 상담까지 마무리한 오늘에도 생명의 놀라움을 목격하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말해줄 사람도 없지만, 어차피 설명해도 모를 것이 분명하다. 이건 누가 말해줘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밖에 나갔다 온 후에야, 우주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삭막하고 죽은 땅을 질리도록 목격한 후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입을 통해 간단히 전할 수 있을만한 것은 아니다.
상담까지 끝난 마당에 이런저런 상념과 회상에 젖어든다. 사람들 사이를 걸어갈수록 내가 이방인이 아니라 순례자로서 살아온 것만 같다.
독립적인 생활, 규칙적인 일과, 검소한 식단, 성실하고 꾸준한 이동.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순례자와 다를 게 없다. 아주 먼 성지에 갔다가 잠시나마 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 듯한 기분, 형용할 수 없는 실체를 복잡한 과정 없이 그대로 깨달은 상태라 말한다면 조금은 과장스럽기는 하겠다. 말이 좋아서 순례자지 방랑벽이 도진 유별난 인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순례자라는 말이 좀 더 근사하니 그냥 그렇게 이름 지을 생각이다. 박 상담사가 그랬다. 상담은 새로운 이름을 짓는 과정이라고. 내 것에는 내 마음대로 이름 지어도 괜찮다. 물론 박 상담사와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상담을 진행하면서 과거의 일들을 모조리 끄집어내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힘든 일이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지금은 후련하게 생각한다.
아주 어려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강제로 떠돌아다녔다. 모두가 나를 밀어냈던 시기. 누군가는 다 착각이라고 말하려나.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 힘을 직접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존재도 모르는 법이다. 당사자만이 그 힘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보이지 않으므로 더 가혹하다. 가끔은 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다음날이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있었던 곳이 아니었다. 바다 위에서 잠시 잠에 든 것만 같았다. 눈을 뜨고 나면 어느새 전혀 모르는 곳을 표류하고 있었다. 그 당혹스러움은 당해본 사람만 안다. 나는 서둘러 헤엄을 치기 시작한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로 팔다리를 휘젓는다. 하지만 밀려오는 파도는 자꾸만 나를 낯선 곳에 데려다놓았다.
그래, 그래서 나는 찾기 시작했다. 발을 딛을 곳, 밀려나지 않는 곳, 줄을 동여매 정박할 곳. 하지만 내게는 그런 곳이 없었다.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게 정말 억울했다. 내 탓이 아니었다. 그렇게 태어난 것뿐. 그런데 왜 내가 찾아야만 하는 것인지 그 인과를 연결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의 것을 찾으러 쏘다녔다. 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땅히 발붙이고 누빌 수 있는 땅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좀체 발견하기 힘들었다. 조금만 몸을 뉘이려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다시 외딴 곳에서 눈을 떴다. 불안에 떨며 그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구나. 내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죽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 포기하고 싶다.
나는 부모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그 자리는 내게 부재했으므로 끝내 모두를 원망했다. 결국 내게로 시선을 돌렸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를 자주 소진시켰고, 쓰러뜨렸다. 어쩌면 그때 잔잔한 바다에 누워 밤하늘을 보았을까. 나는 결국 우주로 나왔다. 지구는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사람들 곁에 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차라리 내가 자리를 박차고 떠나기로 했다. 내가 느꼈던 척력보다 더 강한 힘으로 세상을 벗어났다. 우주로 나와 마땅히 혼자가 되면서 원래부터 내게 없는 것을 더 이상 찾지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