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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와와입니다 Aug 30. 2024

추락일지

뜨거웠던 소소한 추락

뜨거웠던 소소한 추락


첫 번째 글에 썼던 두 번째 추락과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그녀와 이별 당시 그녀는 내게 헤어지자고도, 시간을 갖자고도. 그 어떤 결론을 내어주지 않았다. 단지 내 옆에 있기 불안하고 초조해 연락하고 만나는 것이 힘들겠다는 이야기였을 뿐. 당시 나는 내 정신 상태도 온전치 못하였기에 그저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평소 가장 힘든 순간에 곁에 남는 것이 진짜 친구고 내 사람이다.라는 생각은 당연히 갖고 있었지만, 내가 그 상황들을 겪으며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지 예측하지 못하였던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단호하지 못했다. 물론 그만큼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사랑마저 내려놓고 싶지 않던 나의 욕심이었을지도.


그렇게 헤어지지도 만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약 2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급격히 줄어든 체중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코로나에 걸려 집에서 홀로 실신도 경험하였고 35도가 넘는 찌는 더위에 홀로 이삿짐을 나르고 이사를 했으며 새로 이사 간 장소에 적응을 하지 못해 며칠을 끙끙 앓으며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낯선 시간들을 홀로 견뎌내었다. 가슴속 깊이 아주 작은 희망 섞인 미련한 촛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물론 처음 통화를 끊을 때 이미 내 머리는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떠날 것이라고, 그녀는 이미 떠난 것이라고. 하지만 마음은 아직 그녀에 대한 미련과 혹시라는 생각에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던 듯하다. 

어찌 되었든 이런 2달의 시간을 보낸 뒤 조금은 차분해진 마음 상태로 이제는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하였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받기 싫은 전화를 억지로 받는 듯한 불편해하는 목소리였다. 통화 내내 그동안의 안부인사 한 번을 묻지 않는 그녀는 정말 내가 알던 그녀가 맞는 건지, 한없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래도 전화를 건 나의 목적은 4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해 온 사람이며, 내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였기에, 나는 최대한 태연한 말투와 목소리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서로 인연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자며, 너무 사랑했고 잘 지내길 기도한다고 말하며 통화를 마쳤고 그녀 또한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반복하며 좋게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쉬웠고 허탈했지만 그녀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내 기억 속 그녀는 순수했고 맑았으며 가끔은 이기적일지라도 그런 모습까지 빛나 보였기에.

그런데 이런 기억과 노력을 그녀가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지금도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통화를 마치고 1-2시간 뒤 그녀는 카카오톡 차단과 함께 문자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앞으로 연락 안 했으면 좋겠어.'


이게 무슨 말인가. 그녀의 모든 행동과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우리 둘 모두에게 최대한 좋은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전화를 먼저 걸며 관계를 내려놓은 나의 용기를 처참하게 짓밟는 내용의 문자였다. 그녀의 의도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마무리 이야기를 통화로 다 정리한 마당에 왜 또 날 괴롭히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손발이 덜덜 거리며 떨려왔고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끓어올랐다. 그다음에 찾아온 감정은 나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자기혐오였다. 고작 이런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내가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음과 시간을 쏟았던 것인가. 내가 얼마나 사람 보는 눈이 없었으면 이런 사람을 곁에 그리 오래 둘 수 있었는가.

한때는 아름다웠던 나의 청춘 러브스토리는 배신과 환승의 막장 드라마 같은 질 낮은, 생각하기도 싫은 오물 덩어리가 되어버렸고 생에 처음으로 사람을 인간 이하로 볼 수 있는 경험을 하였다.


아, 어쩌면 고마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으로서의 일말의 존중과 미련마저 처참하게 뭉개줬으니.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처음 만난 그 시점부터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싶어졌다. 

머릿속에 그녀의 흔적조자 남아 있지 않도록.


이 것 또한 나의 성장기 속 경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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