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서 걷는 것이 걷는 것이다
1456년, 한양 동쪽. 늦가을.
다리가 있었다.
오래된 다리였다. 돌로 만든 다리였다. 이끼가 끼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닳아있었다. 닳은 것은 오래된 것이다. 오래된 것은 많은 것을 보았다.
시습은 다리 위에 섰다.
아래를 보았다. 강물이 흘렀다. 깊지 않았다. 가을 강이었다. 여름에는 불어났다가 가을이 되면 줄어드는 강이었다. 지금은 낮았다. 강바닥이 보이는 곳도 있었다. 돌이 보였다. 이끼 낀 돌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다리 위는 바람이 강했다. 막아주는 것이 없었다. 강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차가웠다. 옷이 흔들렸다. 풀린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시습은 난간에 손을 얹었다.
차가웠다. 돌이 차가웠다. 이 돌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다리를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 이 돌을 놓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없다. 그러나 돌은 있다.
있었던 사람이 없어졌는데 돌은 있다. 사람이 먼저 사라지고 돌이 나중에 사라진다. 사람보다 돌이 오래간다. 그렇다면 돌이 사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인가. 아니다. 돌은 느끼지 못한다. 차갑다는 것을 모른다. 바람이 부는 것을 모른다. 오래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느끼는 것이 더 가치 있다.
느끼는 것이 더 가치 있다면 — 느끼는 것이 끝나면 무엇이 남는가.
강물을 오래 보았다.
강물이 흘렀다.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것이 강물의 성질이었다. 강물이 멈추면 강물이 아니었다. 웅덩이가 됐다. 웅덩이는 썩었다. 흐르는 것은 썩지 않았다.
흐르는 것은 썩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흐르고 있는가. 한양을 떠난 지 며칠이 됐다. 걷고 있다. 걷는 것이 흐르는 것인가. 몸이 흐르고 있으니 흐르는 것인가.
아니다. 몸만 흐르고 마음이 멈춰있으면 — 몸은 걷는데 마음은 웅덩이다. 마음이 멈춰있는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은 흐르고 있는가.
생각이 왔다.
갑자기 온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오고 있었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알면서 모른 척했다. 모른 척하면 가까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모른 척해도 왔다.
이것이 무엇인가.
무거움이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거움이었다. 피곤함도 있었다. 외로움도 있었다. 그것들이 섞인 무거움이었다. 어젯밤에도 있었다. 그저께도 있었다. 한양을 떠나던 날도 있었다.
이 무거움이 언제 없어지는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 어떻게 되는가.
강물을 보았다.
저 강물은 무겁지 않은가. 강물은 무게가 있다. 많은 물이 흐른다. 무겁다. 그러나 무거우면서 흐른다. 무거움이 흐르는 것을 막지 않는다. 무거우면서 흐르는 것이 강물이다. 나도 무거우면서 걸을 수 있는가.
걸을 수 있다. 그러나 —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가. 어디까지 걸어야 하는가. 끝이 없다면 — 걷는 것의 의미가 있는가.
그 생각이 왔다.
의미가 없다면 — 멈추는 것이 낫지 않은가.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물을 보았다. 낮은 강이었다. 가을 강이었다. 차가울 것이었다.
차갑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차갑지 않게 되는 것은 — 살아있지 않게 되는 것인가.
오래 서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날렸다. 강물이 흘렀다. 세상이 평범하게 돌아갔다.
시습이 다리 위에 서있든 서있지 않든 — 세상은 평범하게 돌아갔다.
세상은 나 없이도 돌아간다. 어제도 알았고 오늘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없어도 세상이 돌아간다면 — 내가 있는 것이 무엇을 바꾸는가.
"아저씨."
소리가 들렸다.
시습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저씨, 거기서 뭐 해요?"
어린 목소리였다. 시습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아이였다.
일곱 살 정도 됐을 것이었다. 작은 아이였다. 옷이 낡았다. 얼굴이 해맑았다. 그 해맑음이 — 가식이 아니었다. 해맑음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냥 해맑은 것이었다. 배우지 않은 것이 진짜인 것처럼 — 이 아이의 해맑음은 진짜였다.
아이의 눈을 보았다.
저 눈이다.
숨이 멈췄다.
저 눈을 본 적이 있었다. 스물한 살이 아니었다. 다섯 살이었다. 경복궁 사정전이었다. 넓은 방에서 임금이 시습을 보던 눈이었다. 슬프면서 단단한 눈. 슬픔을 오래 안고 다닌 사람의 눈. 그러나 이 아이는 슬프지 않았다. 이 아이의 눈은 슬프지 않으면서 단단했다. 그냥 보는 눈이었다. 판단하지 않는 눈이었다.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이었다.
세종 임금의 눈이었다. 다섯 살에 본 그 눈이었다. 이 아이의 눈이 그 눈이었다.
아이가 다시 물었다.
"아저씨, 거기서 뭐 해요?"
이 아이가 묻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강물을 보고 있었다. 무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멈추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이 아이에게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시습이 입을 열었다.
"강을 보고 있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것 같았다. 납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어른이었다면 더 물었을 것이다. 왜 보고 있느냐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아이는 묻지 않았다. 강을 보고 있다는 것이 충분한 이유였다.
"저도 강 좋아해요."
아이가 말했다.
그리고 다리 난간으로 왔다. 시습 옆에 섰다. 키가 작아서 난간이 턱에 닿았다. 발꿈치를 들었다. 강을 보았다.
"물고기 있을 것 같아요."
시습은 아이를 보았다.
이 아이가 왔다. 이유 없이 왔다. 강을 보고 싶어서 왔다. 물고기를 찾고 싶어서 왔다. 그것이 전부다. 이유가 단순하다. 단순한 이유로 오는 것이 — 단순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이 아이의 눈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이 아이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강물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아이가 왔다. 이유 없이 왔다. 이유 없이 오는 것들이 있다. 이유 없이 오는 것들이 가장 중요한 때 온다.
시습은 난간에서 손을 뗐다.
뒤로 물러섰다. 한 걸음. 두 걸음.
아이는 몰랐다. 아이는 강물을 보고 있었다. 물고기를 찾고 있었다.
시습은 다리에서 내려왔다.
이유를 몰랐다.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내려왔다. 발이 먼저 움직였다. 발이 아는 것이 머리보다 빠른 경우가 있었다. 이것이 그랬다.
내려오고 나서 다리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아직 난간에 기대어 강물을 보고 있었다.
저 아이는 나를 구한 것인가. 모른다. 아이는 나를 구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강을 보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 왔다. 그것이 중요하다. 의도가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 때가 있다.
세상이 나 없이도 돌아간다. 그러나 — 저 아이는 지금 강을 보고 있다. 저 아이가 보는 강에 내가 없다면 강이 달랐을 것이다. 아주 조금 달랐을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 나는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는 것이 — 있어야 할 이유인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이가 돌아보았다.
"아저씨 어디 가요?"
시습이 대답했다.
"동쪽으로."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 왜인지 묻지 않았다.
동쪽으로 간다는 것이 대답이었다.
아이는 묻지 않는다. 어른은 묻는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 아이는 묻지 않는다. 간다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간다는 것 자체가 답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맞다.
시습은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다리 위에서 무거움이 있었다. 그 무거움은 지금도 있다. 없어지지 않았다. 내려왔다고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 무거움이 있어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무거움이 걷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강물이 무거우면서 흐르듯이 — 나도 무거우면서 걸을 수 있다.
아이의 눈이 있었다. 세종 임금의 눈을 닮은 눈. 그 눈이 왜 왔는가. 모른다. 모르면서 왔다. 이유 없이 왔다. 이유 없이 오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받아들이면 된다. 이유를 묻지 않고 받아들이면 된다.
금강산을 생각했다.
금강산으로 가겠다. 그곳에서 무엇을 찾을지 모른다.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모른다. 그러나 간다. 모르면서 간다. 모르면서 걷는 것이 걷는 것이다.
그 문장이 왔다.
모르면서 걷는 것이 걷는 것이다.
다섯 살에 이계전이 말했다. 공부가 끝나는 날이 없다고. 그때 시습이 말했다. 끝이 없으면 계속 걸을 수 있다고. 그것이 이것이었다. 모르기 때문에 계속 걸을 수 있다. 다 알면 멈추게 된다. 모르는 것이 있어야 걷는 것이다.
모르면서 걷는 것이 걷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저녁이 됐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시습은 동쪽으로 걸었다. 해와 반대 방향이었다. 해가 지는 방향에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림자가 앞에 생겼다. 앞에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가 앞에 있다. 내가 뒤에서 쫓아가는 것인가. 그림자를 쫓아가는 것인가. 그림자는 나보다 먼저 간다. 그러나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있다. 내가 있어야 있다. 내가 없으면 그림자도 없다. 내가 뒤에 있어도 — 그림자는 내가 있어야 있다.
나를 앞서가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나로부터 나온 것이다.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없으면 없는 것이다. 그것들이 앞에 있어도 — 그것들의 시작은 나다.
해가 졌다.
그림자가 사라졌다.
어두워졌다. 별이 나왔다.
별이 나왔다. 어제도 나왔고 오늘도 나왔다. 내일도 나올 것이다. 나는 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걸었다. 내일도 걸을 것이다. 걷는 것이 별이 뜨는 것처럼 — 당연한 것이 되면 좋겠다.
시습은 걸음을 멈췄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이가 있었다. 이름을 몰랐다. 무엇을 하는 아이인지 몰랐다. 어디 사는 아이인지 몰랐다. 그냥 왔다. 강을 보러 왔다. 물고기를 찾으러 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아저씨 거기서 뭐 해요.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전부인데 — 그것이 충분했다. 그것이 전부인데 — 그것이 나를 다리에서 내려오게 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한다. 이유 없는 것이 이유 있는 것보다 더 크게 작동하는 때가 있다.
나도 그런 것이 되겠다.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닿는 것.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닿는 것.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보았다. 아이가 그렇게 했다. 이유 없이 왔고 — 닿았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모르면서 걸으면 — 어딘가에 닿을 것이다.
걷기 시작했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거기서 무엇을 찾을지 몰랐다. 16년이 걸릴지 몰랐다.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모른다. 모르면서 걷는다. 그것이 걷는 것이다.
금강산 입구였다.
며칠을 걸었다. 발이 아팠다. 배가 고팠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것이 몸이 먼저 알았다.
금강산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달랐다. 보통 산이 아니었다. 봉우리들이 첩첩이 쌓여있었다. 안개가 걸려있었다. 햇빛이 봉우리에 걸렸다가 다시 올라갔다. 오래 보아야 할 산이었다. 한 번 보는 것으로 다 볼 수 없는 산이었다.
저 산이다. 불렀던 산이다. 이름이 부른다고 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름이 있다고 했다. 저 산이 불렀다. 그래서 왔다. 왜 불렀는지는 아직 모른다. 와서 알게 될 것이다. 아니면 와서도 모를 것이다. 모를 수도 있다. 모르면서 온 것이니 모르면서 있어도 된다.
길 옆에 작은 암자가 있었다.
암자 앞에 늙은 승려가 앉아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것인지 명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습이 지나가려 했다.
승려가 눈을 떴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승려가 물었다.
"어디서 왔소?"
시습이 대답했다.
"한양에서요."
승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아니, 어디서 왔냐고."
시습은 그 자리에 멈췄다.
아니, 어디서 왔냐고.
같은 질문이었다.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다른 질문이었다. 다른 말이었다.
한양에서 왔다는 것이 대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양은 장소였다. 승려가 묻는 것은 장소가 아니었다.
어디서 왔는가. 한양이 아니라 — 어디서 왔는가. 무엇에서 왔는가. 무엇으로부터 왔는가.
답이 없었다.
바람이 불었다. 금강산 봉우리가 멀리서 서있었다. 안개가 걸려있었다. 승려는 시습을 보고 있었다. 기다리지 않는 눈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눈이었다. 오래 기다릴 수 있는 눈이었다.
이 승려는 지금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을 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진짜를 묻는다. 서두르는 사람은 진짜를 묻지 않는다.
시습은 그 자리에 서있었다.
답을 찾지 않았다. 답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면 오는 것이 있었다. 서두르면 오지 않는 것이 있었다.
어디서 왔는가.
모른다.
그것이 답이었다.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한양에서 왔는데 한양이 시작이 아니다. 어머니의 무덤에서 왔는데 그것도 시작이 아니다. 다리 위에서 왔는데 그것도 시작이 아니다. 시작을 모른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른다. 모른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하기 전에 승려의 눈을 다시 보았다.
저 눈은 이미 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알면서 묻고 있다. 왜 묻는가. 내가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말해야 한다. 모른다고. 말해야 진짜 아는 것이다.
시습이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승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기쁜 웃음도 아니고 슬픈 웃음도 아니었다. 맞다고 하는 웃음이었다. 정직한 대답을 들었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들어오시오."
암자 안에 들어갔다.
작은 방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방석 두 개가 있었다. 다른 것은 없었다.
둘이 마주 앉았다.
승려가 말하지 않았다. 시습도 말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말이 없어도 되는 시간이었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새소리가 들렸다. 금강산이 저 너머에 있었다.
이 승려는 어디서 왔는가. 모른다. 이 승려도 모를 것이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모른다는 것을 묻는다. 아는 사람은 모른다는 것을 묻지 않는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 아는 것 중에 가장 깊은 것이다.
촛불이 하나 켜졌다.
흔들렸다. 바람이 없는데 흔들렸다. 촛불 스스로 흔들리는 것이었다. 꺼질 것 같으면서 꺼지지 않았다.
바람 앞에 등불 하나. 꺼질 것 같으면서 꺼지지 않는다. 꺼지지 않는 것이 용감한 것인가. 아니면 꺼질 줄 모르는 것인가.
나는 다리 위에서 꺼질 것 같았다. 그러나 꺼지지 않았다. 아이가 왔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온 아이가 왔기 때문이다. 꺼질 줄 몰라서인가, 꺼지면 안 됐기 때문인가. 모른다. 그러나 꺼지지 않았다. 꺼지지 않는 것이 지금 여기 있다.
승려가 말했다.
"내일 금강산에 올라갈 것이오?"
시습이 대답했다.
"네."
승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곳이오. 오래 있어도 되는 곳이오."
그것이 전부였다.
더 말하지 않았다. 더 물어보지 않았다. 오래 있어도 된다는 것이 — 충분한 말이었다. 어서 오라는 말도 아니었다. 빨리 가라는 말도 아니었다. 오래 있어도 된다는 것. 그것이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오래 있어도 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모르면서 있어도 된다. 그것이 이 산이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 승려를 통해 이 산이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습은 눈을 감았다.
촛불이 흔들렸다. 꺼지지 않았다.
금강산이 저 너머에 있었다. 일만이천 봉우리가 있었다. 안개 속에 있었다. 내일 올라갈 것이었다. 무엇이 있는지 몰랐다. 몰랐다.
모른다. 모르면서 걷는다.
그것이 걷는 것이다.
이제 — 16년의 길이 시작된다.
— 10화로 이어집니다 —
다음 화 예고: "승려 혜각이 말했다. '불교의 자비냐, 유교의 의리냐.' 시습이 대답하지 않았다. 혜각이 다시 말했다. '너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네 길이다.' 위로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