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밤

by yuri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에 들어서자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확 느껴졌다. 쓰레기통은 이미 넘쳐흘러 컵라면 용기와 과자봉지가 바닥까지 흘러나와 있었다.

“야, 이거 치워야지.”

아이들 중 하나가 툭 내뱉듯 말했다.

“반장, 네가 하라니까. 반장 선거 때 반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했잖아. 봉사해야지.”

교실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장난 반, 진심 반이 섞인 웃음이었다. 나는 무심코 반장을 바라보았다.

반장은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일어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쓰레기를 하나하나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 억지웃음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괜찮은 척, 웃는 척. 중학교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매번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았던 적이 없었던 그때.

“얘들아.”

나는 교실 앞쪽으로 발을 옮기며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쓰레기는 버린 사람이 치우는 거야. 반장이 대신하는 게 아니고.”

아이들이 잠시 멈칫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하려고 숨을 고르고, 눈빛으로 주목을 끌며 ‘해야 하는 것’을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교묘하게 불쌍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자 말문이 막히고, 생각보다 쉽게 속이 무너졌다.

그러자 한 아이가 교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반장도 같이 먹었어요. 그리고 제가 치우고 싶은데 오늘 몸이 좀 힘들어서 반장이 대신 치워준다고 한 거예요. 친구 사이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그렇지 반장?”

반장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아이의 눈빛에는 장난이 섞여 있었지만, 반장은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순응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당사자가 인정해 버리는 이 상황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마음 한쪽이 무겁고 답답했지만, 아이의 장난에 끌려가는 반장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이동수업을 위해 하나둘 교실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나는 반장을 붙잡았다.

“오늘 일, 마음이 안 좋았지?”

반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살짝 떨군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친구사이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다.

반장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김유정이 교묘하게 끌어가는 상황 속에서 나는 무력했다.

교무실 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학년부장이다.

“7반 선생님 저 좀 보시죠”

할 말만 하고 딱 끈는 저 태도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난 갈 수밖에 없다.


부장의 얼굴은 언제나 단호했지지만 오늘은 조금 더 심각해 보인다.

“선생님반에 김유정이라는 학생 있죠. 교복도 제대로 입지 않고, 무단 외출에 무단 조퇴를 하던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김유정. 올 것이 왔구나.’

“네… 있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말끝이 흐려졌다.

부장은 고개를 살짝 젖히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학생이 반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는데 아이 하나 휘어잡지 못해 반 학생들이랑 선생님들 모두 불편을 겪고 있네요. 학기 초에 제가 말했죠. 친구 같은 교사는 없다고. 애들은 무섭게 휘어잡아야 된다고요. 선생님이 담임이니까 책임지고 애 개도 시키세요”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부장님... 그건...”

학년부장의 눈초리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해하셨으면 가 보세요.”

열심히 한 것뿐인데 왜 이렇게 꼬여만 가는지 모르겠다.

'하... 너무 힘들다'


학년부장의 대화를 끝내고, 마음을 다잡고 7반 교실로 향했다. 교실은 여전히 어수선했고 내가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는 학생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눈치였다.

교묘하게 상황을 조종하는 유정이의 움직임. 교복은 단정하지 않고, 일부러 늦게 오거나 무단으로 교실을 나가는 그녀의 행동이 반 전체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유정가 어떤 방식으로 반을 움직이는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 아이들은 그 장난에 휘말리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듯’ 억지로 상황을 따라가고 있는 듯 보였다.


점심 이후 수업을 시작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전략을 세워보려 했다. 단호하게 말할까, 아니면 아이들의 심리를 읽어가며 한 발 물러설까. 문제는 인지하고 있지만 해결방법이 없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학년부장의 해결방법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유정이는 조용히 가방을 챙기더니 교실을 빠져나갔다. 반 친구들은 눈치만 보며 조용히 있었고, 반장에게 유정이의 이탈을 나에게 알려왔다.

곧이어 교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학년부장이다.

“7반 선생님, 유정 학생이 또 무단으로 조퇴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무단조퇴한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오라고 하세요”

말끝에 숨겨진 날카로운 긴장감이 느껴졌다. 학년부장은 이번에도 권위적이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마음속에서는 반장과 학생들의 모습, 점심시간의 상황, 그리고 지금 벌어진 무단조퇴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부장님 제가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정각에 퇴근을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선생님 지금 반에 문제가 생겼는데 약속이 문제인가요? 담임이 돼서 무책임하네요... 저도 오늘 조퇴하고 병원 가야 되는데 지금 못 가고 있잖아요. 어떤 반 아이 때문에...”

“제가 어머님과 이야기해서 책임지고 학교로 다시 돌아오라고 하겠습니다.”

“하... 선생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오늘은 믿고 퇴근할게요.”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는 교무실에서 유정이와 어머님을 기다렸다. 시간을 어느덧 9시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어머님과 연락은 되지 않고 아이는 내 전화를 일방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1’이 사라진 문자를 보며 나는 하염없이 아이를 기다릴 뿐이었다. 태훈쌤이 옆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돼?”

“내가 문자에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기다려 봐야지”

“어차피 연락도 안된다며...”

태훈쌤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착한 교사 콤플렉스와 학년부장의 압박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지시를 따르며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마음속에서는 반장과 나의 모습이 겹쳤다. 억지로 상황을 따라가는 나, 권위로 모든 걸 통제하려는 학년부장, 그리고 자기 방식대로 반을 조종하는 유정.

“너도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가자.... 다른 사람들 다 퇴근했는데 이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서 뭐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학년부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너 지금 너희반 반장이랑 똑같은 거 알아?”

“응? 어떤 부분이?”

“하라는 데로 하고 있잖아. 학년부장이 하라는 데로 연락도 되지 않는 학생과 학부모를 기다리는 너의 모습이나 유정이가 쓰레기 청소하라고 청소하는 반장이나...”

반박할 수 없다.


태훈은 옆에 앉아, 팔짱 낀 어깨로 묵묵히 내 옆을 지켰다. 나 지금이나 말은 직설적이고 거칠었지만, 그래도 이 시간까지 같이 있어주는걸 보면 내가 조금은 걱정되나보다.

갑자기 태훈쌤이 말을 했다.

“야… 너 지금 표정 봐. 완전히 지쳐 보여.”

“응… 좀 그래.”

나는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 사이로 연필을 돌렸다. 태훈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근데… 너 혼자 다 끌어안지 마. 알잖아, 너 혼자서 다 책임지려는 스타일이라는 거. 근데 그렇게 하다간 병난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오늘 하루, 유정이, 학년부장 때문에 마음이 끓어올랐던 모든 무거움이 조금 가벼워 것 같다.

태훈쌤은 별말 없이 계속 내 옆에서 앉아 있었다.

오늘 밤, 어렵고 긴 하루였지만, 왠지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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