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교실 창문을 부드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1교시 수업 종료 10분전. 나는 노트북을 덮으며 팔짱을 낀채 칠판에 기대 서있었다. 따사로운 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교실 안은 한결 평온해 보였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떠들거나 다음 수업 준비를 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대화가 오가는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생기 있고, 손놀림도 바쁘게 움직였다. 일상의 단편이자 학교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활력의 일면이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묻기 시작했다.
“선생님, AI 써서 발표자료 만들어도 돼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당연히 나올 법한 질문이었다. 한편으론 반가웠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심은 학습 동기와 연결되기 마련이니까. 열린 교육 철학을 자처하는 교사로서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발표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AI를 활용한다면 환영이야.”
그 말에 아이는 감탄하듯 외쳤다.
“역시 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짧은 허락이 나중에 나를 어이없게 만들 줄은.
물론 그 순간에도 AI라는 기술의 가능성과 교육적 가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나 또한 AI를 적절히 활용하여 수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편의의 도구’로만 사용될 때는 예외였다.
며칠 후, 발표 시간이 찾아왔다. 교실엔 적막이 감돌았고, 아이들은 TV 화면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발표는 기대 반, 긴장 반의 공기가 감돌았고 아이들의 눈빛은 한 곳을 향해 모여 있었다.
한 학생이 일어나 비발디에 대해 발표를 시작했다. PPT 첫 슬라이드는 잘 그린 듯한 그림과 함께 한 단락 분량의 텍스트가 담겨 있었다.
아이는 별다른 설명 없이 PPT에 나와있는 글을 그대로 읽었다.
“이상으로 비발디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불과 몇 문장으로 발표가 끝났다. 나는 속으로 갸우뚱했다. 너무 짧은데다 단순 낭독에 가까웠다.
아이가 자리로 돌아가려 하자 나는 손을 들었다.
“잠깐, 아직 가지 마세요.”
아이의 표정에는 ‘왜요?’라는 당혹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나는 TV 화면을 다시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 그림… AI가 만든 거지?”
아이의 반응은 무심했다.
“그런데요…”
나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발디는 ‘붉은 머리의 사제’라고 불릴 정도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야. 그림에 나와 있는 건 갈색 머리의 남자고… 옷차림도 당시 복식과는 거리가 있어. 이건 잘못 그린 그림인데...”
아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AI가 그려준 걸 그대로 쓴 것 뿐인데요...”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몸을 앞으로 숙여 말했다.
“그럼 PPT 자료 없이, 비발디에 대해 직접 설명할 수 있어?”
아이의 표정은 당황에서 공포로 바뀌었다. 입을 꾹 다물고, 살짝 고개를 저었다.
“… 그건 좀…”
교실의 공기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아이의 동공이 흔들리는 걸 보며 나는 직감했다. 그 아이는 단지 AI가 만들어준 PPT를 그래도 읽기만 했을 뿐이라는 것을... 그 안에 담긴 의미나 지식은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아니 흡수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선명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들이 AI를 사용하는 이유는 더 깊은 학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단순한 편의, 즉 ‘덜 노력하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그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발표가 끝나면 조심스럽게 몇 가지 확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자료를 만들 때 어떤 걸 참고했어?”,
“이 개념 발표자료 없이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 같은 질문들...
AI가 만들어준 자료를 그대로 읽기만 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AI는 어디까지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내 학습을 위한 도구...
몇 주 뒤, 논술형 시험이 끝나고 나는 교탁 위에 채점이 완료된 시험지를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자, 한명씩 차례데로 나와서 본인 시험 점수 확인하고 사인해 주세요.”
아이들이 하나둘씩 앞으로 나와 사인을 하고 들어갔다. 그때 한 학생이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제 점수 왜 이렇게 낮아요?”
나는 시험지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음... 이 문제... ‘바로크 음악이 사용된 영화’를 쓰는거잖아. 그런데 네가 쓴 영화... 바로크 음악이 삽입된게 맞니?”
학생은 당당하게 말했다.
“AI가 그렇다고 했는데요”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었다.
“혹시 질문했던 기록들 가지고 있어? 선생님도 AI를 여러 개를 돌려봤는데, 이 영화는 한 번도 나오지 않더라구”
학생은 잠시 휴대폰 만지더니 화면을 내밀었다.
“여기요.”
나는 질문 내용을 살펴봤다. 내가 해봤던 질문과 거의 똑같았지만, 나온 답은 완전히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비슷한 답도 있었지만 학생이 쓴 딱! 그 답은 없었다.
“그래도 AI가 그렇다니까요. 정답 처리 해주세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AI는 진리를 말하는 존재가 아니야. 틀린 답을 말하기도 해. 정답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오세요”
그 말을 듣고 아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됐어요. 그 점수 몇 점 하지도 않는데 그냥 틀렸다고 하세요. 어차피 절대평가라 A잖아요.”
그 순간 나는 굳어졌다.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었다.
‘뭐지, 이 태도는…?’
공손함 없는 말투. 절대평가를 무기 삼아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태도. 나는 깊은 한숨을 쉰 뒤, 마음을 달랬다.
‘그래, 참자. 나는 어른이니까.’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래, 들어가. 그런데 아까 그 말과 행동은 잘못된거야.”
아이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느웨~”
그 순간 또다시 마음이 요동쳤다.
‘저 자식을 확… 참자 참자 참자. 나는 어른이다.’
나는 속으로 짧게, 아주 짧게 외쳤다. ‘진짜, 왜 이렇게까지 참아야 하지…?’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아이는 이미 자리로 돌아가 웃으며 친구와 무언가를 주고받고 있었다. 마치 방금 있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그 순간, 교탁 위에 올려둔 시험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눌러쓴 필기들, 비워진 문항들, 복붙된 듯한 표현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아이들은 뭘 배우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지금, 뭘 가르치고 있는 걸까?’
수업을 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보다, 이런 날엔 내 목소리가 속에서 조용히 메아리쳤다.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천천히 열었다. 평가 기준표가 화면 위로 펼쳐졌다. 그런데 그 어느 지표보다도, 내 눈앞에는 지금 막 농담처럼 흘려버린 ‘느웨~’라는 말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익히게 하는 일. 하지만 지금, 그 '생각의 시간'은 너무나도 손쉽게 생략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비껴간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나는 다시 교실을 바라보았다. 따사로운 햇살 사이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실처럼 엮여 흐르고 있었다. 그 틈 속에서, 나 역시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란 결국, 나 자신을 가르치는 일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