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화로운 선생님의 카리스마 실험실

by yuri

교무실에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캡슐머신이 구석에서 은은한 커피 향을 풍기고 있었고, 선생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김밥을 먹거나 출력물을 정리하며 분주했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선배님들... 고민이 있어요.”

자판을 치던 손이 멈추고, 얼굴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향했다.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문을 열었다.

“나이 들면... 애들이 저를 무서워하게 될까요?”

교무실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미화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생기죠. 그러면 아이들이 선생님을 좀 무서워하게 될 수도 있죠”

농담인지 진담인지 태훈쌤은 진지하게 말했다.

“음... 선생님은 나이 들어도 지금 이미지 그대로일 것 같은데요. 너무 순둥순둥해서...”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이 꼭 칭찬처럼 들리진 않았다.

“그건 좀 슬픈데... 저는 꼭!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칼 있으마 말고?” 장난기 많은 수련샘이 사무용 칼을 들고 장난치듯 말했다.

교무실엔 웃음이 퍼졌지만, 나는 진지했다.

“아이들이 저한테 장난을 너무 많이 쳐요. 분위기 잡기도 어렵고. 이대로 계속 가면 나중엔 진짜 통제가 안 될 것 같아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지화쌤이 말했다.

“학교엔 선생님 같은 분도 필요해요. 안 그러면 애들 숨 막혀요. 나는 반대로 너무 무서워서, 아이들이 나만 보면 쪼그라드는데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내 마음속엔 ‘그래도 난 좀 더 무게감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또렷해졌다.

“그렇게 원한다면 이미지 변신부터 하시죠.”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카리스마 선생님 되기 프로젝트.

[이건 첫 번째 레슨: 전투복 착용]

내가 옷 입는 스타일을 바꿔보기로 다짐한 계기는 단순했다.

“선생님은 너무 편하게 입으니까 순해 보여요.” 지화쌤이 교무실에서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 그 말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교직 생활 내내 나는 늘 같은 패턴으로 옷을 입었다. 단정한 티셔츠, 스키니진, 캐주얼한 운동화. 나는 내가 ‘편하고 친근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그렇게 지내는 게 편했다. 아이들이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고, 쉬는 시간에는 장난도 주고받았다.

하지만 지화쌤의 말 뒤로, 내 ‘친근함’은 점점 ‘가벼움’으로 바뀌어 보이기 시작했다. 통제력이 없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미지 변신. 무게감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으로 거듭나보자.

첫 번째 레슨은, 외형부터 바꾸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옷장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올블랙. 가죽 자켓, 매끈한 가죽 팬츠, 무광의 롱 부츠.

부츠는 꽤 굽이 있었지만, 이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었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은 확실히 달랐다.

평소의 순한 인상은 사라지고, 무슨 영화 속 명령을 내리는 상급자가 서 있는 듯했다. 진한 아이라인을 넣은 눈은 생각보다 매서웠고, 입술은 살짝 다물었다.

‘좋아… 분위기 잡자.’

출근길. 바닥에 울려 퍼지는 구두 소리부터 달랐다. 또각… 또각… 평소엔 잘 들리지 않던 발걸음이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분위기가 멈췄다.

“선생님… 오늘 무슨일 있어요?”

“와, 분위기가 전혀 다른데요. 완전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선배 교사들의 반응을 최대한 무표정으로 넘기고, 나는 표정을 굳힌 채 교실로 향했다. 오늘은 웃지 않을 거야. 아이들이 나를 ‘다르게’ 느껴야만 한다.

첫 수업. 문을 열고 들어가 말 없이 앞쪽 책상을 정리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자, 책 펴세요.”

단호한 목소리.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말했더니, 아이들은 놀란 듯 서로 눈치를 보고 조용히 책을 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통한다.’

그런데, 뒤쪽에서 갑자기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남학생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죄송한데요… 선생님 굽이 너무 높아서 걸을 때마다 살짝씩 삐끗하세요… 그게 좀… ㅋㅋㅋㅋ”

순식간에 교실 전체가 웃음으로 번졌다.

내가 입은 이 ‘전투복’은 아이들에게 카리스마보다는 개그 소재가 되어버렸다.

“오늘 선생님 캐릭터 진짜 웃겨요.”

나는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속으로는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갔다.’

내가 쏟은 진심은 의상 안에서 방향을 잃었다.

그날 저녁, 부츠를 벗으며 생각했다. 겉모습만 바꾼다고 분위기가 따라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심지어 그 부츠 굽 때문에 발이 욱신거렸다. 나는 소파에 기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일은 다시 스니커즈 신을래.”


[이건 두 번째 레슨: 무서운 행동 시전]

마치 고대 전사들이 전투 전에 무기를 점검하듯, 나는 교탁 뒤에서 슬리퍼의 착용 상태와 궤적을 조용히 계산했다.

교무실에서 들었던 ‘전설의 교사들’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선생님. 나는 무서워 보이려고 가방을 창밖으로 던졌어”

“나때는 의자도 집어 던졌지”

무언의 압도감과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는 그 존재감에 나는 이상하게 끌렸다.

물론 그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다. 지금 시대에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오늘자 8시 뉴스에 특보로 나올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 실내화, 즉 슬리퍼를 던지기로.

그날, 교실은 평소보다 더 시끌벅적했다. 아이들은 수업 시작 시간인데도 잡담과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교탁 뒤에 조용히 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슬리퍼 한 짝을 살짝 벗었다.

머릿속으로는 궤도를 계산했다. 정확히 사물함 근처, 아이들의 중심은 피해가면서도 시선은 끌 수 있는 위치. 실내화의 질량과 각도, 회전 속도를 고려해 비선형 곡선 궤적을 그렸다.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며 웅성거리는 사이, 나는 평온한 얼굴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슬리퍼는 예상과는 조금 달리 천장을 향해 솟구쳤다. 그 순간, 나는 ‘아… 너무 세게 던졌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전등 모서리에 정확히 ‘툭’ 부딪히고 떨어졌다.

그 소리는 너무나도 또렷하고 우스꽝스러웠고 슬리퍼는 공중에서 몇 번 돌다가 느릿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 다음은, 말 그대로 폭소의 향연.

“선생님… 지금 궤도 진짜 비현실적이었어요ㅋㅋㅋㅋ” “물리쌤이랑 콜라보해야겠는데요? 이거 궤도 분석해달라고 해야겠다!” “다음은 부메랑 던져주세요! 선생님, 부메랑 수업 가능하죠?”

아이들은 책도 펴지 않고 웃음에 빠졌고, 나는 그 웃음 한복판에 서 있었다. 물론 의도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던진 슬리퍼는… 위엄보단 예능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슬리퍼를 다시 주워 신었다. 그렇게 슬리퍼는 돌아왔지만, 내 자존심은 어디 먼 곳까지 날아가버린 것 같았다. 왠지 실내화가 평소보다 한 치수 작아진 느낌이었다.

그날 오후, 교무실에 돌아온 나는 의자에 앉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 전등은 생각 못 했다.”

강렬한 인상보다 더 강렬했던 것은 아이들의 웃음이었다.

아이들과의 거리는 그만큼 가까워졌지만, 내 작전은 다시 재정비가 필요해졌다.


[이건 세 번째 레슨: 말투와 표정, 눈빛까지]

남은 건 말투와 표정이었다. 나는 최대한 눈매를 날카롭게 그리고, 립 컬러도 진하게 바꿨다. 목소리는 낮게, 짧고 단호하게 말하기로.

“집합. 책 펴. 정숙.”

교실은 조용했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미묘했다. 감탄이 아닌, 신기함이었다. 그리고 곧 질문.

“선생님… 어디 드라마에서 나오셨어요?”

“지금 완전 보스 느낌이에요. 이 세계관에 대장 등장!”

수업 내내 나는 최대한 표정 없이 수업을 진행했지만, 어느 순간 혼란스러웠다. 내가 무섭게 보이려 한 건데, 아이들은 이 모습을 ‘컨셉’이라고 여겼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와 장난을 치는 것 같다.


며칠 뒤, 나는 교무실에서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카리스마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지화쌤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지금 모습이 제일 좋아요. 모두에게 무서워 보일 필요는 없어요. 지금 선생님 모습이 아이들에게 더 힘이 되잖아요.”

나는 그 말을 가만히 되새기며 창밖을 바라봤다.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그간 나에게 했던 장난과 따뜻한 말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카리스마를 포기했다. 대신 대화를 택했다.

“오늘 방과 후에 남아서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해볼까?”

“선생님… 그냥 혼내주세요…”

“혼내다니...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행동이 학생으로써 옳은 행동이였는지에 대해서 심도있게 대화를 나눠봐야지”

“으악~ 선생님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그렇게 나는 웃으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다.

교실은 더 이상 ‘통제의 공간’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작은 사회’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섭진 않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keyword
이전 11화덕질하다 교권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