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교실에는 말하지 않아도 지켜지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습니다. 칠판 청소를 맡으면, 한 명은 지우개에 묻은 분필가루를 털고, 또 다른 한 명은 걸레로 칠판에 남은 분필 자국을 닦았습니다. 선생님께서 굳이 “너는 이거 해, 너는 저거 해”라고 지시하지 않으셔도 서로 눈치를 보며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교사가 되어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 저는 제 학창시절처럼 청소 구역과 역할만 대략 배분해 주면 아이들이 알아서 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청소를 시작하기는커녕 그저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중학생이라 아직 어려서 그렇겠지’라고 여겼는데, 고등학생이 되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더군요.
2002년생 아이들을 처음 담임했을 때, 동료 선생님이 이런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창문 청소를 네 명에게 맡기려면 그냥 ‘네 명이서 해라’라고 하면 안 돼요. 창문을 네 칸으로 나누고, ‘1번은 지연, 2번은 민재’ 식으로 구체적으로 구역과 역할을 정해줘야 합니다.”
처음엔 웃으며 넘겼습니다. ‘설마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정말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저는 대략적으로 지시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협력해서 해낼 거라 믿었는데, 그 믿음은 금세 깨지고 말았습니다. 청소 구역을 여러 명에게 맡겨놓으면 서로 눈치만 보며 “네가 해”라고 떠넘기다가, 결국 아무도 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중학교에 있던 내내 ‘내가 선생이 아니라 보모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교실 청소조차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었으니까요. “우리 애는 아직 어려서 힘든 건 시키지 말자”는 부모님의 세심한 배려 속에서 자라다 보니, 사소한 일조차 스스로 부딪혀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쓰레기통 풍경만 봐도 그랬습니다. 쓰레기가 차올라 넘치는데도, 그 누구도 쓰레기를 눌러 담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쓰레기탑이 무너져 과자 봉지와 먹다 남은 젤리 조각이 바닥에 나뒹굴어도, 아무도 치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버리려면 먼저 쓰레기를 눌러 담은 뒤 버려야 한다”고 알려주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제 청소구역도 아닌데 왜 제가 해야 해요?”
1인 1역을 주면서 저는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알려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서기는 이런 일을 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처리하면 된다” 하고 분명히 설명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출석부를 확인해 보니, 아무것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이 경우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 안 해주셔서 안 했어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내가 이 정도까지 말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한다는 것을요.
예를 들어 교실 청소를 네 명에게 맡긴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단순히 “너희 넷이 청소해라”라고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월·수 담당 두 명, 화·목 담당 두 명, 금요일은 전원 참여라는 큰 틀을 먼저 정해야 하고, 거기에 맞춰 실제로 누가 월·수에 할지, 누가 화·목에 할지를 구체적으로 지정해줘야만 일이 진행됩니다.
심지어 그 안에서도 역할을 다시 나눠야 했습니다. 빗자루를 드는 사람, 걸레질을 하는 사람, 책상을 정리하는 사람까지,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청소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네 명이 모여서 “우리 둘은 월요일, 너희 둘은 화요일 할래?” 하며 금세 합의가 끝났을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과는 교사가 직접 역할을 잘게 나누고, 순서까지 정해줘야 비로소 일이 굴러갔습니다.
처음에는 ‘왜 갈수록 아이들이 더 어려지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온 환경이 우리 때와 달랐던 겁니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집에서 만나는 어른의 숫자는 극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형제자매나 사촌, 동네 형·누나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배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또래끼리 다투고, 윗사람이 중재하며 깨닫는 과정도 일상처럼 이어졌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대부분이 외동이거나 형제가 한두 명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힘들지 않기를 바라며, 웬만한 일은 다 대신해줍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시행착오를 겪어보며 배우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졌습니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이런 장면이 흔히 벌어집니다.
“선생님, 창문 닦을 때 세제는 뭘 써요?”
“앞면만 닦아요, 아니면 뒷면도 닦나요?”
“걸레는 몇 번이나 빨아야 해요?”
처음에는 솔직히 ‘혹시 애들이 일부러 날 괴롭히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몰라서 묻고 있었던 겁니다. 태어나서 처음 부딪혀 보는 일이니까요.
“MZ세대는 사가지 없다”는 말, 정말일까?
사회에서도 종종 “MZ세대는 버릇없다,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교실에서 아이들을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 몰라서 그런 건 아닐까?”
겉으로 보기엔 무심하거나 책임감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단지 해본 적이 없었고, 누군가의 구체적인 안내가 필요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교사 생활을 하며 이렇게 배웠습니다.
아이들과 소통할 때는, “내가 이 정도까지 말해야 하나?” 싶은 디테일까지 요구해야 한다는 걸요.
그리고 이 깨달음은, 교실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그대로 적용될지도 모릅니다. 직장에서 MZ세대와 함께 일할 때,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친절하게 말해줘야 할지 모릅니다. 그게 그들의 게으름이 아니라, 경험의 빈틈 때문이라면 말입니다.